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안보 위해 꼭 가야할 길"…'산유국의 꿈' 최일선에 서다[기관장 열전]

by김형욱 기자
2024.07.28 18:53:44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
세계적 석유기업 '셸'서 20년 일한 전문가
3년 공들인 '광개토 프로젝트' 첫 단추
2031년까지 동해가스전 등 24공 시추
정치적 논쟁 뒤따르는 모험적 도전
"차분히, 꾸준하게 추진해야" 지론

대통령의 손발이 돼 정책을 펴는 곳이 정부 부처라면,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 곳은 공공기관입니다.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무엇보다 공공기관장들의 적극적인 역할과 협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데일리는 정부의 국정 과제와 각종 정책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주요 공공기관의 CEO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차분히, 꾸준하게.’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67)이 세계적 석유기업 셸(Shell)에 20년 몸담으며 체득한 ‘키워드’다. 석유·가스전 탐사는 성공 땐 큰 결실로 이어지지만, 그만큼 상업성 있는 유전을 찾을 확률이 낮고 적잖은 돈이 들어가기에 모험적 도전일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정치적 논쟁도 뒤따른 이력이 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결국 과학·기술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차분히 꾸준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국내 최고 석유 전문가로 꼽히는 김동섭 사장이 지난달 대한민국을 다시 산유국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의 최일선에 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3일 포항 앞바다(제8광구 및 6-1광구)에 석유·가스 35억~140억 배럴 존재 가능성이 있다며 석유공사의 탐사시추 계획을 승인한 것을 계기로 그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계획 승인 직후 올 12월 첫 탐사시추 개시를 목표로 국내외 투자 유치 작업에 착수했다. 개당 1000억원 가량이 들어가는 시추공을 다섯 개 이상 뚫어야 한다. 즉 최소 5000억원 이상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김 사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석유 전문가다. 서울대 조선공학 학·석사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박사학위 취득 후 20년간 세계적 석유기업 쉘에서 연구원, 아시아태평양 지역 엔지니어링부문 책임자를 지냈다. 이후 SK에너지에서 기술원장을 거쳐 2021년 국내외 석유개발과 비축을 맡은 공기업 석유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한 가지 목표를 정하면 그곳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강한 추진력이 있는 리더라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그는 취임 2년 차인 2022년 석유공사의 12년 연속 당기순손실 흐름을 끊고 흑자 전환시켰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흑자 기조다. 조직 내실화 노력이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른 해외 유전 수익 확대와 맞물린 성과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지난 6월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동해 가스전 탐사시추 프로젝트도 그의 강한 추진력 아래 오랜 기간 이뤄져 온 중간 성과물이다. 사람들은 윤석열 대표의 깜짝 발표에 주목했지만, 그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하루이틀새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김동섭 사장은 취임과 함께 ‘제2의 가스전’ 발굴을 준비해 왔고, 그 이듬해부터 10년에 걸쳐 24공의 시추()에 나선다는 ‘광개토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사람들에겐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을 수 있지만, 그에겐 장장 3년간 준비해 온 중장기 프로젝트의 첫 단추를 끼운 것에 불과한 셈이다. 김동섭 사장은 현재도 안팎의 관심을 뒤로하고 최적의 조건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는 발표 직후 이어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전에 해왔던 일을 똑같이 해왔는데 관심이 너무 커져 깜짝 놀랐지만, 큰돈이 들어가는 사업이고 해외 투자유치도 필요한 만큼, 이 정도의 관심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높아진 관심에 대한 그의 유일한 걱정은 기대와 우려가 커지면서 직원들이 관련 이슈에 대응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동해가스전 프로젝트처럼 꼭 해야 하는 일이고 기술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앞으로의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 여러 어려움이 예상된다. 성공을 의심하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당장 내년 초 첫 탐사시추에 실패한다면 이 부정 여론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첫 탐사시추에 성공하더라도 상업생산은 2027년 이후다. 모든 유전 탐사 프로젝트가 그렇듯 최소 3~4년 동안 1년에 1~2공씩 5곳 이상을 탐사시추해야 성과를 바라볼 수 있다. 동해-1 가스전 역시 탐사에서 상업 생산까지 6년이 걸렸다. 그동안 10공을 팠으나 모두 실패했고 11공째가 돼서야 비로소 성공했다. 미심쩍어하는 여론이 이번에도 성과를 기다려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다시 산유국 지위를 되찾을 수 있다.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95번째 산유국이었다. 석유공사는 2004~2021년 동해 가스전을 운영했다. 11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입해 24억달러를 회수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곳은 지난 2021년 고갈됐고 우린 산유국이 누려 온 경제·외교적 실익을 더는 누릴 수 없게 됐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올 4월16일 울산 석유비축기지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석유공사)
김동섭 사장이 절치부심하며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 온 것도 이 같은 필요성 때문이다. 오랜 탐사 과정에서 쌓인 데이터와 탐사를 위한 이미징 기술 발전으로 성공률도 높아졌다. 그는 “한국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려면 꼭 가야 하는 길”이라며 “앞으로 돈도 많이 들 것이고 등락도 있겠지만 꾸준하고 신중하게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김 사장이 이번 프로젝트의 결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3년의 공식 임기는 지난 6월7일로 끝났다. 물론 프로젝트가 이제 막 닻을 올린 만큼 그의 공식 임기가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본인의 거취는 크게 중요치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현 관심사는 이 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꾸준히 진행되고, 나아가 우리가 산유국 지위를 되찾는 결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김동섭 사장은…

△1957년 출생 △경북사대부고 △서울대 조선공학 학·석사 △미국 오하이오대 대학원 공학박사 △미국 로열 더치 셸 아시아태평양지역 엔지니어링부문 책임자 △SK에너지·SK이노베이션 기술원장 △울산과기원 산업공학과 교수(정보바이오융합대학장) △해외자원개발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