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마당발' 박용학 전 대농그룹 명예회장 별세

by박철근 기자
2014.08.03 19:56:31

한일 경협회장·무협 회장 역임…통상·무역 확대 노력
수출 강조 면방직 사업 적극 육성…미도파 인수로 유통업도 진출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국내 면방직 업계의 선구자이며 재계 대표적인 마당발로 불리던 박용학 전 대농그룹 회장이 지난 2일 별세했다.향년 99세.

박 전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던 당시 특유의 사교성과 유머감각으로 재계 마당발로 꼽혔다. 그는 한국경제의 성장 조건으로 수출을 꼽았다.

박 전 명예회장은 이 같은 소신과 사교성을 바탕으로 한일경제협회 회장, 무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 차원의 대외통상과 무역교류 확대에 힘썼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그는 원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자본금 100만 원으로 대한계기제작소를 시작으로, 오양실업(1949년), 대양비료(1953년)를 연이어 설립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에는 무역회사인 대한농산을 창업했다.

경영자로서 박 전 명예회장은 국내 수출품목 중에 방직물을 가장 경쟁력 있는 품목으로 꼽았다. 1968년 쌍용그룹으로부터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을 인수해 대농그룹을 국내 면방직 업계의 선도업체로 육성한 그는 1969년 미도파백화점을 인수해 유통업까지 진출하는 등 사세를 확장했다.



하지만 1972년 발생한 석유파동으로 위기에 빠진 대농그룹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중에도 섬유산업에 집중한 박 전 명예회장은 10여 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 코리아헤럴드를 인수하는 등 사세를 키워 대농그룹을 재계 30위까지 올렸다.

박 전 명예회장은 1989년 장남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대농그룹은 1990년대 중반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한 신동방그룹으로부터 미도파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차입하고 곧이어 발생한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체됐다.

그는 ‘인간중심 경영’과 ‘사업보국’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늘 주위에 함께 일하는 동료를 무한 신뢰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명예회장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장남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과 딸 선영ㆍ경희 씨, 디큐브아트센터 극장장 은희 씨, 사위 이상렬 청운대 총장이 있다. 발인은 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