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시' 울산을 가다

by박기용 기자
2006.10.30 14:30:05

[울산=이데일리 박기용기자] 현대자동차 직원들은 점심 때는 물론이고 퇴근 뒤 경조사 참석에도 군청색의 회사 점퍼를 입는다. 검은색 타이를 매면 그뿐 따로 정장을 하지 않는다. 울산에서 현대차의 점퍼는 그 자체가 정장으로 통한다. 기업이 도시고 도시가 기업인 울산의 풍경이다.

현대차에서만 14년을 근무해온 김호정씨는 점퍼를 벗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라고 말한다.

"경조사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갑자기 언제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몇 번 그렇게 회사 점퍼를 입고 갔었는데 저 말고도 (회사 점퍼를 입고 온 사람이) 많더라고요. 언제부턴가 이런 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 울산 현대차의 직원들이 근무복 차림으로 출근하고 있다.
김씨는 일 년에 한 번씩 가족들을 데리고 휴가를 간다. 김씨만이 아니다. 협력업체와 연관산업 종사자가 다 함께 휴가를 떠난다. 110만의 울산 인구 중 줄잡아 80만이 7월 말에서 8월 초 정기 휴가기간에 도시를 '뜬다'.

주요 기업체 주변 음식점 상가 시장도 모두 철시한다. 당연히 은행, 보험, 증권 같은 금융권과 타 도시에 비해 유난한 학원가도 이 기간엔 쉴 수밖에 없다.

울산에는 가을에 '효도방학'이라는 게 있다. 여름방학과 겹치는 여름 휴가철과는 별도로 매년 추석을 전후한 기간에 울산시 전체가 놀아 버리니 학교도 이 때는 같이 쉴 수밖에 없다. 

울산은 도시민 전체의 일상이 비슷하게 돌아간다. 울산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근무 패턴이 곧 이 도시 사람들의 생활 리듬이 된다. 현대차가 한 번 파업을 하면 임직원 3만4000명과 협력업체 종사자, 매곡과 효문의 부품 단지 사람들에 인근 상가의 상인들까지 줄잡아 10만명이 논다. 현대차 파업만으로 울산 시민 10명 중 1명이 놀아야 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웃지못할 현상도 벌어진다.

'현대차 주간 근무조가 퇴근했습니다.'

현대차 직원들이 퇴근 후 자주 찾는 삼산동 번화가의 나이트클럽에서는 중간에 음악이  꺼지고 이런 안내방송이 흘러 나오는 걸 간간이 들을 수 있다. 남편이 퇴근했으니 아내들은 어서 집에 들어가 보라는 소리다. 현대차 조업이 갑자기 일찍 끝날 때면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소득 수준으로 보면 울산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해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다른 지역의 3배, 서울의 2배다. 장사하는 사람도 울산을 좋아한다. 상호보완적인 산업들, 자동차·조선·석유화학의 포트폴리오가 잘 짜인 탓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의 기업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지난 2004년 SK그룹이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에 빠졌을 때 울산시민들이 발벗고 나섰다. 당시 울산시와 울산상공회의소 등이 `SK주식 사주기운동`을 펼친 것.

김선조 울산시 경제정책과장은 "물론 처음에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지만, 당시 SK주식 사주기 운동 등을 통해 울산시민들이 기업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기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간접자본과 각종 문화시설 투자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울산에는 SK가 110만평(여의도 1.5배)에 달하는 울산대공원을 1000억원을 들여 짓고 있다. 현대차의 아산로, LG의 노인복지회관 등 투자가 많이 이루어졌다.


▲ SK와 울산시가 공동으로 건설하고 있는 울산대공원 조감도. SK가 1000억원을 투자했다.

울산엔 기업사랑 조례도 있다. 기업과 지역 공동체가 사랑을 주고 받는 모습이다.



1962년 울산 인구는 18만명이었다. 당시 서쪽의 밀양은 23만명. 그러나 지금 울산 인구는 110만명을 헤아리고 밀양 인구는 11만명에 불과하다. 울산은 국세만 10조원를 내는 도시다. 기업이 창출한 힘이다.

김선조 울산시 경제정책과장은 사회공헌보다 기업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길이라 강조했다.

"SK가 울산대공원에 1000억원을 들였는데 살펴보면 이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SK가 고용하고 있는 임직원이 3000명입니다. 정확히 얼마씩 받아가는진 모르겠지만 평균 연봉 5000만원으로 잡으면 매년 1500억원 정도가 됩니다. 그게 진짜 공헌하는 거죠."

그는 기업이 사회간접 자본이나 문화시설 지어주는 것도 좋지만 진정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길은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성장해서 고용이 창출되고, 높은 임금을 주고, 전후방산업효과를 내고. 그렇게 물이 흐르듯 부(富)가 지역으로 퍼져가는 것이 진정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