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안철수② "세가지 고민의 해결책 찾고 싶다"

by이의철 기자
2008.08.04 13:40:02

"실패의 경험도 축적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 만들어야"
"벤처기업의 지배구조 과제..기업조직도 민주주의 중요"

[이데일리 이의철 논설위원] -안정적인 벤처사업가 자리를 박차고 공부를 하러 간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안정적이었다. 회사는 초창기 어려웠지만 99년 한 단계 레벨업 하면서 안정화됐다. 그 전엔 매월 직원들 월급 걱정을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됐다. 안철수라는 이름도 유명세를 탔다. 그저 자리에만 앉아 있어도 회사는 돌아가고, 전문성은 1년에 한 두번 미국이나 유럽의 컨퍼런스만 참석하면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때쯤 몇 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떤 생각들인가.

“우선 기업지배구조 문제였다. 벤처기업의 지배구조는 어때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창업자의 선순환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 또 안연구소라는 개인사업체 뿐만이 아니라 산업전반에 도움을 줄 방법은 없을까하는 게 당시 나의 주된 고민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국가경영의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별로 좋지 않은 제도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인 3권 분립은 일을 더디게 만들지 않는가. 만약 도덕적이면서 능력있는 정치지도자가 있다면 그가 독재적으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 효율면에선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엄격한 3권 분립을 주장한다. 왜 그럴까. 사람이란 원래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능력있고 도덕적인 오너가 회사를 경영한다면 언뜻 봐서 성과도 잘 나고 좋을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이너스다. 견제와 균형의 논리가 배제될 경우 그 기업은 잘못되고 만다. 기업조직에선 독재가 오히려 효율적이란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그런데 이같은 잘못된 상식이 어느 순간 에서부터 인가 한국사회에 만연돼 있다”



-이사회의 독립 같은 것을 말하는가.
 
“그런 것들도 포함된다. 장기적인 기업조직이 되려면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다. 포스코 사외이사 하면서 많이 느꼈다. 그간 벤처기업들은 먹고 사는 데 바빠서 기업지배구조 이런 데 신경 많이 못 썼는데, 최소한 코스닥 상장기업이라면 독립적인 이사회 정도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두 번째 고민, 창업자의 선순환구조란 무슨 뜻인가.
 
“실리콘 밸리에 가보니까, 실패의 경험이건 성공의 경험이건 축적이 되더라. 예를 들어 창업자가 회사를 만들어 본 경험이 사회 각 부분에 성공적으로 침투해 들어가게 시스템화돼 있다. 미국에선 기업을 창업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벤처캐피탈리스트도 되고, 대기업에 흡수 합병돼 임원이 되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행정가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면 창업의 경험은 사회 각 부문에 축적되고 다른 조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한국은 이런 선순환구조가 끊어져 있다. 창업기업이 망하면 거기서 끝나고 창업가는 사기꾼이 되거나 신용불량자가 된다. 이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워킹모델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벤처기업 전체에 뭔가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구체화된 것인가.

“역사의 흐름에서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이 영웅이지, 영웅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관점에서도 안연구소 하나가 잘 된다고 해서 오래가지 못한다. 안연구소는 잘되고 있지만 보안 소프트웨어 시장은 척박하다. 그렇다면 그 분야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의사였다가 혁명가로 변신한 프란츠 파농이 생각난다. 안 박사에게 기업가는 혁명가인가.

“너무 과분한 얘기다. 다만 유학을 떠날 때 의사 그만둘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데자뷰(기시감)이랄까. 유학 갈 때도 안연구소 창업할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다만 제대로 된 조언을 하기 위해선 실력을 갖춰야 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부의 길이었다. 또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을 고달프게 하고 싶었다. GMAT시험봐서 학위과정에 도전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이후에 후회는 많이 했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