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태호 기자
2006.01.13 11:49:49
[이데일리 이태호기자]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의 주범이었던 이란이 다시 세계 원유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핵문제를 둘러싼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UN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로 이어지며 국제사회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제원유시장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 4위의 원유 생산국인 이란이 과거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원유수출의 제약을 받을 경우 가뜩이나 공급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국제원유시장에는 가격 파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원유시장은 허리케인 피해를 극복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수급 압박을 받으며 유가 강세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말 사상 최고가격인 70.85달러로 치솟았던 유가는 멕시코만의 원유시설 복구에 힘입어 한때 50달러 중반대로 떨어졌지만 끊이지 않는 테러 위협과 나이지리아의 정정불안 등으로 곧바로 60달러대로 복귀했다.
이란 핵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유가는 여기서 더 치솟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단 12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과 변동 없는 배럴당 63.94달러로 마감해 보합세를 보였다. 하지만 장중 한때 10월초 이후 최고치인 65.10달러까지 치솟아 앞으로 상황에 따라 유가가 더욱 춤을 출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석유시장 애널리스트들은 이란 핵 문제가 경제 제재로 이어지는 일을 우려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이란은 사우디 아라비아,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 원유 생산국이자 사우디에 이은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이다.
최악의 경우 이란의 원유 수출이 중단된다면 남은 산유국들은 얼마 남지 않은 잉여 생산능력을 동원해가면서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달 하루 39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전 세계 생산량의 5%에 달하는 수준이다. 반면 사우디의 미가동 잉여 생산능력은 하루 130만배럴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비관론자들은 또 한 차례의 석유파동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란은 1979년 혁명 이후 공급량을 축소, 제2차 석유파동을 일으킨 주인공.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1981년 미 정유업체들은 배럴당 35.24달러를 주고 원유를 구입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경우 지금(2005년)의 75.44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네덜란드 소재 에너지안보분석기구(ESAI)의 릭 뮐러 애널리스트는 "서방국가들은 유리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서 "만약 이란에 제재를 가한다면 이란은 생산을 축소할 것이며, 누구도 이를 보충해주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는 중국과 인도 등 대규모 공급계약을 맺고 있는 아시아 주요 국가들에 적잖은 파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이들 국가는 최근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해외 에너지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이란 야다바란 유전 개발에 50%의 지분으로 참여,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매년 1000만톤씩, 25년 동안 수입하기로 이란측과 합의했다. 인도도 20%의 지분으로 야다바란 유전 개발에 뛰어들어 천연가스를 들여올 예정이다.
중국과 인도는 지난 수년간 전 세계의 원유와 원자재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국제 상품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받았다. 특히 중국은 2004년 세계 석유수요 증가분의 30%를 차지하면서 원유시장의 `악마(demon)`로 지목되기도 했다. 중국은 석유 수요의 약 3분의 1을, 인도는 3분의 2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10만배럴의 이란산 석유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란 핵문제를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데 합의함으로써 다음 수순인 경제 제제 조치가 실행될 수 있다는 경고를 높이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 발터 스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은 12일 베를린에서 영국, 프랑스, 유럽연합 외무장관들과 회담을 마친 뒤 "이란과의 대화는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면서 "안보리가 개입해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도 "이란이 핵봉인을 제거한 것은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협상보다 대결을 선택했다는 의미"라며 "이란 정권의 이같은 도발적 행위는 협상의 근간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란측은 비교적 담담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란 최고안전위원회의 호세인 엔테자미 대변인은 TV 성명을 통해 "이란은 여전히 외교적 해결이 생산적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제 하에 핵연구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핵연료 분야에 대한 이란의 권리를 침해할 명분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그동안 핵시설 재가동은 전력생산을 위한 평화적인 조치라고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