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늉만 낸 국책은행 역할 조정

by김수연 기자
2007.07.06 11:52:56

역할 축소 없어..골아픈건 `장기 과제`로

[이데일리 김수연기자]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대우증권은 팔지 않는다. 대신 대형 투자회사(IB)로 키운다. 기업은행 민영화는 `중장기`로 검토한다. 정부가 일년 가까이 끌어 6일 마침내 내놓은 국책은행 개편방안의 요지다.
 
결국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개별 국책은행 내부의 몸집 줄이기나 국책은행간의 획기적인 역할 조정은 없었다.
 
현 체재가 고스란히 유지되는 셈이다. 논란이 될만한 이슈는 모호하게 `중장기 검토과제`라고 이름 붙여 미뤘다. 어물쩍 넘어가려는 데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가장 많은 역할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지목됐던 산업은행. 이번 정부 대책으로 인해 달라질 것이 거의 없다.  `산은 출신이 대우증권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가 명문화된 정도가 산은의 피해(?) 수준이다.

개발연대에 대규모 정책자금을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민간경제가 발전한 1990년대 이후로는 할 일이 계속 줄었다. 역할이 줄자 민간 업무에 끼어들면서 민간 금융사들의 원성을 샀다.

대우증권을 자회사로 거느리는 등 설립 취지와 무관한 영역으로 몸집을 불린 것도 곱잖은 시선을 받았다. `폐지되거나 민영화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지만 이번 정부안에서는 이같은 사회적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잘라내는 것 없이 되레 정책금융 업무를 늘리기 위해 조직을 신설키로 했다. 자회사가 방만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지만 고작 인프라펀드 운용사 한개만 매각하는 수준서 그쳤다. 

이밖에 `3개 국책은행 통폐합론` 까지 제기될 정도로 국책은행의 역할을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번 개편방안에는 3개 국책은행간의 업무 조정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는 핵심적인 이슈들에 대해 대부분 '중장기 검토' 과제로 한없이 뒤로 미뤘다.
 
재경부는 기업은행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기은의 민영화는 장기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중소기업정책금융 역할이 당분간 필요하다"며 매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또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시장여건이 성숙하면", "은행산업 구도변화를 감안해" 등등 모호한 표현을 나열해 기업은행 민영화에 기약이 없음을 나타냈다. 
 
수출입은행에 대해서는 "수은의 대외정책금융 지원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전혀 손을 댈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이날 정부가 내놓은 방안에서 그나마 눈에 뜨이는 것은 대우증권과 산업은행간의 업무 조정. 산업은행이 지금 하는 업무 중 투자은행 부분은 떼어서 대우증권에 합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업부 재편은 `단계적`으로 실시하기로 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회사채주선이나 인수합병(M&A), 사모펀드(PEF), 주식파생상품업무 등이 대우증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업무를 떼어낼 것인지 결정된 것이 없다. `정책금융심의회`라는 또다른 기구를 신설해 여기서 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높은 임금과 안정된 고용, 좋은 근무환경, 강한 노조를 가진 산업은행 임직원들의 강력한 반발도 예상돼 순조롭게 추진될지도 미지수다. 

더구나 민간에서는 `산은 IB+ 대우증권` 그림 자체에도 크게 반발한다. 이는 대우증권을 안팔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동시에 대형 IB로 키울 작정이라는 뜻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IB마저 정부 주도로 하겠다는 것이냐`는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 금융사 임원은 "정부가 야심차게 자본시장통합법을 만들고,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IB가 나와야 된다고 주장한 실체가 결국 이거였느냐"고 반응했다.
 
이 임원은 "IB는 그 어느 영역보다도 첨예하게 시장 논리,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라며 "이런 것을 관 주도로 하겠다니, 정부가 키우면 다 된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없다"고 말했다.
 
한편 알맹이 없는 국책은행 역할 재편안은 이미 예견됐다는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국책은행장과 감사는 정부 관료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풍요롭고 평온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자리다. 이런 자리가 없어지는 게 관료 입장에서 달가울리 없다.
 
지난해 하반기 국책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정점에 달하고, 감사원도 감사 결과 '역할 재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자 정부는 `외부 연구기관에 용역을 준다` `TF를 만든다`며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되풀이 했었다. 시간을 끌어 여론의 질타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넘어가려는 `어물쩍 행정`의 전형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