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예술 40년… 저항을 넘어 일상과 숨쉬다

by한국일보 기자
2007.10.01 12:05:00

현대미술관서 전시·책 발행

▲ 1967- 무동인 신전동인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한국일보 제공]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삼는 행위미술(Performance Art)이 이땅에 도입된 지 40년. 완성과 동시에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일회성으로 인해 소멸을 제 운명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행위미술의 40년 역사가 처음으로 집대성됐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07’ 전시에 맞춰 한국 행위미술의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눠 정리한 동명의 책(결 발행ㆍ3만8,000원)이 발간됐다. 



1967년 12월14일 오후 4시, 중앙공보관 제2전시실. 가운데엔 검은 우산을 든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고, 한 무리의 남자들이 여자 주위를 돌며 우산에 촛불을 꽂는다. 여자가 일어서 함께 원을 그리며 돌다 앉으면 남자들은 여자에게 달려들어 촛불을 끈 후 우산을 찢고 짓밟는다. 당시 언론이 “괴상한 미술”이라고 일제히 비판했던 한국 최초의 행위미술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다.

이 시기 행위미술은 유신체제라는 정치적 억압에 숨통을 틔우기 위한 예술적 몸부림이었으나, 퇴폐와 불온의 낙인이 찍힌 채 사회로부터 무관심과 냉소를 받으며 한낱 해프닝으로 그치고 만다.

빨대로 투명풍선을 불어 짧은 반바지와 머플러만 걸친 여인의 몸에 붙인 후 터뜨리는 ‘투명풍선과 누드’(1968년), 육교 위에서 행인들에게 찢어진 콘돔을 나눠주는 ‘콘돔과 카바마인’(1970) 등이 빗발치는 비난과 함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10월 유신을 전후로 당국의 탄압이 심화하면서 행위미술은 저항적 비판을 그치고 미술 내적인 개념과 논리를 다루는 쪽으로 선회한다.

 




군사정권의 정치적 억압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은 행위미술에도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했다. 대부분 추모나 장례의 제의, 신체 구속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어두운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를 표출했는데, 토기를 수장하고 장례를 치르는 김용문의 ‘옹관장’(1987년), 물고기를 안고 관에 누운 이상현의 ‘잊혀진 전사의 여행’(1988년) 등이 이에 속한다. 

▲ 1990- 이불 <수난유감>
90년대 들어선 고 백남준이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굿판(1990년)을, 이불은 12일간 도쿄 시내에서 강아지 인형을 쓰고 돌아다니는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낀줄 아냐?’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90년대 이후 행위미술은 사진 비디오 등 타 매체와 결합해 시공간 제약의 극복을 모색한다. 행위 미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장르 내적으로도 기존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시각어법이 우위를 점한다.
▲ 2007- 이윰 <빨간블라우스 힐링 미니스트리>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나 플래시몹(Flash Mobㆍ불특정 다수의 군중이 한데 모여 행사나 놀이를 벌이고 사라지는 것)에서 보듯 행위미술은 이제 독립된 미술 장르에서 벗어나 일상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뮤지컬 설치 거리캠페인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는 이윰의 ‘빨간블라우스’ 연작, 산업자본과 결합한 낸시 랭의 패션광고 등이 대표적이다.

40년에 걸친 한국 행위미술은 불가피하게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사진과 신문ㆍ잡지기사, 영상 등 100여점의 자료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28일까지 열린다. (02)2188-6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