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윤영환 기자
2006.07.10 11:15:23
[이데일리 윤영환 칼럼니스트] 가뜩이나 역량이 부족한 애널리스트가 기명칼럼까지 꾸려가는 것은 적지않은 부담입니다. 그래도 다양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표현과 형식의 자유로움은 놓치기 어려운 매력입니다. 이 칼럼은 이데일리에서도 기사화했던 지난 7월 3일자 이슈리포트 “건설PF의 신용이슈”와 4월 28일자 이슈리포트 “CP시장의 오딧세이”의 보론에 해당합니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불거져 나오는 것처럼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대신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현상을 풍선효과라고 한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근원적인 해결보다는 대증적이고 현상적인 접근을 할 때는 반드시 다른 곳에서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크레딧 애널리스트의 영원한 과제인 신용위기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점차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당국이 개입한다. 당국의 1차적인 목적함수는 대개 금융시장, 특히 은행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 당국이 위기주체에 대한 은행의 과다한 신용공여를 억제하면 위기주체는 금융채널을 바꾸게 된다. 일부 재무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통제가 느슨한 금융시장에의 의존도를 급격히 높이는 방향이 되기 쉽다. 당국의 위기관리정책이 오히려 위기관리능력이 취약한 금융부문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풍선효과를 낳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이런 현상은 여러 번 관찰된다. 대표적인 것이 대우사태 직전의 ‘5대그룹 회사채 인수제한’과 카드위기 직전의 ‘동일인여신한도 조정’이다. 그러면 은행 신용공여 억제의 유탄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바로 CP시장이었다. 위기직전 해당 CP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서울대 이창용 교수의 연구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예전의 우리나라 CP시장은 회색지대 금융시장이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정보투명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CP시장은 풍선효과에서 좀처럼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지금 건설PF에서도 이런 양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일 이슈리포트를 발표하고 PF ABS와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는 지인들과 통화를 했다. 통상적인 모니터링이다. 지인들은 이슈리포트에서 지적한 사안들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면서, 한 가지 의미있는 귀뜸을 해주었다. 요즘 PF ABS의 등록이 보다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특히 기간 미스매치나 사업성 등에 문제가 있으면 등록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최근 PF ABS의 실패사례가 보고되고, 또 이데일리 등을 통해 PF ABS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감독당국의 문제의식이 강화된 결과일 것이다.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바로 ABCP로의 풍선효과다.
자세히 살펴보면 ABCP는 두 가지 다른 경로로 발행된다. 구체적인 현금흐름이 설계에 반영된 ABCP는 통상 자산유동화법에 기반하여 발행된다. 자산유동화법을 활용하기 위해 일단 ABS로 발행되어 ABCP로 차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등록도 하고 통계에도 잡힌다. 이 경우에는 소위 풍선효과의 우려가 없다. 하지만 현금흐름이 구체화되지 않은 ABCP는 보통 상법상 주식회사의 모습으로 발행되는데 등록의무가 없기 때문에 통계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 ABCP도 적지 않고, 또 최근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풍선효과의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당국의 등록절차 강화가 당장 소위 ‘비등록 ABCP’의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워낙 자료 구하기가 어려운 영역이지만, 나름대로 수집한 자료나 탐문의 결과도 대략 그렇다. 하지만 등록절차 강화가 최근의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풍선효과가 점차 가시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ABS는 괜찮고 ABCP는 안되다거나, ABS에 비해 ABCP가 열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ABCP는 나름대로 차별화된 장점을 보유한 훌륭한 금융상품이다. 하지만 무질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명색이 금융상품인데도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면 더 말해서 뭘 하겠는가?
이 시점에서 당국이 ABS시장의 건전성 보호를 위해 행정절차를 강화한 것은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풍선효과를 통해 부작용 심화의 원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직접적인 행위규제보다 더욱 절실한 것은 정보공유의 확대를 통해 시장의 자율규제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PF와 관련한 정보체계를 정비하고 업체들의 충실한 정보공개를 유도하며, CP시장의 정보공개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건설PF와 관련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지만 걱정만 앞세우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다소간 거품의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성취가 있었고, 더 많은 발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도약과 위기의 갈림길에서 사안별 대응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지만 절대로 충분한 것일 수는 없다. 더 큰 시야를 가져야 한다. 정보투명성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시장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편이다.
다윈은 자연에 비약이 없다고 했지만, 시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Credit analy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