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5味+1] 쫀득쫀득 갑오징어… 김밥을 유혹하네

by조선일보 기자
2006.11.02 12:10:02

통영vs.무안 맛대맛 대결

[조선일보 제공]


▲ 꼬지김밥 알고 보니 충무김밥의 원형.
충무김밥하면 맨밥을 만 김밥, 그리고 접시 한쪽 옆을 차지한 오징어무침과 깍두기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뭉뚱그린 오징어무침이 반찬으로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여러 종류 반찬을 꼬지에 끼워 내다가 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지금처럼 편하게 바뀐 것이라고 한다. 옛맛을 되살리기 위해 그 손 많이 간다는 ‘꼬지김밥’을 5년 전 다시 시작한 옛날충무꼬지김밥(055-641-8266) 집을 찾았다. 통영 토박이들이 어릴 적 먹던 충무김밥 맛과 흡사하다고 칭찬하는 집.

느지막한 오후 들어선 가게엔 손님은 없고 주인 할머니가 자잘한 갑오징어 새끼를 꼬지에 하나씩 하나씩 끼우고 있다. 꼬지 재료는 어묵, 오징어, 갑오징어, 주꾸미, 홍합 등 다섯 가지. 삶은 재료들을 한 꼬지에 한 종류씩 끼워 냉장 보관했다가 손님이 오면 고춧가루 양념을 발라 내놓는다.

1인분(3500원)에 김밥 8개, 3~4가지 종류의 꼬지 6개, 섞박지 깍두기가 시락국과 함께 나온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쫀득쫀득 갑오징어와 고소한 홍합 꼬지가 먹기 좋다. 매콤달콤한 오징어무침과 깍두기 맛에 길들여졌다면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을 정도로 담백한 맛. 양념이 진하지 않아 해산물 맛과 향이 살아있다. 서호시장 시내버스정류소 맞은편.




▲ 멍게비빔밥 야들야들 향긋한 멍게 속살과 고소한 밥의 만남.
갖은 해산물이 들어간 통영 비빔밥은 통영 사람들이 특히나 자랑하는 음식이다. 충무공 탄신일 행사의 제사음식을 주관해오는 등 전통 통영 음식을 전수해온 제옥례(91)할머니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통영 맛’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통영 비빔밥”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숙주·박나물 같은 육지 나물에다 미역·톳나물 같은 싱싱한 바다 해산물이 함께 들어가고, 단백질을 보충하는 민어·조기·가자미 같은 생선 한 마리가 함께 나오는데다, 조개로 만든 장처럼 재료의 맛과 향을 살려줄 수 있는 양념을 쓰는 게 통영 비빔밥의 특징. 멍게비빔밥도 그런 통영 비빔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메뉴 중 하나다. 통영시 문화해설사분들이 추천한 밀물식당(055-646-1551)을 찾았다.

멍게비빔밥이라고 해서 밥 위에 멍게를 조금 얹었겠지 했다. 하지만 웬걸, 멍게 반·밥 반이다. 1인분에 8000원이지만, 비싸다는 생각까지 싹 가실 정도로 일단 멍게 양이 만족스러웠다.

숟가락으로 아무리 뒤집어 봐도 잘게 썬 멍게 속살과 김, 통깨가 재료의 전부. 양념도 참기름, 깨소금, 소금 약간 밖이다. 공기밥은 따로 나온다. 통통한 조기 한 마리가 딸려 나왔다. 쓱쓱 비벼서 한입 먹었는데 싱싱한 멍게 향이 콧속에 훅 끼친다. 씹기도 전에 입 속에 멍게향이 번졌다. 참기름·참깨가 싱싱한 멍게 맛과 어울려 고소하다. 멍게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든든한 한끼 식사, 평소 흐물흐물 멍게를 피해온 분들도 ‘바다 영양별미’로 한번 먹어볼 만한 메뉴인 듯하다.

멍게비빔밥 이외 메뉴는 매운탕(6000원), 장어탕(6000원), 생선구이(6000원) 등. 항남동 국민은행 골목 20m 안쪽.




▲ 굴코스 요리 굴전·굴회·굴찜·굴구이·굴밥까지. 입맛대로 골라먹기.
통영에서 굴맛을 보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향토집(055-645-4808)을 추천한다. 13년간 굴요리만 해온 전문점으로 10가지에 가까운 굴 요리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기 때문. 굴철이 시작되는 10월이 돼야 굴회를 먹을 수 있고 그 전엔 살짝 익힌 숙회가 회를 대신한다.

굴밥, 굴전, 굴회, 굴구이, 굴찜 등 5가지 나오는 굴 A코스(3인 이상 주문가능, 1인분 1만 5000원)를 주문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굴밥. 하얀 쌀밥 위에 적당한 크기의 굴이 먹음직스럽게 올려졌다. 참기름과 진간장을 조금만 넣고 비볐더니 굴 향은 그대로 살아있고 맛은 담백하다.



굴구이는 껍질을 깐 상태로 그릴에 구웠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적당히 익은 속살은 씹을 수록 고소하다. 달걀 속에 도톰한 굴이 2~3개씩 들어있는 굴전은 모양도 굴이다. 조금 싱거워서 양념장에 자꾸 손이 갔다. 굴찜은 가장 실망스러운 메뉴였는데 모양도 맛도 아구찜 양념에 굴만 폭 파묻어놓은 듯 특색을 찾기 힘들었다. “굴 자체가 짭쪼롬한데다 굴향을 살리기 위해 굴찜 양념을 싱겁게 한다”는 설명이었지만 맵지도 달지도 않은 양념은 영 밍밍했다.

역시 산지에 왔음을 느낄 수 있었던 메뉴는 굴회. 아직 알이 완전히 차지 않아 크기가 크진 않지만 보기에도 싱싱한 우윳빛 속살이 달짝지근하다. 세 명이 다섯 가지 음식이 총출동하는 굴A코스를 시키기엔 돈도, 음식양도 부담스럽다. ‘통영 온 김에 온갖 굴 요리를 다 먹어보겠다’고 작정하고 온 사람이 아니라면 먹고 싶은 요리를 한 두 가지씩 주문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굴밥, 굴전, 굴숙회가 나오는 굴B코스는 1인분 1만원(2인 이상 주문가능) 개별메뉴로는 굴숙회(1만원), 굴전(8000원), 굴밥(6000원), 갈치구이(1만 5000원) 등. 무전동 롯데마트 뒤쪽.

 


▲ 우짜 우동이랑 자장이랑 둘 다 먹고 싶을 때? 추억의 우짜드세요.
40여 년 전, 서호 시장에서 우동을 먹던 사람이 주인에게 물었따. “우동을 먹으면 자장을 먹고 싶고, 자장을 먹으면 우동을 먹고 싶은데 이를 우짜면 좋은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하나 둘 자꾸 늘어나자 주인이 우동 위에 자장소스를 한 국자 쫙 끼얹어 내준 것이 우짜라고 하는데. 바로 통영에만 있다는 ‘우짜’(우동+자장) 탄생이야기. 새벽까지 일하던 노동자들과 밤늦게까지 항남동 유흥가에서 즐기던 통영 젊은이들의 출출한 배를 달래주던 것이 바로 우짜였다고 한다. 지금도 고향에 오면 꼭 들러서 먹는다는 통영사람들의 추억의 음식이다. 포장마차에서 우짜를 팔아 모은 돈으로 가게를 낸 항남우짜(055-646-6547)는 20년째 우짜를 팔고 있다.

떡볶이, 어묵을 밖에 내놓고 우동, 자장면 등을 함께 파는 작은 골목 분식점이 날이 어두워지자 어른·아이 손님이 들어차 자리가 별로 없다. 우짜는 이름 그대로 우동 위에 자장소스, 고춧가루를 얹은 모양에다 그 둘을 섞은 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기대만큼’의 맛이었다. 자장과 우동의 만남이 외지 사람들 입에는 잘 안 맞는지 먹으면서도 자꾸 따로 담긴 둘 생각이 났다. 느끼하지 않은 국물을 내기 위해 띠포리(밴댕이의 경상도 방언)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1인분 3500원. 항남동 국민은행 안쪽 골목으로 5분 거리.



▲ 볼락 매운탕 맑아서 담백~한 매운탕도 있다.
통영사람들은 볼락을 ‘뽈’ 또는 ‘뽈래기’라고 부른다. 제철이 따로 없이 일년 내내 맛볼 수 있지만 어획량이 적어 귀한 고기다. 통영에서 잡히는 대부분이 통영에서 소비될 정도. 가을철이 특히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있을 때라고 한다. 작은 크기는 통째로 회를 해 먹고 조금 큰 것은 소금구이나 매운탕을 해먹는다.

한산섬식당(055-642-8330)은 볼락 요리 잘하기로 통영토박이들에게 인정 받은 집이다.

매운탕은 2인분 이상 시키면 냄비에 한꺼번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볼락 매운탕은 1인분씩 따로 그릇에 나왔다. 볼락의 형태도 살리고 국자로 퍼나르면서 식거나 퍼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고 한다. 공기밥과 멸치·김치·굴젓 등 6가지 반찬이 함께 차려진다. 살이 탱글탱글한 어른 손바닥 만한 볼락 두 마리가 그릇에 꽉 들어찼다. 볼락 매운탕을 먹는다고 하니까 통영 사람들이 “국물이 담백한 것이 통영 볼락 매운탕의 최대 특징이지만 양념 진한 매운탕 맛에 익숙한 타지 사람들 입맛에는 안 맞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과연 국물이 ‘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맑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얼큰하고 뒷맛이 깨끗하다. 텁텁한 매운탕에 질릴 때마다 생각날 것 같은 맛.

주인은 “볼락은 어획량이 적어 항상 준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기 전에 미리 꼭 전화를 해서 확인하라”고 말했다. 볼락 매운탕 1인분 1만원. 볼락 구이 4만~5만원. 장어탕 7000원 등.



▲ 볼락 매운탕 맑아서 담백~한 매운탕도 있다.
통영의 대표적인 ‘주전부리’를 물으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꿀빵이지뭐.” 밥벌이하러 타지로 떠난 사람들도 고향을 찾을 때면 꼭 한번 들른다는 집이다. 정해놓은 개수만 팔고 가차없이 문을 닫는다기에 점심때쯤 오미사꿀빵(055-645-2467, 사진) 가게로 갔는데, 이런, 가게 앞에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쳐 당분간 쉽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닫힌 셔터 앞에서 기운이 쏙 빠져 있으니까 동네사람들이 “비슷한 꿀빵을 제과점에서도 한다”고 일러줬다.

이문당 서점 맞은편에 네프 과자점(055-643-4257). 꿀빵은 물엿이 듬뿍 바른 팥 도너츠였다. 속에 든 고운 팥이 그리 달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기름 맛과 잘 어울린다. 아무리 욕심을 내도 달아서 두 개는 먹기 힘들 듯. 점심때쯤 되야 꿀빵이 나온다. 여섯개 들이 한 팩에 3000원.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