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류의성 기자
2009.05.27 11:18:40
[이데일리 류의성기자] 지난 23일 서울 잠실야구장.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 경기가 열린 이날 야구장 입구에서는 눈길을 끄는 한 행사가 열렸다.
제조업체와 상표를 가리고 화면만 내놓은 채 진열된 3대의 TV. 그리고 그 옆에는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보드판 2개가 마련돼 있었다.
A, B, C 3대의 TV 중 가장 화질이 좋다고 생각되는 제품을 골라 스티커를 붙이는, 이른바 `블라인드 마케팅` 행사였다.
참여자들은 각자 선택대로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스티커들이 C제품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C에 붙는 스티커가 많아질수록 행사 진행자들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약 30여분 후 행사가 일단 잠시 중단됐다. 그리고 제품을 가렸던 스티커가 떼어지자 주최측이 당황했던 이유가 드러났다. 스티커가 몰렸던 C제품은 주최측이 아닌, 경쟁사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진열된 3대의 TV 중 A는 주최회사 LCD TV(CCFL 채용제품), B는 주최회사 LED TV, 그리고 C는 경쟁사 LED TV였다.
LED TV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자사 제품 화질이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오자 주최측이 당황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여기까지는 행사 성격상 일어날 수 있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행사 진행자들이 주최회사 LED TV의 우수성을 설명하면서 관람객들에게 문화상품권을 제공하는 등 시선을 모으는 동안 다른 관계자는 한쪽에 세워져 있던 보드판을 들고 잠시 사라졌다.
잠시 후, 이 관계자는 아까와는 달리 B에 스티커가 집중된 보드판을 들고 나왔다. 그는 행사 참여자들이 선택한 결과인 양 그 보드판을 놓고 다른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머지 한 개의 보드판 역시 행사장 뒤로 사라졌다. 얼마 뒤 역시 B에 스티커가 몰린 채 이 보드판도 다시 등장했다.
행사장 뒷편에서 이벤트 진행요원들이 B사쪽에 스티커를 잔뜩 붙이는 `조작`행위를 한 것이다.
행사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기자에게도 "B를 선택하는 관람객들이 많으니 어서 선택해 보라"는 권유가 왔다.
결국 이날 주최회사의 LED TV는 이런 `조작`에 힘입어 화질이 가장 좋은 TV로 선정됐다. 실제 행사에 참여했던 많은 관람객들의 진짜 선택은 무시당한 셈이 돼버렸다.
이 회사는 앞서 다른 장소에서도 같은 방식의 이벤트를 개최했고, 자사 제품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는 결과를 제품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도 했다.
주최회사측은 행사 진행상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벤트를 맡은 대행사가 막상 참여고객이 적자 행사진행을 잘못했다는 질책을 받을까 우려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같은 잘못에 대해서는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블라인드 테스트는)제3의 기관에서 공정하게 시험하지 않는 이상, 주관이 가미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TV의 경우 `매장모드`와 `가정모드`가 있는데, 비교기준을 달리 적용하거나 디폴트 값(명암 색상 선명도 등)을 조절할 경우 화질이 달라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LED TV 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분위기에서 업체간 무리한 마케팅이나 상대제품 비방 공격은 자칫 제품 신뢰를 떨어뜨려 시장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