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불량규제`를 잡아라

by김상욱 기자
2008.03.25 10:23:52

(제4부)기업규제, 제대로 풀어보자
담당 공무원조차 이해 못하는 규제도 버젓이

[이데일리 김상욱기자] "골프장 하나 만드는데 필요한 도장이 770개라니···"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일갈(一喝)했던 이 한마디는 비단 골프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의 규제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다. 공장을 하나 지으려면 사방팔방을 뛰어다녀야 한다. 
 
중앙정부 뿐 아니라 규제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에 가서 머리를 조아려야 하고, 형식적인 서류도 모두 맞춰넣어야 한다. 담당 공무원조차도 너무나 복잡한 규제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때마다 규제개혁 공약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의 강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주요기관에서 발표하는 기업환경이나 규제품질 순위는 하락하고 있다.

밖으로 보이는 규제 줄이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질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량규제를 없애는 한편 규제정책에 대한 `품질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규제개혁 문제를 거론할때 주로 지적되곤 하는 것이 바로 기업들에 대한 규제다. 지난해 세계은행이 발표한 `2008 기업환경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기업환경은 세계 30위로 전년보다 7단계 하락했다.

특히 기업활동과 직결되는 창업과 고용 순위는 각각 110위와 131위를 기록했다. 창업을 위해선 17일간 10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평균 14.9일간 6단계의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성적표는 한국의 경제규모와 비교했을때 낯 뜨거운 수준일 수 밖에 없다. 기업들의 해외이전이 늘어나고 있는 배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기업들 역시 한국의 규제상황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최근 대한상의 조사결과 외국투자기업이 꼽은 애로요인중 `규제 및 인허가 등 복잡한 행정절차`가 2위를 차지했다. 외국투자유치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뭐냐는 질문에는 규제개혁이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과도한 규제는 자칫 부정부패와 비리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각종 편법들이 동원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규제때문에 되는 것이 없고, 재량권이 많아 안되는 것도 없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각종 규제를 강화해 경제·사회 전반을 통제하려는 `규제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실제 그동안 정부는 줄기차게 규제개혁을 추진해왔다. 참여정부도 규제개혁위원회외에도 규제개혁추진회의, 규제개혁장관회의, 규제개혁기획단 등을 통해 다각적인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기업이나 일반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수준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진행된 규제개혁이 규제의 수를 줄이는 양적발전은 있었지만 한차원 높은 규제의 품질관리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홍석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근 규제개혁은 양적 절감방식에서 영역별 규제의 품질수준을 제고하는 질적 고도화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규제로 인한 기업들의 이익을 비용보다 크게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규제정책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 정부가 우리의 수도권규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유사한 규제들을 폐지하는 등 개혁에 나서며 해외로 나가던 기업들의 발걸음을 되돌린 사례는 `시장친화적 규제개혁`에 목마른 한국에게 분명한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우리나라가 경제규제로 인해 부담하는 비용이 78조1000억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2006년 국내총생산대비 9.2%라는 설명이다.
 
이는 가구당 488만원을 규제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불필요한 부분에서 성장동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평가다. 규제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규제개혁이 뒤쳐지고 있는 것은 문제는 단순히 규제의 건수가 많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단순히 규제의 수를 줄이는 것보다 이른바 `불량규제`로 불리는 비현실적이거나 불합리한 규제들의 정비가 더욱 시급하다.

실제 지난해 전경련은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규제개혁 연구를 실시, 총 등록규제 5000여건중 1600여건을 폐지하거나 개선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지적된 규제들은 대부분 실효성이 낮거나 오히려 비용이 더 큰 `불량규제`들이었다.
 
김종석 한경연 원장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우리나라 규제의 문제는 규제건수가 아니라 품질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전경련은 이같은 불량규제들을 정리할 경우 세계은행에서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수가 30위에서 15위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