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에 엔화 '날개 잃은 추락'…150엔 곧 뚫리나

by김정남 기자
2023.10.03 18:18:02

고금리 장기화 관측에 달러인덱스 107 돌파
엔화 연중 최저…심리적 저항선 150엔 목전
원화 가치 덩달아 하락…亞증시 일제히 약세
"달러화 더 오를듯…세계의 골칫거리 전락"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킹달러’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미국의 긴축 장기화 조짐에 달러화가 폭등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통화 가치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연일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우며 달러당 150엔 목전에 온 일본 엔화가 대표적이다. 한국 원화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고꾸라졌다. 시장은 달러화 추가 강세 여지가 크다는데 기울어 있어, 당분간 긴장감이 커질 전망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AFP 제공)


3일 마켓포인트, CNBC 등에 따르면 이날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당 149.96엔까지 상승하면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 목전까지 올랐다(달러화 강세·엔화 약세). 이는 150엔을 돌파했던 지난해 10월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다. 일본은행(BOJ)이 지난달 22일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이후 엔화는 연일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일본 당국이 잇따라 시장 개입성 발언을 하면서 달러·엔 환율을 150엔선에서 막고 있지만, 엔화 약세 재료들이 많은 만큼 시장은 150엔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160엔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이날 역시 “높은 긴장감을 갖고 만전의 대응을 취할 것”이라며 개입성 발언을 했지만, 장중 환율 상승 폭은 오히려 더 커졌다.

엔화가 유독 약세를 띠는 것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강경 매파 기조를 유지하는 와중에 BOJ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 금리 차가 추가로 벌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무엇보다 달러화 오름세가 워낙 가파르다. 미셸 보먼 연준 이사는 이날 캐나다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리기 위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높은 에너지 가격은 최근 몇 달간 나타난 인플레이션 완화를 일부 되돌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초고유가 탓에 물가가 다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올해 금리를 한 번 더 올린 후 한동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107을 돌파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다. 달러인덱스가 115에 육박하며 20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던 지난해 9월 수준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요즘 시장의 분위기다. 이로 인해 간밤 뉴욕채권시장에서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4.702%까지 폭등했다(국채가격 폭락).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나와 “10년물 금리는 5%에 육박할 것”이라며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인플레이션이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미국을 따라 이날 0.786%까지 오르며 2013년 9월 이후 10년 만의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그러나 미국의 오름 폭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엔화 약세를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본 국채금리 급등에 BOJ가 금리를 누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엔저(低)를 부추기는 기류다. 최근 BOJ는 이날과 4일 정례 국채 매입에서 잔존 기간 5년 초과 10년 이하의 장기물을 매입(국채가격 상승·금리 하락 목적)하겠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일본 재무성이 이날 실시한 10년물 국채 입찰에서 액면금리(coupon rate·만기시 채권에 대해 지급하기로 약정된 확정금리)를 기존 0.4%에서 10년 만의 최고치인 0.8%로 인상하며 엔화 가치가 장중 소폭 반등하기는 했지만, 추세적인 엔저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다수다. 재무성이 액면금리를 높이면 시장금리 수준에 가까워져 자금 조달이 더 용이해진다.

엔화뿐만 아니다. 유로화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역대급’ 긴축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맥을 못추리고 있다. 간밤 유로·달러 환율은 유로당 1.0476달러까지 떨어졌다(유로화 약세·달러화 강세). 유로화 가치는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다. 파운드·달러 환율도 올해 3월 이후 최저인 파운드당 1.2086달러까지 내렸다.

한국 원화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간밤 뉴욕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달러 1개월물은 1355.30원에 최종 호가됐다. 최근 1개월물 스와프 포인트(-2.30원)를 감안하면 전거래일 서울외환시장 현물환 종가(1349.30원) 대비 8.30원 오른 것이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서울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23일(1351.8원) 이후 가장 높은데, 추석 연휴 직후 개장과 함께 1360원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아시아 증시도 킹달러 여파에 타격을 받았다. 이날 일본 닛케이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64% 빠진 3만1237.94에 마감했다. 올해 5월 이후 최저다. 홍콩 항셍 지수는 3% 가까이 폭락했다. 연휴 이후 코스피 지수 역시 아시아 증시의 동반 하락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달러화 가치가 지난해 기록한 20년 만에 최고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며 “(킹달러의 도래는)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의 골칫거리(headache)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ING의 크리스 터너 외환 전략 책임자는 “달러화 강세가 지나치게 오래 이어지고 있다”며 “이것이 (금융시장을 뒤흔들면서) 다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