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고실세, 전격 방한 배경과 남북관계 전망은

by김진우 기자
2014.10.05 17:31:28

北 김정은, 체육 관련 활동으로 대내외 이미지 개선 도모
최고실세 방한으로 관계개선 의지…2차 고위급 접촉 재개

[이데일리 김진우 기자] 북한 군(軍)·당(黨)·정(政)을 대표하는 최고위급 인사들이 전격적으로 방한하면서 그 배경과 의도, 향후 남북관계에 미치는 파장에 관심이 모아진다.

북한 인민군을 대표하는 총정치국장이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당·정 최고위급 인사가 다녀간 것도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사절단 파견 이후 5년 만이다. 남북 간 대화 국면이 다시 조성된 것은 지난 2월 1차 고위급 접촉 이후 근 8개월 만이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당 비서 등 11명의 북한 고위 대표단이 4일 방한한 명목상의 이유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이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종합 7위(금 11, 은 14, 동 14)의 호성적을 거뒀는데 최고위급 인사들이 폐막식에 참석해 선수단을 치하하고 국제적으로 위상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은 체제 안정과 이미지 개선을 위해 체육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국제체육대회를 유치하고 체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김정은 스스로 체육강국을 공언하며 체육활동을 독려해왔다는 점에서 북한이 거둔 이번 아시안게임의 호성적을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한이 이뤄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활발한 체육 관련 활동을 통해 대내외 이미지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황병서·최룡해·김양건을 한국에 보낸 것 자체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 고위 대표단이 김정은의 친서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황병서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따뜻한 인사말’을 전달한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북한 고위 대표단의 청와대 예방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외교·안보 라인 핵심인사들과 회담이 성사되면서 대화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은 지난 2월 제1차 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상봉 이후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이어진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상호 비방·중상 문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삐라) 살포 등을 놓고 관계경색이 지속돼 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가 당과 군부의 최고 실세들을 파견한 것은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특단의 카드를 내민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위 대표단 파견이 김정은을 둘러싼 억측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은은 최근 한 달여 동안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건강 이상설과 쿠데타설, 구금설 등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난무해 왔다. 김정은이 황병서 일행을 남한에 파견할 만큼 확고한 권력을 갖고 있고, 이들이 평양을 비우더라도 체제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5일 “김양건 비서와 차로 이동하면서 북에서 (김정은이) 불편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건강이 어떠시냐고 했더니 김 비서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남북은 일단 고위급 대표 오찬회담에서 10월 말에서 11월 초 제2차 고위급 접촉을 열기로 합의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특정 의제를 정해놓고 상세한 의견을 교환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남북이 대화를 재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의제를 정해놓고 회담을 하러 왔다기보다는 통 크게 남북이 이제 한 번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2차 고위급 접촉에서 우리측은 박 대통령의 평화통일 구상인 ‘드레스덴 선언’의 진정성을 입증하면서 단계적 구체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따른 포괄적 대북제재인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집중할 전망이다.

관건은 북한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 등에 대한 포괄적 사과가 있을 것인지, 우리측 역시 5·24 조치 해제 등 경협 재개에 나설 것인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영 경남대 정외과 교수는 “황병서·최룡해가 방한했다는 자체가 이례적이다. 북한이 이번 2차 고위급 접촉에서는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천안함 폭침 등)유감 표명과 안전 보장책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