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백신 늑장 도입하고 '독자 승인' 식약처 압박만

by노희준 기자
2020.12.20 13:58:01

식약처에 충분한 심사 기간을 허(許)하라

(사진=AFPBNews)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이론적으로 우리가 우리 허가 체계를 갖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이나 외국의 허가 진행 상황이 우리의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 중의 하나라는 것을 어떻게 부정하겠습니까.”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지연 가능성이 제기된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도입과 관련해 국내 ‘독자 승인’ 방침이 거듭 강조되는 데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는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밝힌 것처럼 “백신 도입은 미 FDA 승인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고 여러차례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식약처 고위 관계자는 “(백신 허가 요건에) 자료, 시험검사, 임상시험 등 여러가지 중요 요소가 있다”며 “그중에 실제로 개발국이나 해외에서 긴급사용승인이나 승인을 받았느냐도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백신 지연 도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정작 해외 의약품의 허가 권한이 있는 식약처를 놔두고 주위에서 ‘조속 심사’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방대본뿐만 아니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백신 접종은 3월 이전에 시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정치권까지 가세하는 형국이다.

문제는 백신 도입 계약 체결 등은 늦어지는 상황에서 2~3월 접종 시기만을 강조하면 정작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판단을 기초로 허가를 내줘야 하는 식약처가 제대로 심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백신 도입의 ‘부실 심사’가 우려된다는 얘기다.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도입은 정부 기준으로 봐도 늦어지고 있다. 18일 진행된 ‘관계부처 백신 확보’ 브리핑까지 계약이 체결된 것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뿐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1월 “두 회사(화이자·모더나)에서도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우리와 빨리 계약을 맺자고 그쪽에서 재촉하는 상황”이라고 밝힌 게 무색한 상황이다.

백신은 건강한 사람이 접종하기 때문에 안전과 효능에 대한 검증이 어떤 다른 의약품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그 검증은 전문적인 영역이라 식약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안그래도 식약처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심사를 조속하게 끝내기 위해 심사 기간을 기존 180일에서 40일까지로 단축했다. 여기에 백신 품목허가 후 시판에 앞서 추가로 거쳐야 하는 국가출하승인 절차 역시 통상 60일 걸리는 기간을 20일로 앞당겼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성과 효능에서 논란이 많아 아직 임상 3상이 끝나지 않은 데다 개발국인 영국조차 허가를 내주지 않은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을 우리가 시기를 못 박아 식약처가 독자 승인을 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실상 식약처에 대한 압박이다.

해외 개발 백신의 국내 도입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대표는 “그렇게 서둘러 도입했다 부작용으로 사고라도 나면 식약처에 화살이 갈 게 뻔한데 식약처도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식약처가 제대로 심사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제도적 여건 등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시민들은 백신 접종 시기와 관련 ‘조기 도입’보다 ‘안전한 접종’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발표한 코로나19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53.1%가 해외 경험 등을 지켜보다가 접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가급적 빨리 접종해야 한다는 응답은 43.5%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