독립운동가 외손녀 박환희의 '청순+힙' 사복패션[누구템]
by김지우 기자
2026.08.15 08:14:10
12만~20만원대 국내 브랜드 활용한 데일리룩
광복절 맞아 LG트윈스 시구자로 잠실 마운드 올라
독립운동가 하종진 선생 외손녀…기념행사 꾸준히 참여
[이데일리 김지우 기자] 독립운동가 고(故) 하종진 선생의 후손인 배우 박환희의 사복 패션이 눈길을 끌고 있다. 힘을 뺀 듯 편안하면서도 청순한 분위기를 살린 스타일링으로, 일상에서 따라 입기 좋은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 | 박환희가 개인 SNS 계정에 게재한 일상 모습. (사진=박환희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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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예계에서 한 배우의 증조부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면서 독립운동가 후손인 배우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환희의 외조부가 독립운동가 하종진 선생이라는 사실도 다시 조명되는 가운데, 그의 일상 패션에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박환희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사진에서 하늘색 맨투맨 티셔츠와 흰색 바지에 하얀 백팩을 매치했다. 특히 가방은 박환희의 ‘여름 백팩’으로 불리며 SNS에서 제품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해당 제품은 ‘멈블(MUMBLE)’의 백팩으로 가격은 12만원이다.
| | 배우 박환희가 게재한 일상 모습과 멈블 백팩 제품. (사진=박환희 인스타그램·멈블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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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희의 사복 패션은 화려한 명품이나 유행하는 아이템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의상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가방에 데님이나 편안한 신발 등 익숙한 아이템을 조합하는 것이 특징이다. 밝고 부드러운 색상을 주로 활용하면서도 캐주얼한 아이템을 섞어 편안한 분위기를 살린다.
지난 5월에는 여유로운 핏에 레이스 디테일이 들어간 란제리룩 스타일의 흰색 원피스에 데님 팬츠를 레이어드한 착장을 선보였다. 여성스러운 원피스와 캐주얼한 데님을 조합해 청순하면서도 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박환희가 입은 흰색 원피스는 국내 브랜드 ‘아유서울(AYU SEOUL)’의 ‘레이스 엣지 플리티드 드레스’다. 공식 홈페이지 기준 가격은 19만 8000원이다.
지난 6월에는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에서 박환희는 하늘색 민소매 상의에 검은색 하의를 매치하고 같은 계열의 하늘색 가방을 들었다. 해당 가방은 다른 날 공개한 일상 사진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제품은 국내 여성 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무드무드(SMOOTHMOOD)’의 ‘테라스 백 스카이 멜트’로 보인다. 천연가죽 소재에 여유로운 크기가 특징으로, 공식 홈페이지 기준 가격은 28만 9000원이다.
| | (왼쪽부터) 스무드무드 가방 제품과 박환희가 개인 SNS에 게재한 일상 모습. (사진=박환희 인스타그램·스무드무드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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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원피스에 검은색 가방을 매치한 스타일링도 선보였다. 밝은 색상의 원피스로 청순한 분위기를 살리는 동시에 검은색 가방으로 전체적인 착장에 무게감을 더했다. 해당 가방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낫띵에브리띵(NOTHINGEVERYTHING)’의 ‘90S 레더 숄더백’으로 보인다. 한섬 EQL 등에서 판매 중이며 가격은 29만 6000원이다.
| | 낫띵에브리띵 검정색 가방(왼쪽)과 박환희의 일상 모습. (사진=박환희 인스타그램·한섬EQL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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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희는 광복절인 15일 LG트윈스의 시구자로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다. 박환희는 그동안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여러 국가 기념행사에 참여하며 외조부의 뜻을 기려왔다. 2018년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는 태극기 게양 이후 맹세문을 낭독했고,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전야제 ‘100년의 봄’에도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무대에 올랐다.
박환희의 외조부 하종진 선생은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경남 함양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이후 대구고보 맹휴운동을 주도했으며 1923년 민족차별 대우에 항거해 경성전차회사 파업을 주도하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1925년에는 동지들과 비밀결사 ‘진우연맹’을 조직했다. 이후 상하이에서 폭탄을 입수해 대구 시내 주요 관청을 폭파하려다 체포됐다. 정부는 1990년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