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의 국경은 없다]⑩ 작은 성공이 모이면 큰 성공을 만든다

by트립in팀 기자
2018.06.07 09:00:15

남미, 페루



[이데일리 트립in 임택 여행작가] 은수는 예정보다 5일이 늦은 10일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은수가 도착하려면 일주일이 남았다. 나보다 보름이나 먼저 도착한 다른 일행들은 숙소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저렴한 비행기 값을 절약할 목적으로 일찍 왔지만, 실익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들은 숙소 주인이 바깥에 나가면 위험하다는 엄포에 모두 2주간의 감방 생활을 한 것이다. ‘우리가 죽을 나라에 왔단 말인가?’ 이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다.

이 숙소는 교포가 운영하는 일종의 민박집이다. 주인은 노래하며 선교 활동을 하는 ‘박우물’이라는 분으로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다. 나는 남미 여행을 준비하며 남미 사정에 밝은 안내자가 필요했다. 그가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인물이다. 우리와 남미 3개월을 동행하기로 했다.

가이드를 구한 것은 다분히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남미가 하도 위험하다고 하니 이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가이드가 정해지자 가족들은 물론 일행들의 불안감도 줄어들었다.

‘박우물’ 씨는 리마에서 ‘온다 코리아’라는 한류 관련 기획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민박집에서 머물며 여행계획과 은수의 통관 문제를 의논했다. 은수가 도착하기까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나는 바로 배낭을 꾸렸다. 여행가의 직업은 여행이다. 한시도 머물 시간이 없다.

나는 첫 여행지로 ‘와라쓰, Huaraz’를 선택했다. 와라쓰는 해발 3,000m에 있는 고산 도시이다. 앞으로 여행을 하자면 고산병에도 내성을 키워야 하므로 안성맞춤의 훈련지였다. 그곳에 ‘69 호수’라고 하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해발 4,600m에 있어서 오르려는 사람의 상당수가 발길을 되돌리는 아주 힘든 곳이다. 만년설에서 바로 부서져 내리는 빙하의 물이 고인 곳이다. 이 나라의 호수는 이름이 없단다. 호수의 수가 하도 많아서 이름 대신 번호를 붙였단다.

이른 아침 일행은 69 호수가 있는 입구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69 호수로 향하는 산도로 따라 우람한 산들이 줄지어 있다. 산들은 목이 부러질 정도의 만년설을 가득 머리에 이고 있다. 태양 빛이 만년설에 부딪히더니 검푸른 하늘에 흩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흰 봉우리의 기 싸움이 치열했다. 거대한 산들은 한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지만 차로 몇 시간을 가야 하는 먼 거리다. 맑은 공기가 사람의 눈을 속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다.

언젠가 페루 친구와 산의 이름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가 사는 마을 앞에 제법 산세가 우람해 보이는 큰 산이 보였다.



“호세 저 산의 이름이 뭐야?”

“저건 산이 아니라서 이름이 없어”

“아니 저렇게 높은 산이 이름이 없다고?”

“저 산은 눈이 없잖아. 만년설이 없는 산은 산이 아니라고. 그냥 봉우리야.”

페루사람의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산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산 대신 ‘픽추, Picchu’라는 말을 쓴다. 픽추는 ‘봉우리’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유명한 유적지 ‘마추픽추’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졌다. 백두산이 이 나라에 있었다면 동네 뒷산 봉우리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69 호수로 가는 길은 비포장이어서 오른 길이 요동을 쳤다. 춤을 추니 멀리 보이는 설산도 덩달아 출렁거린다.

“저 설산 봉우리는 좀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지 않아?”

일행 중 한 사람이 산의 형태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 산의 모습은 다른 산과는 좀 달라 보였다. 대부분 산이 삼각형의 형태를 띠었다면 우리 앞에 펼쳐진 산의 모습은 한 귀퉁이가 뚝 잘려나간 형상이다. 세모처럼 생긴 피자를 한 입 떼어먹은 모습이라고 할까?



“저건 지진으로 산의 한쪽이 무너져 내린 거예요.”

“아 그래요?”

“1970년에 이 지역에 아주 큰 지진이 났습니다. 그때 저 산의 북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럼 저 산 아래 동네가 융가이 마을이란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때 2만 명이 목숨을 잃었죠. 아니 100명이 살아남았죠.”

오래전 융가이 마을의 비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1970년 와라쓰 지방에 7.9의 지진이 발생했다. 대부분 산비탈에 농사를 지으며 살기 때문에 그 충격은 컸다. 이 지진으로 해발 6,768m인 ‘우와스카란산’의 일부가 붕괴하여 비극이 발생했다. 붕괴한 만년설과 토사가 호수의 물과 섞여 계곡을 쓸고 내려왔다. 늘 그러했듯이 융가이 마을은 평화로웠다. 양키우기 실습을 위해 산 중턱에 오른 아이들 100여 명만이 생존자의 전부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을과 가족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페루 대통령은 희생자 발굴을 중지하고 이곳을 거대한 무덤으로 선포했다. 2만 명이 묻힌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와 있는 줄 몰랐다니. 한심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택시에 내리자 바로 고산증이 몸을 짓눌렀다. 조금만 속도를 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69 호수에 오르는 시작 풍경은 만만했다. 약간 내리막길을 지나면 평야가 이어지는 데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이 평화롭게 보였다. 하지만 나의 사정은 달랐다. 개울의 물소리가 재잘거렸지만 내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쳤다. 차에서 내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일행들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부인과 함께 오르던 일행은 아내의 거친 숨소리에 겁이 질렸다. 그는 아내를 위해 명예로운 포기를 선언하였다. 체구가 100킬로가 넘는 또 다른 일행의 입가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못하겠다며 손을 내 저었다. 전쟁에서 전우를 벌이는 심정이 이런 것일까. 평야를 걷는 데에서만 세 명이 오르기를 포기했다. 나는 전우들을 다 버리고 이제 혼자 남았다. 이 호수는 해발 4,600m에 있다. 멀리 보이는 설산과 한가로운 풍경 속에는 악마의 저주가 서려 있나 보다. 한발을 옮기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뒷발이 앞발에 걸려 자꾸만 넘어지려 했다. 온몸이 저렸다. 손끝은 물론 코끝까지도 저주를 피하기 어려웠다. 겁이 났지만, 이때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등반 가이드가 나타나 코카 차를 따라 주곤 했다. 산 다람쥐처럼 일행들을 헤집고 다니며 연신 코카차를 따라 준다. ‘저놈은 아마 강철 심장을 달았을 게 분명해.’

시선을 압도할 정도로 우람하게 보였던 폭포에 오르니 이놈은 작은 개울에 불과했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거의 다 왔다는 대답을 했다. ‘산에 오면 사람들이 다 거짓말쟁이가 되나 봐’ 폭포를 지나면 다 온 줄 알았는데 또 평야가 펼쳐졌다. 초원 끝 저 멀리 가파른 절벽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르고 있었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사람들이 보호색을 띠고 숨어 있었다.

온몸이 독립선언을 했다. 반란의 주동자는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나였다. 그는 나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있다. ‘돌아가자 이만하면 잘한 거야.’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이러다 69세까지도 못 살지 몰라.’ 칭찬과 협박이 계속되었다.

절벽에 올라서자 두 독일인 청년이 내려왔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죠?”

“다 왔습니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됩니다.”



‘킥킥 거짓말쟁이들’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거짓말의 끝은 결국 진실이지 않은가. 만나면 걷어차 버릴 것 같았던 69 호수의 위용이 눈앞에 펼쳐졌다. 온몸의 저림이 사라졌다. 성공의 희열이 이런 것인가. 만년설이 절벽에서 쏟아지자 연둣빛 파도가 밀려왔다. 나를 무너뜨리려던 모든 반군이 달아났다. 내 안의 다른 나는 머쓱한 웃음을 던지더니 제 자라로 돌아갔다. 내 안의 나는 이렇게 물러날 줄도 아는 무서운 놈인가 보다.

첫 번째 도전에 성공했다. 큰 성공은 작은 성공을 딛고 일어선다.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