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강경훈 기자
2017.11.12 14:08:09
CJ, 제약업 진출 34년만에 철수 결정
CJ헬스케어 매출 5000억원 제약업 15위권
삼성, 2조 집중 투자해 바이오의약품 집중
위탁생산·복제약 개발 두 축
협회 "제약업 성장 위해 국가적 지원 필요"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CJ가 제약업 진출 34년만에 자진철수를 결정하면서 바이오의약품을 미래 신수종사업으로 선정해 집중 투자하고 있는 사촌 그룹 삼성과 비교가 되고 있다.
CJ는 1984년 유풍제약을 인수하면서 제약업에 뛰어들었다. CJ헬스케어는 지난해 처음으로 연매출 5000억원을 돌파했다. 이 정도면 제약업계에서 15위권에 해당한다. CJ헬스케어 관계자는 “나름대로 100억원대 블록버스터를 다수 확보해 경영은 안정적”이라며 “최근에는 그동안의 R&D 투자가 성과를 내면서 내부 분위기가 고무적이었다”고 말했다. CJ헬스케어는 2003년 150억원을 투자해 국산 신약 7호인 슈도박신을 개발했고, 2015년에는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테코프라잔’을 중국에 200억원에 기술수출했다. 테고프라잔은 CJ헬스케어가 지난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해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또 지난 9월에는 일본 YL바이오로직스에 빈혈약 바이오시밀러 기술수출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최근 3년간 CJ헬스케어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은 임상시험이 28건이나 될 만큼 R&D에 나름대로 집중했다는 관계자의 말에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룹의 입장은 달랐다. 1993년 당시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분리되면서 사명을 CJ로 바꿀 무렵 이재현 회장이 그룹의 미래로 삼은 사업군은 식품, 바이오, 유통, 엔터테인먼트였다. CJ의 바이오는 의약품보다는 식품과 관련된 그린바이오 비중이 크다. 올해 초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내놓은 36조원의 투자계획을 살펴봐도 유통, 바이오, 문화콘텐츠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는 읽히지만 제약업을 키우겠다는 의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이런 우려가 결국 제약업 철수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34년을 해도 매출 5000억원에 불과해 큰 재미도 못 봤고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성공을 위해서는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 제약업의 특성상 지금이라도 발을 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CJ헬스케어 자체만 보면 견실한 제약사로 성장했지만 CJ그룹에서 보면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라며 “비비고 왕교자 만두 한 품목의 연 매출이 1000억원인 상황에서 CJ헬스케어 전체 매출이 5000억원에 불과하니 어쩌면 당연한 결정을 내린 셈”이라고 말했다.
R&D에 어느 정도 집중하긴 했지만 CJ헬스케어의 주력은 제네릭 의약품이다. 제네릭 의약품은 경쟁이 치열해 불법 리베이트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CJ헬스케어는 지난 2015년 의사 수 백 명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해 그룹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한 CJ 계열사 관계자는 “다른 계열사들과 비교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도 못하면서 그룹 이미지만 나쁘게 하니 직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삼성은 그룹사 중 가장 늦은 2010년 바이오의약품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제약업이긴 하지만 성공가능성이 낮은 신약개발 대신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과 복제약 개발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신약개발 성공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글로벌 제약사들도 경영효율화 측면에서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 값 비싼 오리지널약을 대체할 바이오시밀러의 수요가 늘어나는 세계적인 추세를 정확히 짚은 것이다.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투자한 금액이 2조원이 넘는다. 6년차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18만ℓ 규모의 3공장이 완공되면 1공장(3만ℓ), 2공장(15만ℓ)을 합쳐 36만ℓ의 생산설비를 갖추게 된다. 이는 전 세계에서 생산용량으로 세계 1위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3분기 매출 1275억원, 영업이익 205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의약품은 위탁생산이라고 해도 비용보다는 품질이 관건”이라며 “삼성의 강점인 생산관리에 집중해 양질의 의약품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5년차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미 유럽에서 4종, 미국에서 2종, 우리나라에서 3종의 바이오시밀러 허가를 완료했다.
업계에서는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삼성의 막대한 투자가 사촌인 CJ가 제약업에서 발을 빼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장남 기업인 CJ보다 삼남 기업인 삼성이 더 크게 성장하면서 CJ가 삼성에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이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라며 “삼성이 제약업에 진출하면서 CJ는 또 다시 삼성과 비교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불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CJ의 제약업 철수는 국내 제약·바이오의약품 산업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계기라는 목소리가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쉽게 생각해 뛰어들었다 대기업도 제대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가 제약업종이라는 게 확인됐다”며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자본력이 약한 중소규모 제약사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