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라인` 지고 `기획·정책통` 부활…尹정부 경제색 보인다
by김상윤 기자
2022.03.20 16:12:11
추경호·최상목 등 기획·정책통 전면에 배치
정책수립부터 조정, 위기관리·추진력 탁월
코로나19 위기대응과 부동산 대책 등 주도
"정무적 요구 거세…당정청 밸런스가 관건"
[이데일리 김상윤·원다연 기자] “MB(이명박)·박근혜 사람들의 복귀라구요? 아니, 그보다는 정책라인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분야 인사를 놓고 이처럼 한 줄로 요약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소위 예산라인들이 주요 포스트에 올랐다면, 이제는 기획·정책라인이 다시 힘을 얻어 예산·세제·금융을 총괄할 수 있는 종합적인 경제정책을 그릴 것이라는 얘기다.
윤석열 당선인 측 관계자에 따르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의 큰 그림은 추경호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국민의힘 의원)과 최상목 경제1분과 간사(전 기재부 차관)를 중심으로 그려질 전망이다. 여기에 이들과 친분이 깊은 김소영 경제1분과 위원(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강석훈 당선인 정책특보(전 국민의힘 의원), 이석준 특별고문(전 국무조정실장)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전망이다.
이 중 관료 출신인 추경호·최상목 간사, 이석준 특보는 대표적인 `기획·정책통`으로 분류된다. 주니어 시절부터 이들이 섭렵해 온 업무는 금융정책과 은행제도, 국제금융, 경제정책 등 거시경제 분야다. 추 간사는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장과 금융정책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금융위 부위원장, 기재부 1차관 등을 맡으며 이른바 `모피아`(재무부의 영어 약자인 MOFE+마피아 합성어)의 길을 걸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맡으며 여당의 주요 핵심 정책 기획을 이끌었다.
최상목 간사도 마찬가지다. 정통 경제·금융 정책통인 그는 재정경제부 증권제도과장·금융정책과장을 지내면서 현 자본시장통합법을 만든 장본인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선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추진했고, 2011년에 기재부로 돌아와 정책조정국장과 경제정책국장 등 거시경제 요직을 거친 뒤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금융 비서관, 기재부 1차관 등을 맡는 등 추 간사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이석준 특보는 기재부 2차관, 예산실장을 거치긴 했지만,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과 국무조정실장도 맡는 등 예산·금융·세제를 두루 다루는 정책통으로 분류된다.
기획·정책통은 정책수립과 조정, 위기관리와 추진력 등에 탁월한 편이다. 사무관 시절부터 경제지표 분석을 시작으로 정책 수립 등의 훈련을 꾸준히 받았고 일사불란한 일처리에 강한 편이다. 조만간 파견될 인수위 전문위원 등도 대체적으로 기획·정책 통이 배치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라인은 각 부처에서 요구한 예산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반면 정책라인은 각종 지표를 보고 대응책을 구상하는 탑다운 방식을 쓴다”며 “지표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등을 고민한 뒤 세제, 금융, 예산 등을 아울러 종합적으로 카드를 쓰기 때문에 경제 안정화와 위기 대응에 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 빛을 봤던 김동연·홍남기 부총리는 대표적인 예산통이다. 보수적이고 꼼꼼한 성향이 짙은 이들은 종합적인 경제정책 구상 집행보다는 곳간지기로서 역할을 보다 충실히 한 편이다. 예산을 통해 다른 부처를 조율하는 데 탁월하게 훈련이 돼 있지만, 경기 회복세를 공고화하고, 경제구조 개혁을 주도하기 위해 거시경제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스타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소득주도 성장 등 여러 정책 구상을 하려면 재정을 충분히 활용해야 하는데, 곳간을 지키는 데 최적화된 예산라인이 핵심 요직을 맡는 상황에서 오히려 충분히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서 “당시 기획재정부의 주요 기획·정책라인이 국정농단에 휘말려 배제됐던 측면도 있었다”고 했다. 기획·정책라인에 있었던 이찬우 기재부 전 차관보만 유일하게 정권 말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에 배치됐다.
코로나19 위기가 여전한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거시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들 정책통의 복귀에 거는 시장 기대는 크다. 당장 인수위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단순히 재정을 투입한 손실보상보다는 금융과 세제정책을 적절히 조합한 카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관련 인수위에 파견된 위원은 없지만 전문위원 등의 의견을 모아 최상목 간사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권 초 여당 요구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정책라인에게 부담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부터 당장 6월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지역 예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랜 기간 국정을 운영했던 고위 관계자는 “예산라인은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지나친 민원 예산을 적절히 자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반면 정책라인은 이런 점에서 약하다”면서 “정책라인의 합리적 판단이 힘을 받으려면 당정청 간에 밸런스가 유지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