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바람 그리고 흔들리는 마음…무박2일 순천 시티투어

by경향닷컴 기자
2009.02.19 15:50:00

[경향닷컴 제공] 유치원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즘 봄이 ‘보리밥 쌀밥 놀이’를 하고 있단다. 볕발이 곱고 다사롭다가 코끝이 매울 정도로 추워진 변덕스러운 날씨를 빗댄 말이다. 아이들은 봄이 올듯 말듯 약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하기야 2월은 봄도 겨울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2월이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계절이다. 봄이 가슴팍까지 밀고왔다가 다시 매운 추위가 이어지면 봄맛을 본 사람들의 마음이 들썩거리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볕 좋은 남도땅에 눈길이라도 주게 된다. 순천에 다녀왔다. 순천만 갈대밭은 2월을 빼닮은 여행지다. 스산한 갈대는 가을·겨울에 더 어울리는데 바람과 햇살엔 봄기운이 잔뜩 묻어있다. 봄과 겨울이 적당히 섞여있다. 그럼 거창한 여행계획을 세울 필요없이 편하게 순천을 여행하기 좋은 방법은? 야간열차 타고 내려가서 시티투어 하기다. 순천만, 선암사, 낙안읍성, 드라마세트장을 하루에 다 돌 수 있다. 무박 2일 코스에 딱 8만원이면 된다. 전국에서 가장 시티투어프로그램이 잘 돼있단다.




야간열차엔 뭔가 낭만 같은 것이 있다. 밤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고단한 인생들’이나 여행광들이다. 밤기차는 가장 급이 낮은 무궁화호가 많다. 시간이 돈인 비즈니스맨은 야간열차를 탈 필요가 없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는 오후 9시45분발 열차와 오후 10시50분발 열차 두 종류다. 모두 무궁화호. 도착시각은 각각 오전 2시42분과 오전 3시44분이다.

막차를 탔다. 요즘 야간열차는 많이 변했다. 객차는 KTX가 나오기 전의 새마을호 수준이다. 좋다. KTX보다 넓다. 야간열차에선 캔맥주에 오징어가 어울리는 법. 한참을 기다려도 ‘홍익회 아저씨’는 안왔다. 식당칸이 따로 있으니 이용해달라는 안내방송만 나왔다. 식당칸 옆엔 노래방도 있고, PC(유료)도 있다. 안마의자를 놓은 마사지룸도 있다. 기차는 놀랄 만큼 업그레이드 됐다. 반면 운치는 없어졌다. 승객은 60대가 절반이었고, 등산객들이 20~30%는 돼보였다. 꼭 껴안은 채 앉아있는 연인들도 보인다. 열차는 구간마다 서면서 노인들을 내려줬다. 산악인들은 구례구역에서 내렸다. 이들은 터미널에서 해장국 한 그릇 먹고 노고단에서 새벽산행을 시작할 것이다. 승무원은 표검사도 안했다. 기차표에 구멍도 안뚫어주니 심심하다. 그래도 전봇대가 일렬로 늘어서서 반짝거리는 한밤중의 들판을 지나칠 때면 여행광들은 설렌다.





새벽 3시50분. 순천역을 나와 여관을 잡았다. 역 앞엔 여관이 제법 많았다. 가까운 여관을 하나 골라 들어갔는데…. 아뿔사! 침대가 원형이다. ‘러브호텔’ 수준을 넘어 ‘러브 전용 모텔’이다. 값은 쌌다. 2만5000원. 가족들과 갔다면 낭패였을 게 분명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순천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찜질방이 있다고 한다. 24시간 운영한다고 한다. 잠자리는 확실히 모텔이 편하다. 하지만 잠깐 한숨 돌리려면 찜질방도 괜찮다. 순천역에서 시티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에 순천역 근처에서 쉬는 게 좋다.


오전 9시30분 순천역 앞에 버스가 도착했다. 출발은 9시50분. 가이드는 나희경씨였다. 평일이지만 승객은 많았다. 진주에서 온 대학생 15명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32명이 시티투어에 참가했다.

첫번째 여행지인 드라마세트장은 마뜩찮았다. 전국팔도에 세트장이 있는데 굳이 순천까지 와서 세트장을 둘러볼 필요가 있을까? 이런 불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