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신년르포]새해 맞는 상하이의 `두 얼굴`

by윤도진 기자
2011.01.05 11:40:00

백화점선 100위안 휴지쓰듯..재래시장 1위안에 `버럭`
부유층-농민공 소득격차 갈수록 심각..정부도 `딜레마`

▲ 새해 연휴 중국 상하이 중심가 쉬자후이 한 백화점 매스티지 브랜드 매장 앞에 젊은이들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상하이=이데일리 윤도진 특파원] 2010년의 마지막날, 상하이 인민광장 앞 대형 백화점인 라이푸스광창(來福士廣場).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도 유동 인구가 가장 많다는 번화가다. 한파가 몰아친 매서운 날씨였지만 백화점 안팎은 수많은 쇼핑 인파로 들끓었다.

명품 악세사리와 고가 화장품 매장이 즐비한 1층 매장에는 젊은이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매장과 따로 설치된 계산대에는 십여 명이 돈을 지불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다. 2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벌건 100위안짜리를 다발로 들고 물건값을 치루고 있었다.

근처 백화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난징루에 위치한 백화점 신스제(新世界)에는 오후 5시까지 무려 20만명의 고객이 찾아왔고, 매출액은 1억1000만위안(190억원)을 기록했다.

물건을 산 고객만 집계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경인년 마지막날 이 백화점을 찾은 사람들은 한 사람이 550위안, 우리돈 10만원 가까운 돈을 새해맞이 쇼핑에 쓴 셈이다.
▲ 새해 연휴 중국 상하이 중심가 쉬자후이 한 백화점 안 명품 매장. 국내에서는 보기드물 정도로 사람이 많다.

이튿날인 새해 첫날 오전, 인민광장에서 택시로 10여분 거리의 창닝즈루(長寧支路) 재래시장도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연휴 먹거리를 준비하러 나온 인근 주부들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채소 등을 내놓은 노점상들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연일 뛰었다는 물가 탓일까?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들과 손님들의 목소리는 더 높고 날카로운 듯했다. 노점에 들어선 한 40대 여성이 한 근(500g)에 3.5위안 하는 오이를 3위안에 달라고 하자 "관두고 다른 가게에 가보라"는 휑한 대답이 돌아왔다.

시장에서 만난 50대 채소 노점상 천(陳)씨는 "새벽 도매시장에서 100위안 정도를 주고 물건을 떼오면 저녁에 가지고 돌아가는 돈은 대략 150위안 정도"라며 "물가가 올라 손님들이 자꾸 깎으려 드니 한참 대목인 요즘도 어떤 날은 하루 50위안 남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두 장면은 상하이 중심가 내, 불과 차로 10여분 거리의 떨어진 곳에서 목격되는 현실이다. 하루 저녁 수백수천 위안을 거침없이 쓰는 부유층들이 숱한 반면 하루종일 번 돈 50위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농민공(農民工, 농촌에서 이주해 온 도시노동자)`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중국 경제의 중심, 상하이다.



중국 경제의 급속 성장은 고소득 인구를 순식간에 늘렸다. 부유층 급성장과 함께 고가 명품 시장도 날로 커졌다. 상하이 시내 화이하이루, 난징루 등 중심가에는 작년 엑스포 기간을 앞뒤로 코치, 루이뷔통, 티파니, 까르티에 등의 매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그것도 모두 국내에서 보기드문 대형 매장이다.

자산 100만달러 이상의 부자가 67만명을 넘어 미국과 일본에 이어 백만장자가 세 번째로 많은 나라(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 분석)다운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와 달리 도시 서민층인 농민공들의 생활은 개혁개방 초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중국 정부 추산에 따르면 월 평균 소득 1500위안(우리돈 25만원) 남짓의 농민공(가족 포함) 규모는 중국 대륙 내에 2억1100여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한다.
▲ 새해 연휴 상하이 시내 창닝즈루 길가 채소 노점상. 물건을 보던 남자가 값을 흥정하고 있다.


이들 농민공들은 도시 호구가 없어 4대보험, 양로금 등의 사회보장제도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저가주택도 받지 못해 더욱 주거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건축 현장이나 공장 등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 산업재해를 당해도 도시 병원에서는 의료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다.

`물가가 싸니 살 만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하이 물가는 작년말 이미 일부 품목이 홍콩을 따라잡은 데 이어 2~3년 안에 서울도 따라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소득 양극화는 자연스럽게 사회불안의 불씨가 되고 있다. 상하이 명문 교통대학의 공과대학 연구생(대학원생) 쑤리쉐(蘇莉雪, 23) 씨는 "생각없이 흥청망청 쓰는 사람들은 `푸얼다이(富二代, 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은 사람)`뿐"이라며 고소비 행태를 보이는 계층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자기 힘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수십만 위안을 연봉을 받는 푸둥의 펀드매니저라도 그렇게 돈을 쓰진 않는다"며 "정부가 농민공의 생활도 끌어올려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의 세습`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 격인 사회과학원은 지난달 발간한 `2011년사회청서`를 통해 중국의 지니계수가 이미 0.5에 육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니계수란 소득분배의 불평등 척도로 0과 1 사이에서 0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낮음을 의미한다. 천광진(陳光金) 사회과학원 부소장은 "소득분배는 이미 매우 위험한 사회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딜레마다. 바로 개혁개방 30년의 고속성장이 낳은 가장 큰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12차 5개년 규획(12·5규획) 기간 도농·지역·계층간 소득격차를 줄인다는 것이 지도부의 방침. 그러나 자칫 고성장 유지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정부로서도 골칫거리다.

한 거시경제 전문가는 "중국이 이른바 `바오바(保八, 연 성장률 8%)`에 집착하는 것은 경제 패러다임에서 전체주의적 목표를 통해 저소득층을 융화하려는 것"이라며 "중국 경제는 성장을 뒤로 물릴 수도, 분배를 앞으로 끌어다 놓을 수도 없는 정책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