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종이봉지까지”…3일간 소녀상에 무슨 일이 있었나
by정다슬 기자
2019.08.04 17:40:57
주최자인 아이치현 지사·예술감독 2명서 결정
표현의 부자유전 실행위원 항의 성명 발표
아사히신문 1면 보도…"표현의 자유 위축된 현실" 꼬집어
| △4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손에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들려있다. 지난 3일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는 개막 사흘 만에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 중단을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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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테러 예고나 협박 전화 등이 많았다. 철거하지 않으면 휘발유를 넣은 캔을 들고 오겠다는 팩스도 있었다”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결국 사흘 만에 중단됐다. 전시 중단을 결정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는 3일 저녁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시회 중단이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행정이 전람회의 내용에 간섭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면서도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나고야시 동구 아이치예술문화센터에서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은 올해 공립미술관 등에서 철거된 작품을 모아 ‘표현의 부자유(不自由)전·그 후’라는 기획전을 했다. 소녀상도 이 기획전에 출품된 작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개막날인 1일만 전화가 200건, 이메일만 500건일 정도로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사무국은 항의전화에 대응하기 위해 직원을 늘렸으나 현청에도 항의전화와 메일이 쇄도했다고 한다.
오무라 지사는 “사무국의 대응능력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쓰다 다이스케 예술감독 역시 “현장 직원들로부터 ‘더는 무리다’라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밝혔다. 직원들의 이름이 인터넷상에 게시되기도 했다.
물론 모든 항의가 소녀상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쓰다 감독에 따르면 항의의 절반은 소녀상에 대한 것이었으며 40%은 쇼와 시대 일왕(일본 천황)인 히로히토를 상기하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전시 마지막 날이었던 3일 현장 분위기를 자세히 전했다. 개관 직후 전시실에는 초로의 남성 관람객은 소녀상을 가리키며 “매년 트리엔날레를 방문했지만 오늘이 최악이다”라고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 여기에 소녀상의 머리에 종이 봉투를 씌우려고 한 관람객도 있었지만, 다른 관람자가 “무엇을 하는 거냐”고 화를 내며 종이봉투를 벗겨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소동은 극히 일부였다. 대다수의 일본 관람객은 조용히 작품을 감상했다. 폐관 1시간 반 전인 오후 4시 반,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의 기획전을 위한 티켓 판매는 종료됐다. 뒤늦게 왔던 시민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 중단은 전적으로 오무라 지사와 쓰다 감독 두 사람의 판단으로 이뤄졌다. 출품한 작가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 쓰다 감독은 “작가의 승낙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소녀상의 김서경·김운성 작가는 “우리들은 작품을 통해 일본시민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로 알아가는 것이 평화를 지켜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 중단에는 정치권의 압력도 가해졌다.
카타무라 타카시 나고야시장은 2일 회장을 시찰한 후 “일본국민의 마음을 짓밟은 행위로, 행정의 입장을 넘어선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카타무라 시장은 오무라 감독에 전시 중지를 요청하는 항의문을 보내왔다. 3일 저녁 카타무라 시장은 기자단에게 “주최가 민간단체라면 이런 일은 없다. 트리엔날레의 주최는 나고야시며 아이치현, 나라의 돈이 들어가는데 국가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유신의회 대표 마츠이 이이초 오사카시장도 2일 “나랏돈이 들어가는 이벤트에서 우리들의 선조가 인간실격이라고 할까, 짐승과 같이 취급되는 전시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실제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에는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문화청에 따르면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를 포함한 국제현대미술전의 관련 사업에는 약 7800만엔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그러나 보조사업으로서 채택된 아이치현의 신청서에는 표현의 부자유전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 보조금 지급은 먼저 행사가 이뤄진 후, 국가가 실제 사용된 비용에 따라 지급하는 형태로 집행된다.
시바야마 마사히코 문부과학상(문체부장관 격)은 2일 기자회견에서 “보조금 교부는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역시 2일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보조금 교부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조사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내에서는 이번 전시회 중단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일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 실행위원회 위원들은 전시회 중단이 결정된 이후 오무라 지사와 쓰다 감독에 대한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 기후현 출신의 조각가 나카가키 카츠히사는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유감이며 낙담과 분노가 뒤섞인 기분이다. 표현의 자유가 졌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도쿄도립 미술관 전람회에 헌법 9조를 지키자는 취지가 담긴 종이를 붙였으나 미술관으로부터 철거 압박을 받았다. 결국 그는 종이를 떼어내고 전시를 계속했다. 이번에는 종이를 붙인 원형 그대로의 작품을 전시했으나 역시 사흘 만에 철거될 처지에 놓였다.
헌법 9조는 ‘전쟁가능한 국가’를 만들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수정하려는 평화헌법의 요지다. 그는 “여러 면에서 자유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느껴진다. 예술가로서 계속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내 문필가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본 펜클럽’은 성명에서 “전시는 계속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찬성하든 반대하든 창작과 감상 사이에 의견이 교환되는 공간이 없어지면 예술의 의의가 없어지고 사회의 추진력인 자유의 기풍도 위축된다”고 비판했다.
저널리스트인 아오키 오사무는 “비꼬아서 말하자면 일본 언론의 부자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성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며 “논란을 부른 소녀상은 절대 반일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작품에 과격한 비난이 일어나면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일본의 현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