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정의 문화로 엿보는 세상] 여배우 기근…없는 게 아닌 `설 자리 없는 것`

by유수정 기자
2016.06.28 10:00:00

배우 송채영 “고착된 현실 치부 아닌 자발적 해결 의식 필요”

배우 송채영(사진=유수정 기자)
[이데일리 e뉴스 유수정 기자] 흔히 문화는 ‘사회를 투영하는 창’이라 표현하죠. 문화에는 그 시대의 현실은 물론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에 매주 화요일 이 시간에는 전반적인 문화계 이슈는 물론 문화에 녹아내린 사회적 현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문화로 엿보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27살 여배우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다. 이는 대체 어떤 상황인 것일까?

사실 충무로 영화계의 경우 여배우 기근 현상이 몇 년째 고착화 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배우 중심의 작품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티켓파워를 가진 여배우가 드물고 흥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여성 캐릭터가 원톱(one-top) 주연으로서 출연하는 영화는 제작조차 시도되지 않기 때문.

이로 인해 우리가 극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형 투자배급사 기획의 영화 대부분은 남성이 주연배우로 출연해 극을 이끌어가는 내용으로 제작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 됐다.

또한 우리나라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전반적인 영화 스토리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만큼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을뿐더러, 남성 중심의 스토리에 갈등구조를 더하거나 보조하기 위한 기능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흔한 이름도 없이 역할을 설명해주는 호칭이나 상황이 이름을 대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실력 있는 여배우라 할지라도 기량을 펼칠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들이 부각될 기회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김고은·박소담·한예리 등 충무로를 장악할 20대 신예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충무로 우먼파워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으나 티켓 파워의 장벽은 여전히 높았으며,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역시나 낮았다.



할리우드 역시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할리우드 흥행작 중 여배우가 주연급으로 출연한 영화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은 공연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남성이 메인 캐릭터로서 극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끌고, 여성은 서브적인 역할로 이를 뒷받침해주기에 급급했다.

옥주현과 바다(최성희)를 비롯해 차지연·정선아·김소현 등 유명 뮤지컬 여배우들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시나리오인 ‘마타하리’·‘아이다’·‘맘마미아’·‘시카고’·‘리타’ 등을 탄탄한 티켓파워로 이끌어나가는 뮤지컬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지만, 연극 무대의 경우 여전히 여배우가 설 자리는 부족했다.

이에 대학로에서 펼쳐진 ‘강풀의 순정만화’·‘쩨쩨한 로맨스’·‘나의 PS 파트너’ 등의 공연에 참여한 배우 송채영씨는 연극 등 공연에서 여배우 기근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 중 하나로 주요 관객층이 20~30대 여성이기 때문을 손꼽았다.

“사실 공연 예술계는 이미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된 상태에요. 배우 홍광호를 비롯해 임태경·박은태·민영기 등 일반적인 대중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일지라도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이들의 공연은 매 회 티켓이 매진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만큼 예매 전쟁이 치열하기까지 합니다. 대학로 공연 역시 마찬가지에요. 탄탄한 팬덤(fandom)을 구축한 남성 배우들의 공연과 회차의 경우 관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죠. 그런데 여성 배우들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티켓파워를 얻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라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여기에 아이돌의 잇따른 공연 무대 진출도 여배우의 설 자리를 좁게 만드는 이유로 자리할 터. 그렇지만 그녀는 또 다른 시선으로 이를 바라봤다.

“실제 공연을 주업으로 삼는 분들은 아이돌의 공연 진출을 마냥 나쁘게만 보고 있지는 않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단발적으로 공연장을 찾은 이들을 잠재적 관객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는 평소 공연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에게 공연의 참된 매력을 선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추후 이들이 새로운 마니아층으로 형성돼 단순한 유명세가 아닌 실력 있는 배우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까지 얻을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감 때문이랄까요.”

더불어 실제 실력 있는 아이돌도 많은 만큼 공연 마니아층을 비롯한 관객들이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을 깨고 이들을 바라본다면, 제 2의 옥주현이나 바다가 탄생해 여배우의 입지를 보다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표했다.

“충무로와 대학로를 가리지 않고 티켓파워를 가진 여배우가 없다고들 말하지만, 과거에 연연하고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기보다는 여배우들이 직접 나서 미래를 바꿔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남자 배우의 경우 대표적으로 배우 조승우를 비롯해 박건형·송창의·오만석·신성록·조정석·엄기준·김무열 등 공연장과 스크린·브라운관을 오가며 활동하는 이들을 모두 열거하기에도 벅차지만, 여자 배우들은 아직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보다 많은 여배우들이 이 같은 문제를 이미 고착된 현실이라 치부하기보다는 자발적 해결 의식을 갖고 다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표하다보면 언젠가는 여배우의 티켓파워도 높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