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표단의 긴박했던 방한 '막전막후'

by김진우 기자
2014.10.05 17:21:40

北서 먼저 '방남' 전격 제안…김정은 전용기로 입국
오찬·대표 면담 '속전속결'…AG폐막식 관람후 출국
황병서 "이번엔 좁은 오솔길…앞으로 대통로 열자"

[이데일리 김진우 정다슬 강신우 기자]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방한은 긴박하게 진행됐다. 3일 북측의 전격 제안에 이은 남북 당국간 조율, 4일 방한에 이어 오찬 회담, 정부·국회 대표 면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 등 12시간30분동안 숨가쁘게 이어졌다.

북한은 3일 오전 인천에 머물고 있던 아시안게임 참가 북측 임원진을 통해 이번 방문 계획을 우리측에 알려왔다. 정부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외교·안보 라인 회의 끝에 북측 대표단의 방문에 동의한다는 뜻을 오후 북측에 전달했다. 이 소식은 4일 오전 9시 통일부의 긴급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으며, 같은 시각 북한도 조선중앙방송 등 관영매체를 통해 방남 사실을 발표했다.

황병서 등 11명의 고위 대표단은 이날 오전 9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전용기를 통해 평양을 이륙해 오전 9시52분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황병서·최룡해·김양건은 왼쪽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단 채 자체 경호원들의 수행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군복 차림의 황병서와 양복을 입은 최룡해·김양건은 건장한 체격에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았다.

김남식 통일부 차관의 영접을 받은 이들은 오전 10시30분 의전용 차량으로 인천 시내 오크우드 호텔로 이동, 11시20분부터 14분 가량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환담을 나눴다. 이어 오후 1시50분부터 3시40분까지 인천시청 인근 한식당 영빈관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우리측 고위 대표단과 오찬회담을 했다.

북한 대표단은 오후 3시50분 인천 아시안게임 선수촌에 도착해 북한 선수단을 격려한 뒤, 6시45분부터 14분 가량 정홍원 국무총리와 면담한 데 이어, 7시 5분부터 10분간 여야 대표단과 면담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잘 오셨다. 체육교류를 통해 남북교류를 더 확대하자”며 “우리가 북한측 여자축구팀을 응원했다”고 인사를 건네자 황병서는 “그래서 우리가 이겼나보다”고 화답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은 “오늘이 10·4 남북공동선언 7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던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참가했던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임 의원은 면담이 끝난 후 북측 인사들과 별도 인사를 나눴으며, 북측 인사들이 임 의원을 알아보며 “옛날 모습 그대로다”는 인사말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북한 대표단은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정홍원 총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귀빈석에서 같은 줄에 자리를 잡은채 관람했다.

북한 대표단은 폐막식 직후 정 총리와 7분 가량 재면담을 나눴다. 황병서는 이 자리에서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가는데 성과가 많다”며 “소통을 좀 더 잘하고,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고 제안했다.

황병서 일행의 박근혜 대통령 예방은 일정상의 이유로 끝내 무산됐다. 정부 당국자는 “대통령은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만나실 용의가 있었으나, 북측이 이번에는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왔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청와대 방문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 대표단은 오후 10시25분쯤 타고 온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서해 직항로를 따라 출국하며 12시간 30분 동안의 인천 방문을 마무리했다. 정부는 북한 고위 대표단에 선물로 홍삼 제품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 방문단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 명의로 홍삼 제품을 선물했다”며 “방문단이 연배가 있으니 건강에 좋은 것을 골랐다”고 말했다. 북한 대표단은 이번 방문에 선물을 갖고 내려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남북 교류가 활발할 때는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고위급 인사를 만날 때 남북 간에 선물이 오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