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출근하면 어류?…K직장인 이대로 괜찮나요

by김민정 기자
2022.09.07 09:45:14

폭우에 2분 지각에 "시말서 내라"..갑질 사례도
"태풍엔 작업 중지가 기본..예방적 조처 허술해"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제 11호 태풍 ‘힌남노’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고용노동부는 기업에 재택근무 및 출근 시간 조정 등의 활용을 권고했지만, 직원들에게 평소처럼 출근하라고 안내한 회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남표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같은 사례를 전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KBS 광주’ 캡쳐)
먼저 권 노무사는 지난 8월 초 재난상황을 언급했다. 당시 수도권과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인명·재산 피해 등 막대한 수해가 발생한 바 있다.

권 노무사는 “그때 몇 가지 제보가 있었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분이 폭우가 쏟아져서 2분 정도 지각을 하셨다”며 “폭우를 뚫고 초장거리로 출근했다. 말 그대로 전쟁을 겪으면서 회사에 도착한 건데 직장 상사가 ‘회사 놀러다니면서 다니냐’면서 시말서를 제출하라고 한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공무원과 같이 일하는 공무직 분이 계셨다. 그런데 이분들이 통근 버스가 지연돼 지각했는데 공무원이 결제를 안 해줬다”며 “지연확인서를 제출하니까 그때 결재를 해 준 건데 이게 지각 처리되면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입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권 노무사는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두 분 다 늦고 싶어 늦은 게 아니다”며 “출근하다가 보니까 불가피한 사정으로 지각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KBS 광주’ 캡쳐)
권 노무사는 “이번 태풍도 마찬가지였다. 태풍 몰려와 인명피해가 날 수도 있다는데 ‘몇 분 일찍 나가야 하지’ 전날에 고민할 수 없다”며 “고민하는 건 되게 비참한 일이다. 인명피해가 예상된다고 정부에서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그 전날 고민하는 게 이게 말이나 되나. 그런데 지금 현재 현실이 이렇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폭우에 출근하면 어류라고 하더라. K 직장인들이 얼마나 자조적으로 말하는 건지 알 수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출근하다가 사고가 나면 이 사고를 누구 탓으로 보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노동법 보호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이 ‘태풍 속 출근’을 강요당하는 처지다.

한 택배 회사는 힌남노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지난 4일 ‘반드시 정상 배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택배기사들에게 보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권 노무사는 “사전에 제재를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며 “결국 사고가 발생하면 처벌은 되는 건데 예방적 조처가 너무 허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권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을 언급했다. 이는 말 그대로 노동자가 스스로 ‘이러다가 나 죽을지도 모르니까 나 도저히 작업 못하겠다’하면 스스로 알아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산안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때는 작업을 중지해야 하며, 그와 관련해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

권 노무사는 “일하다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다치거나 죽기 전에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분명하게 노동자한테 있고 사용자도 그걸 지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안법에는 ‘태풍이 오거나 초속 몇 미터 이상이 될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에 진행자가 “이게 강제조항이 아니냐”고 묻자 권 노무사는 “출퇴근 시 발생하는 재해를 산업재해로 보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 노무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산업재해에서는 출퇴근 하다가 다치면 산업재해다”며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은 다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법률인데 출퇴근 시 발생하는 재해를 산업재해라고 본다고 명확한 규정이 없다. 그런데 출퇴근은 당연히 일하는 것의 일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회사에서 출근하라고 그러면 근로자 입장에서 중지할 수 없다”며 “사용자가 출근을 정지하라고 그랬는데 출근을 못하면 징계를 받아도 그 사후에 다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수원 세류역의 지하통로가 물에 잠겨 출근길 시민들이 바지를 걷고 맨발로 이동하는 모습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트위터 캡처)
그렇다면 산안법 모법이나 관련 규칙에 있는 규정에 따라 정부가 ‘권고’를 하는 게 아니라 ‘명령’을 내릴 수는 없을까.

권 노무사는 “현재 정부에서는 강제할 법령이 없다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오히려 이후에 사고가 발생하면서 인명피해가 있으면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상에 안전조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시행령 등으로 대통령이 나서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출퇴근 시 태풍 자연재해 등의 경우를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할 위험으로 봐서 출근을 늦춘다든지 근무를 탄력적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