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원 인터뷰)"정부 주도 아닌 자기규제 필요"(下)
by김윤경 기자
2009.09.14 11:14:15
"위기는 생기는 법..행동주체들에 파워주는 규제를"
"한국 양극화 심각..유통·금융 중심의 체질개선 필요"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 월가는 이번 위기로 많이 바뀌었나. 조금 회복되니까 다시 탐욕을 부릴 가능성도 엿보인다.
▲월가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대량 해고로 몇 만명이 없어졌고 보수(compensation) 문화에도 정부가 간섭을 하고 있어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의회에서 논의중인 금융규제법도 월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 규제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자기 규제(Self Regulation)가 훨씬 중요하다. 그게 시장이다. 요즘 보면 월가 은행들은 스스로 레버리지도 많이 낮췄고 증자도 많이 하고 있고, 리스크 많은 투자는 시장이 원하지 않으니까 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식으로 자체적으로 규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다시 위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란 건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너무 규제해서 창의적인 싹을 짓밟아선 안된다. 미국 정부가 잘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다고 본다.
- 이번 위기로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갖는 위상이 크게 흔들린 것은 사실이다. 더 이상 달러가 기축통화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선 안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에서 탈락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중국에서 하는 얘기는 자신들의 경제적인 힘이 커지니까 "우리 말을 들어달라"는 식이다. 그거야 납득할 수 있다. 점점 중국이나 아시아 등으로 힘이 옮겨져 가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과거엔 미국이 통화정책을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나머지 나라가 따라오는 식이어지만 지금은 그게 안된다. 같이 토론을 하고 해야 한다. 그래서 주요 20개국(G20)들도 모여서 논의하지 않나. 그러나 달러는 단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삼자는 주장도 나왔는데 사실상 어렵다. SDR이 상업적으로 쓰이는 건 국제 우편에서 뿐이다. 다른 데엔 쓰이는 데가 없다. 한국에서 자동차 수출하고 달러 대신 SDR로 받으라고 하면 받겠는가. 실질적으로는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것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장기가 되겠지만 미국을 대체해 전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수도 있을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 정부가 다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고성장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성장률을 8%로 맞추라고 하면 전국의 성(省)들이 어떻게든 맞춘다는 얘기가 있다.
또 중국 경제의 체질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출로만 먹고사는 구조인데,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35% 밖에 안된다. 미국(70%) 한국(65%)에 비해 너무 비중이 적다. 벌써 미국 소비자들도 돈을 쓰지 않고 있고 이럴 경우 세계 무역이 줄 것이고 이건 중국에 좋을 리가 없다. 중국 경제엔 불확실성이 많다.
- 그래도 중국을 포함해 이머징 마켓에 거는 기대가 있지 않을까.
▲지난 10여년간 이머징 마켓은 수출을 많이 했고, 그래서 외환보유액도 많이 쌓았다. 한국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다. 돈 쓸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머징의 성장 엔진이 너무 수출에 쏠려 있다. 이걸 내수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물론 한국도 그렇고 각국 정부가 경상적자를 내려고 하지 않으니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머징의 경우 원자재 의존도도 높은데, 미국 등 전세계 경제 성장이 예전같지 않다면 수요가 없을 것이고, 이에따라 가격도 많이 오를 수 없을 것이다. 내년 정도까지야 이머징 성장률이 높겠지만 세계적으로 무역 줄고 원자재 가격 상승도 둔화될 경우엔 고성장세를 이어가긴 어려울 것이다.
- 한국의 경우는 어떻게 체질 개선을 해야할까.
▲양극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역시 수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그러려면 서비스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제조업은 이제 중국과 경쟁이 안된다. 서비스 가운데에서도 금융으로 가야 한다. 한국은 제조업과 정보기술(IT)은 발전했는데, 금융은 뒤져 있다. 금융에서도 삼성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플랜을 짜서 유도할 필요가 있다.
유통업도 중요하다. 고용 창출에 있어서도 그렇고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무조건 점포만 늘리라는 것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를 보자. 과거엔 카지노를 하러가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여행가는 곳이다. 50대 부모나 10대 아이들이나 모두 즐길 수 있다. 음식도 먹고 쇼핑도 하며 즐긴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하면 내수도 살고 일본과 중국인들도 끌어와 소비하게 할 수 있다.
- 또 다시 이번 같은 전세계적인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식의 개선, 준비가 필요할까.
▲다시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다. 그게 자본주의다. 물론 방지책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미국에선 요즘 행동 규제(Behavioral Regulation)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에서 울타리나 담을 만들어 봐야 소용없다. 한동안이야 괜찮겠지만 월가는 계속 구멍을 내거나 천장까지도 뚫고 나가 버린다. 그래서 정부가 아니라 아예 행동 주체들에게 파워를 주는 규제를 하자는 것이다.
모기지 대출로 예를 들자면 상품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구조나 리스크를 전혀 모르는 복합 상품들이 그동안 팔렸고 이게 문제가 됐다. 정부가 무조건 단순한 플레인 바닐라(Plain Vanilla) 상품을 팔라고 할 것이 아니라 사려는 사람에게 설명을 제대로 해 주고 직접 옵트 인/아웃(opt-in/opt-out; 선택적 수락/거부)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 미국 정부가 그런 정책을 만들려 하고 있다. (주; 연준은 모기지 대출과 홈에쿼티론에 대한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런 정책을 제안했다)
소비자들의 행동이라는 것은 또 "이 약을 먹으면 나을 확률이 80%" "이 약을 먹고 잘못될 확률이 20%" 라는 똑같은 내용을 달리 표현만 해도 달라진다. 모기지를 살 때 경고(warning)를 잘 해주면 주의하게 된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1944년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졸업한후 미국으로 건너가 플로리다주립대, 하버드 MBA를 마친 뒤 피츠버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3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30년간 은행권에서 일하면서 정확한 경제전망으로 명성을 높였다. 1974년 미니애폴리스 노스웨스트은행 부행장으로 취임했고 1977년에는 전략기획 및 경제 담당 수석부행장으로 승진했다. 1984년에는 은행의 모회사인 노스웨스트코퍼레이션의 수석부사장을 맡아 거시경제 전망, 통화정책, 금융기관 관련 규정 등을 관장했다.
1998년 웰스파고은행(수석부행장 및 CEO)에 합류해 거시경제 전망, 통화정책, 규제 관련 업무 등을 맡았고 채권 포트폴리오, 자산부채종합관리(ALM), 전략기획, M&A 부문 등도 관리했다. 웰스파고에서 일하는 동안 국가별 사업 리스크와 기회를 평가하면서 국제금융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했다. 2005년에는 미국 LA한미은행장을 맡았고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손 교수는 2001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정확한 경제전망 전문가로, 2002년에는 타임지가 뽑은 경제전문가 위원회의 일원이 됐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요 경제지표 수치 전망을 가장 잘하는 이코노미스트로 선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