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함정선 기자
2013.10.06 16:08:22
주요 공기업 올해만 17조 CP 발행..연내 만기도래 11조
발행 손쉬운 단기 CP에 의존..자본시장 전체에 '부담'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동양그룹 사태로 기업어음(CP) 남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주요 공기업의 CP 발행도 1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행에 제약이 없다 보니 공기업까지 무분별한 CP 발행에 동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6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주요 11개 공기업이 발행한 CP는 17조원 규모에 이르고, 연내 CP 만기도래액도 11조원을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에만 CP 4조6100억원를 발행했다. 한국철도공사도 올해 2조8400억원,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전력공사도 각각 2조3000억원대의 CP를 찍었다.
올해 새정부 출범과 함께 기관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된 가운데 공기업이 너나없이 발행이 손쉬운 1년 미만 CP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공기업은 발행이 번거롭고 발행액이 300억원을 넘는 경우 시나 시의회,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회사채나 특수채 대신 공시 없이 발행할 수 있고 단기간에 쓰고 갚을 수 있는 CP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발행한 4조6100억원의 CP 물량 모두가 연내 만기도래할 정도다. 공기업들은 짧게는 하루 이틀 쓰는 CP도 발행하고 있다.
또한 공공기관은 1년 넘는 CP를 발행하는데도 일반 기업보다 자유롭다는 점도 한 몫했다. 정부가 발행에 제약이 없는 CP 남용을 막기 위해 만기 1년 이상 CP를 발행하도록 규제를 강화했지만 공공기관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기관의 경우 일반 기업과 달리 대부분 ‘A1’ 수준의 우량 신용등급을 받았고 정부의 지원가능성 때문에 동양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경영평가가 좋지 않고 자금난을 겪고 있는 공기업의 경우, 공기업이라고 해도 CP 만기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CP를 단기간 쓰고 갚는다는 것 자체가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다는 뜻이다.
기관평가에서 최하위인 ‘E’를 받은 대한석탄공사의 경우 만성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1조800억원의 CP가 만기도래한다. 용인도시공사의 경우 용인시와 행정안전부 승인 없이 회사채를 무단 발행해 회사채 발행이 금지되자 곧바로 CP를 발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기업의 CP 확대가 금융시장을 혼탁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량 신용등급과 공기업 ‘브랜드’를 앞세워 일반 기업의 CP 시장을 잠식할 경우 자본시장 전체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가 터졌을 경우, 대부분 돈이 공기업 CP에 몰려 일반 기업이 자금난을 겪게 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이 동양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CP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에서 자유로운 공기업이 CP 시장을 오히려 키워 시장 질서를 해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가능성, 독과점 지위 등으로 우량 신용등급을 받고 CP와 같은 단기 시장 차입금에 의존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며 “파산에 가까운 자금상태에서도 공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CP를 발행하는 사태까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