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97.7km ''동막리에서의 1박2일''
by노컷뉴스 기자
2008.03.13 11:39:00
[노컷뉴스 제공] 강호동, 김C, 이수근, 은지원, MC몽, 이승기가 펼치는 좌충우돌 여행기 '1박2일'이 일요일 오후 간판 오락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매주 새로운 야생에서 6명의 연예인이 선사하는, 소탈함 그 이상의 설정없는 해프닝을 통해 천연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본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묘미라 하겠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재밌겠다' '나도 떠나봐?' 하고 생각하던 시청자 대부분은, 그러나 정작 주말이 되면 결국 방콕을 선택하고 본방송에 이어 재방송 분까지 섭렵하는 것으로 별볼일 없는 주말의 착잡함을 애써 외면한다.
왜 구경만 하는가? 1박2일의 주인공이 되는 건 어렵지 않은데!
TV가 아닌,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놓고 그저 구미가 당기는 곳으로, 혼자라도 좋고 함께여도 좋을 주말여행을 떠나보자.
토요일 아침 8시, 전날 숙취야 이틀간 여행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볍게 무시하고 하룻밤 자는 일정이니 배낭 또한 가볍게 챙겨 집을 나섰다.
여행의 목적지는 강화군 화도면 동막해수욕장,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여행은 길이 선사하는 예기치 못한 만남에 묘미가 있지만, ‘어디를 가느냐’ ‘누구와 함께인가’ 그리고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서도 그 맛이 크게 달라진다.
강화도는 이미 익숙한 코스지만 자전거로는 처음이라, 금요일에 받아 뱃속에 품은 새 카메라 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출발지는 오목교역 안양천 합수부. 9시 정각 기다리고 있던 일행 3명과 합류하여 이른 아침 한강변의 상쾌한 바람과 햇살을 음미하며 방화대교까지 질주, 방화동 한강시민공원에서 토끼굴을 통과해 도로 코스로 접어들었다.
이어 개화산역으로 이동해 공항대로에서 우회전, 48번 국도를 타고 김포시에 진입한 때가 오전 10시 30분경. 뱃속이 비어 엔진인 두 다리에 힘이 빠지니 일단 김포시내로 들어가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국도로 들어와 초지대교를 넘었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물론, 차로 라이딩을 할 때는 선두의 수신호와 더불어 교통신호에 주의를 기울여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국도에서는 라이더 한명한명이 대열을 따라갈 것인가, 멈춰설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똑바로 하고 신속히 움직이는 것이 필수다. 초보의 경우, 섣부른 의욕으로 홀로 라이딩을 시도하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한다.
초지대교를 넘어섰을 때가 정오 무렵. 휴식을 취할 겸 인근의 초지진에 들렀다.
사적 제 225호인 초지진은 1866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와, 1871년에는 美 아시아함대, 1875년에는 일본 함대와의 잇단 세 번의 격전지로, 마지막 일본 군함 운요호와의 포격전 때 생긴 포탄 흔적이 성축과 노송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매점 한켠에 세워진 안내판에서 강화도내 지리를 확인하고 다시 출발.
땅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거름내 진동하는 논밭과 서해 특유의 갯벌과 갈대밭을 번갈아 지나치며 발길을 잡는 풍경 앞에선 원하는 만큼 머물고, 목이 마르면 자그만 시골 점빵서 얼음과자를 사먹으며 놀 듯 5시간여를 달린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화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하는,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동막해수욕장의 물빠진 갯벌은 한낮 햇살조각을 가득 보듬어 안고선 이른 봄 관광객을 반기고 있었다.
여행의 '성공' 여부는 볼거리 만큼 먹거리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좋은 풍경 속에 혀를 감동케하는 음식이 함께 하면 그만한 금상첨화가 흔치 않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히 세안을 한 뒤 해변가에 늘어선 음식점으로 향했다.
‘조개구기를 먹으면 전어가 공짜’라는 입간판에 혹하여 망설임없이 들어선 '바다마을' 횟집. 온가족이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듯 앳된 남자아이들이 써빙을 하고, 부부인 듯한 남녀는 메뉴추천과 음식장만을 했다.
아직 이른 오후였지만, 65km를 달려온 여행자에게 무엇이 걸림돌이 되겠는가!
숯불 위에서 ‘쩍- 쩍-’ 입 벌리는 조개를 초장에 살풋 찍어 시원한 술 한잔 털어놓고 씹어먹는 그 맛이란….
홍합탕은 기본, 키조개 참조개 비단조개 석굴에 노릇노릇 구워진 전어 네 마리까지 뚝딱 해치우고는 "양이 적다"는 서울 사람 농 몇 마디에 한손 가득 서비스 조개를 철판에 내려놓으시는 주인 아저씨 인심에 기분 좋아 소주 한 병 추가.
그렇게 일단 기분좋게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섰는데 아직 어둠의 기미조차 보이질 않아 마치 '시간 속을 달리는' 마코트가 된 듯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자갈밭 위 대숲 벤취에 앉아 석양 물드는 해변가 정취를 만끽, 취기인지 용기인지 모를 엉뚱하고 대범한 포즈로 사진도 찍고, 애틋한 옛기억 더듬다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 본격적인 저녁만찬을 위해 숙소로 이동했다.
해변가에서 꽤 떨어져있고, 주변의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펜션에 비해 다소 초라해보이는 곳이지만 희끗한 턱수염이 멋진 아저씨와 다소 고집스러운 표정에 통통한 체구의 아줌마 부부가 숙소의 유일한 손님들을 맞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고맙고 정겨웠다.
주인 아저씨가 노련한 손놀림으로 참숯을 벌겋게 달궈 마당 좌측에 마련된 천막 속 드럼통을 채우고, 금새 달궈진 철판 위에 돼지고기가 올려졌다.
매점서 급조한 쌈장에 야채, 냉동육이 전부였지만 무엇이 작용했는지 며칠 전 먹은 꽃등심 맛이 저리 가라다. 게다가 필요한 건 매점서 구입해야 한다며 까칠함을 보였던 아주머니가 독에서 갓 꺼내다준 김치는 입 안에서 아삭거리며 시원한 감칠맛이 그만이다. 결국 다음날 반찬하라며 주신 김치는 양이 지나쳐 라면과 함께 몰래 버리는 사태마저 벌어졌다.
먹어도 먹어도 취하지 않는 술에 둥실 떠오른 기분이 좋아 어둠내린 바닷가로 걸어내려갔다. 하늘에 뜬 별들이 반가워 화답하는 차원에서 폭죽을 하나 쏘아올리고, 가사 모르는 어눌한 노래나마 한 명이 시작하면 나머지가 따라하고, 끝나면 다음 사람이 또 시작하는 돌림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그렇게 깊어가는 밤을 지켜보았다.
자정이 훨씬 넘어 잠이 들었건만 조금의 숙취도 피로감도 없이 눈이 떠진 건 새벽 6시경. 다른 일행들도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지만 모처럼의 여유가 달가운 듯 따끈한 온돌방에서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가슴에 품고 수십 킬로를 함께 달려온 카메라와 함께 새벽길 다시 바다로 나섰다. 전날보다 쌀쌀한 날씨에 물안개 머금은 새벽의 해변가는 고즈넉한 동시에 처연했다.
전날 조개구이를 먹었던 곳까지 걸어갔다 숙소로 돌아와 세수를 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밥을 하느냐, 계란을 넣느냐로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 더 바랄 것 없는 만찬을 즐겼던 터라 라면으로 간단히 속을 풀기로 했다.
떠날 때쯤엔 자전거 타며 먹을 초콜릿까지 챙겨줄 만큼 살가운 사이가 돼버린 주인 내외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이틀째 여정 시작.
아주머니는 "가다보면 큰 언덕 두 개를 만날 것"이라며 만만치 않은 섬 지리를 귀띔해주었다.
온 몸을 파고드는 한기에 페달질에 박차를 가하고 얼마 못가 업힐 구간을 만났다. 오르막길을 하나 넘으면 어김없이 힘 안 들이고 공짜로 내려갈 수 있는 내리막길이 나왔고, 그렇게 오르고내리고를 반복하다 드디어 엄청난 높이와 길이의 언덕길을 만났다.
교통표지판 대로라면 10도 경사에 불과하지만, 그 길이 수킬로 미터에 더군다나 자전거로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말이지 숨이 '깔딱' 넘어가길 몇 번을 반복하고도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끌바'(자전거를 끌고 올라감)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코너를 돌면 끝날 거라 믿었던 오르막길이 그 뒤로 다시 같은 길이 만큼 이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숨을 헉헉거리며 머리가 얼얼해질 만큼 사력을 다해 언덕 끝에 오르자, 강화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절경과 함께 올라온 높이 만큼의 내리막길이 시원하게 뻗어져있었다.
이렇듯 여행 속에서 만나는 '길'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삶의 진실을 알려준다. 올라가면 결국 내려올 수밖에 없고, 시작되는 것은 언제나 끝이 나며, 무엇보다 숨이 목전까지 차서 무릎을 꿇고 싶을 때도, 아무런 노력 없이 그저 시원한 내리막길을 달릴 때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매번 그 다음 순간을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길을 걷고 또 걷다보면 왜 우리네 어머니가, 평생 땅만 일궈온 농꾼이 그리도 지혜롭고 강인할 수 있는 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간다.
언제 끝날 지 모를 업힐과 다운힐을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마니산 입구 근처에 다다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속도계는 20km를 더해 총 라이딩 거리 85km를 기록하고 있었다.
전날 여파에 단시간의 맹라이딩에 일행 모두가 지쳐, 서울까지 왕복 라이딩 하는 것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삶이 그렇듯 여행도 절대 무리해서 이로울 것이 없는 법. 마침 우리가 '멈출 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를 논의하던 느티나무 정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촌으로 가는 직행 버스 터미널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전거 네 대를 실을 수 있는 버스를 타야 했던지라 점심식사를 하고도 한 시간여를 더 기다려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꾀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여정이었기에, 자전거로 완주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은 없었다. 멀지 않은 날에 다시 도전하고, 언젠가 반드시 성공할 것을 알기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차창 안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의 온기와 남은 65km를 차에 의지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에 일행 모두 단잠에 빠져들었고, 눈을 떴을 땐 어느새 신촌 근처였다.
터미널에 내려 다시 서강대교로 진입, 여의도를 지나 첫 집합장소였던 안양천 합수부에 도착. 각자 밀린 빨래를 비롯해 정리 못한 일과를 위해 간단한 기념촬영을 하고 해산했다. 마지막 남은 거리를 홀로 달려 집까지 도착했을 때 1박2일간 자전거 위에서 질주한 거리는 총 97.7km였다!
하루 만에 다시 보는 서울,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헤르만헤세가 상상한, 뻔뻔한 건축가들에 의해 지어진 창문도 없고 유리로 된 건물로 가득한 엽기적인 도시지만 잠시 떠났다 돌아와 보니 김현철의 노랫말처럼 서울도 왠지 괜찮은 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1박2일을 보고 또 보며 '나도 저들과 같았으면' 하는 당신, 바로 지금 인터넷도 좋고 지도도 좋으니 대한민국 산천 어디로든 떠날 계획을 세워라. 그리고 주말이 되면 가벼운 심신으로 그 길로 여행을 시작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