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경영)⑭공무원과 협상의 진수

byKDI school 기자
2006.10.11 11:47:22

협상 통한 공공갈등 해결 사례 많아져
공무원도 유연한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 박홍엽 박사


[이데일리] 기존 국책사업의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중앙정부에서 기본방침이 결정되면 커다란 변경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지방정부나 지역주민이 방침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 결정된 중앙정부의 방침은 매우 경직된 것이어서 그 내용이나 절차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주민이나 지자체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원전건설지역 결정이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입지선정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정부에 의해 결정된 방침이나 내용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관한 정부방침이나 정책내용도 유관기관이나 이해관계자와의 협의과정에서 수정되거나 보완되고 있다. 기본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상당 정도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두고 상호간 이견이 조정되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는 과천 주암동으로의 이전을 계획했다가 지역주민의 반발이 심하자 상당한 기간 동안 냉각기를 가진 후 협의를 통해 이전계획을 대폭 축소하는데 합의했다.

경남 마산 진동에서도 협상을 통해 갈등이 해소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수백명의 민간 소유자들이 조합을 결성해 10여년 넘도록 택지정리사업을 추진했는데 사업의 마지막 단계인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이 출토됐다. 

6만여평의 부지 전체를 사적지로 지정해야 한다는 일부 문화재 전문가들의 주장과 사업 자체가 무산될 것을 우려한 택지조합 측 사이의 주장이 엇갈려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결국 문화재청이 인내심을 갖고 협의를 이끌어 최종적으로 3만여평의 부지를 사적지로 지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밖에 경북 포항과 울산을 잇는 철도노선을 복선화 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 효문공단이 참여하는 협의체가 연암천변 우회노선으로 최종 합의를 도출했고, 전북 군산시에서 미공군 사격훈련을 위한 자동채점장비(WISS)의 설치 허가를 놓고 대립했던 국방부와 군산시도 협상을 통해 상당 정도의 지역발전 지원이라는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설치에 합의했다.



국책사업을 시도할 때마다 정부가 많은 양보와 지원을 해야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탄식도 나온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협의에 의해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면 법적 소송이나 물리적 시위에 의한 해결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법률이 정한 규정과 규칙에 한 치도 틀림없이 행동해야 하는 공무원이 상당한 정도의 재량과 융통성을 가지고 협상에 임한다면 얼핏 무엇인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기 쉽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업무수행에 있어 재량권 없이 오로지 법에 정한 기준에 의해서만 행동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공무원들을 만나고 나오는 민원인들은 그 공무원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재량권이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재량권이 없다고 말하는 공무원이나 그래도 재량권이 많다고 말하는 민원인 모두 옳다. 다만 재량권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무원들은 법테두리를 벗어난 재량권을 말하고 민원인은 법테두리 내에서의 재량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정부기관의 협상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갈등해결을 위해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대응하는 공무원에게 누구도 법테두리를 벗어난 재량권을 행사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협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민간부문이나 통상 분야의 협상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해관계자 수가 훨씬 많고 변수도 다양한 공공갈등분야의 협상에서야말로 협상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다. 이제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에서도 협상이 적극적으로 활용돼 많은 공공갈등이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고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홍엽 한국행정연구원 초청연구원 (widelite@kipa.re.kr)

-現 KDI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자문위원
-現 국무조정실 갈등관리혁신포럼 위원
-現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인사개혁 전문위원
-卒 미국 Harvard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석사
-卒 고려대 행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