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Crisis)⑥증시 `놀라운 회복력`…그 이후는
by윤도진 기자
2009.09.16 10:39:01
<2부> 남겨진 과제들
외국인 수급따라 기사회생..`바닥 차고 글로벌 주도`
경쟁력 재평가 `IT·車업종` 부각..녹색성장 新테마로
회복 이끈 `저금리·환율` 마이너스 변수될까 우려
[이데일리 윤도진기자] 2009년 가을, 세계 증시는 1년전 깊게 패인 금융위기의 골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 ▲ 리먼 사태 이후 OECD 주요국 증시 상승률(2008년9월12일~2009년9월11일, 자료: KR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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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내 증시의 회복은 유독 빠르고 강하다. 리먼 사태 직전(작년 9월12일) 코스피 지수는 1477.92. 꼬박 1년 뒤인 지난 11일 코스피 마감 지수는 1651.70을 기록했다. 회복을 넘어서 오히려 11.8%나 높아졌다.
OECD 30개 회원국 증시 가운데 작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은 코스피를 포함해 단 4개국(터키, 멕시코, 스웨덴 포함) 증시 뿐이다.
금융 위기의 발원지인 미국(다우존스 산업지수 -15.9%)을 비롯해 영국(FTSE 100지수, -7.5%), 일본(닛케이 225, -14.5%) 등이 여전히 위기 이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속도다.
| ▲ 지난 1년간 코스피지수 추이(2009년9월12일~2009년9월14일, 종가기준, 자료: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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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파산 소식이 들려온 작년 추석 연휴 이튿날 코스피는 90.17포인트에 이르는 낙폭을 보이며 6.10% 폭락했다. 순식간에 1400선이 무너졌다.
글로벌 위기가 불러온 시장의 공포는 10월께 극에 달했다. 급기야 10월22~24일 사흘간 250포인트가 빠지며 코스피 1000선이 깨졌다.
27일 장중엔 2005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892.16까지 내리꽂았다. 정부가 한·미통화스와프체결 등을 무기로 진화에 나섰지만 회생은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미네르바 신드롬`이 불거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11월 이후 반등을 시작한 지수는 올초 1200대까지 올라섰지만 다시 3월 위기설`을 겪으며 1000선으로 물러섰다. 달러-원 환율이 1500원대까지 떨어진 것이 다시 우려를 키웠다.
고대했던 반전이 일어난 건 이 때쯤이었다. 외국인들은 환율 하락을 계기로 실적 개선이 엿보이는 국내 증시 대형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투자금을 회수해간 외국계 기관들은 한숨을 돌린 뒤엔 자국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작년 한해 국내 증시에서 42조원 이르는 투자금을 빼내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4~5월 각각 4조원이 넘는 순매수를 보였다. 살아난 투심은 5월께 코스피 지수를 위기 이전 수준인 1400선 위로 되돌려 놓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의 기사회생 저변에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국가 대표급 기업들에 대한 재평가가 깔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98년 외환위기 직후 증시와 비교해 보면 당시에는 회복을 이끈 것이 증권, 건설업종이었던 반면, 지난 1년간 위기 극복에는 소위 `승자의 효과(survivor`s benefit)`를 거둔 IT, 자동차업종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인시킨 실적 개선과 낮은 원화가치에 따른 환차익 기대는 외국인의 공격적인 매수를 유도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대세는 중국 관련주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머징 마켓이 부각되면서 중국의 호황과 연동해 성장이 기대되는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철강, 조선, 화학업종이 국내 증시를 이끌었다.
그러나 위기를 겪으며 시장의 위계질서에 변화가 일어났다. 임정석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위기 전 상대적으로 소외를 받았던 국내 IT, 자동차업종이 올들어 글로벌 경쟁력을 재평가 받으며 균형감 있게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5월 이후 박스권에 붙잡혔던 지수를 7월 이후 1600선까지 다시 밀어올린 것도 이들이었다. 삼성전자는 80만원, 현대차는 11만8000원이라는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글로벌 IT 1위기업 인텔을 넘보는 수준으로 올라섰고, 현대차는 기와차와 합친 시가총액이 미국 빅3의 유일한 생존기업 포드를 넘었다.
| ▲ 최근 1년 인텔과 삼성전자의 주가 추이(자료: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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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기 극복의 화두로 각국 정부가 `녹색성장`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것은 `LED(유기발광소자), 2차전지` 테마의 급부상을 불러왔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 LG화학 등은 대표적인 수혜주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주가가 두배 이상씩 상승했다.
지금은 시장 어디에서도 공포와 혼란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국내 증시의 회복력을 감탄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기업 펀더멘털의 회복이 기반이 되긴 했어도 국내 증시의 회생은 정부차원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과 비정상적인 환율 등의 여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두 변수가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증시 유동성 공급의 기반이 된 저금리 기조는 어색한 상황을 넘어 점차 불편한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연말로 갈수록 `출구전략`이 점차 구체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간 증시를 지탱해온 자금력의 위축을 예상할 수 있다.
올들어 23조원에 가까운 외국인 순매수를 이끄는데 일조한 환율변수도 점점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재 1200원 초반 수준에서 1100원대로 넘어가게 되면 글로벌 자금의 국내 주식시장 유입 속도는 더뎌질 공산이 크다. 기업들의 실적 개선에 따른 효과도 3분기가 정점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빠른 회복세를 보인 국내 경제지표, 위험자산 회피심리 완화, 외국인의 강한 매수가 랠리의 여건이었지만 이 같은 요인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코스피의 속도 조절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긍정적인 전망을 불러오는 요인도 적지않다. 신흥 아시아 시장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한국시장의 밸류에이션 매력, FTSE선진지수 편입 등은 외국인의 `사자` 행렬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동양종금증권의 경우, 최근 연말 코스피 상단을 1800으로 올려잡았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 가장 빠르게 회복되고 있고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경기회복이 진행되면 또다시 매출액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배경에서다.
결국 지금껏 내달린 국내 증시가 추가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제가 바닥을 확인한 수준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정상궤도에 들어섰다는 신호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문광 현대증권 투자분석부장은 "1600선까지는 다른 국가 대비 상대적인 투자매력, 실적에 대한 기대가 시장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 됐지만 앞으로는 경기 선순환이 기반이 되어야 추가 상승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