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훈 기자
2007.08.22 13:33:20
`퍼주기` 의혹..소득세 과표조정-카드공제 유지 등 입장 바꿔
자영업-근로자 형평성 제기될듯..가업상속 공제도 효과 `의문`
공익법인 규제완화, 개인기부금 확대 등도 논란 예상
[이데일리 이정훈기자] 정부가 마련한 올해 세제개편안은 전체적으로 세수 감소효과가 있는 만큼 일반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이나 신용카드 공제 유지 등 그동안 반대 입장을 보여온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만큼 대통령 선거를 앞둔 `퍼주기`식 세제 개편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영업자에 대한 혜택 확대로 근로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재차 거론될 것으로 예상되며 가업상속 공제제도의 실효성이나 공익법인 규제 완화, 개인기부금 확대 등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개편 방향은
이번 세제 개편안을 마련하면서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는 `단순`하면서도 `공평`하고 `성장 친화적`인 세제를 구축한다는 큰 비전을 설정했다.
그에 따라 중산 서민층 생활안정과 미래성장동력 확충, 세원 투명성 제고, 주요 국정과제 마무리, 조세제도 선진화를 지원한다는 게 이번 세제개편안의 큰 방향이다.
또 이에 맞춰 중산 서민층 세부담 경감과 자영업자 세부담 경감, 사회 취약계층 지원, 연구개발 설비투자 지원 강화, 중소기업 상속 지원, 기업과세 제도 합리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후속조치 추진, 국가균형발전 지원 등 20대 과제를 선정했다.
특히 올들어 거시경제 여건이 호전되면서 세수 상황도 다소 나아진 만큼 이에 맞춰 국민들에게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 올해 세제개편으로 인해 내년부터 오는 2013년까지 총 3조5000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는 게 재정경제부의 추산이다.
허용석 재경부 세제실장은 "이들 정책 목표에 맞추면서도 나라 재정에 큰 차질이 없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세금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들을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 `퍼주기` 의혹
이같은 정부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제 개편안에서는 대선 정국 하에서 선심성 조세정책으로 전환했다는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총 3조5000억원에 이르는 세금 감면 효과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주무부처인 재경부가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분야에서 기존 입장을 뒤집는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혹이 더욱 짙어진다.
일례로 "과표구간을 조정할 경우 고소득 자영업자 등에게만 혜택이 주로 돌아간다"며 지난 11년간 터부시 해온 종합소득 과표구간 조정이라는 카드를 과감하게 빼 들었다는 것.
허 실장은 "과표구간을 한 번 조정했으면 적어도 2~3년은 유지돼야 한다"며 정기적인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공제 확대는 면세자 비율만 높이기 때문에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기존 입장에서 크게 벗어났다.
또 신용카드 공제 역시 세원 투명성 제고라는 정책 목표를 사실상 달성한 만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공제 대상은 줄이면서 공제 폭은 오히려 확대하는` 방향으로 2년간 공제를 더 유지하기로 했다.
비과세·감면 정비도 마찬가지. 올해 일몰 도래하는 22개 비과세·감면항목 가운데 10개를 폐지하기로 했지만, 22개 항목의 세수 2조7000억원 가운데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어업용 유류세 면제와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그대로 유지했다. `말로만 정비`인 셈이다.
이 뿐 아니라 이번 세제 개편안에서도 여러 가지 논란을 불러 일으킬 만한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성실 자영업자들에게 의료비와 교육비 공제를 허용하기로 한 것은 흔히 `유리알 지갑`으로 불리는 근로자들과의 형평성이라는 오래 묵은 이슈를 재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자영업자들의 공제혜택을 근로자 수준으로 맞춰간다는 방침이지만, 자영업자의 과표 양성화는 여전히 근로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또 이런 미미한 혜택으로 자영업자들의 과표 양성화 제고도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가업상속 공제 한도를 현행 11억원 수준에서 최대 30억원까지 확대해주기로 했지만, 공제 요건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설정하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법 하다.
또 10년간 사후관리를 통해 가업용 자산과 종업원 수를 상속 당시의 90%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공제액 전액을 추징키로 한 대목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자산과 종업원을 줄여야할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다 공제 추징으로 기업의 경영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아울러 개인기부금 공제한도를 현행 소득금액의 10%에서 2008년 15%, 2010년 20%로 확대하면서 교회나 사찰 등 종교단체에 낸 기부금에 대해서는 현행대로 10%만 공제해주기로 해 해당 종교단체나 납세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성실 공익법인에 대해 동일기업이나 계열기업 주식 취득한도를 대폭 완화해주기로 한 것도 공익법인의 폐단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성급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재경부는 "미국 등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했고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제도가 허용되면서 기업 지배구조 여건도 변한 만큼 규제를 완화했다"며 "혹시 생길지 모르는 문제는 여러 보완제도를 통해서 커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기업 총수의 2세가 공익법인을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