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시대)<1부>④시장도 `好` `好`

by최현석 기자
2005.10.27 11:40:56

민영연금의 확대는 저축 증가, 경제성장 유도
자본시장 활성화와 투명성 확보에도 보약
기업지배구조 개선 효과..주가상승의 원동력

[이데일리 최현석기자] "신탁업 허가를 신청해 연금 수탁업무를 맡을 지, 자산운용 쪽에 역량을 집중할 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올해 말 퇴직연금 도입을 앞두고 업무 형태와 전략 변경을 고민하고 있는 한 증권사 관계자의 말이다.

12월 도입될 퇴직연금은 증권업계는 물론 전체 금융시장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양한 자산운용사와 연금 기금(Fund)들이 생겨나며 금융기법의 선진화와 전문화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다.

유동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지 등정에 나선 증시에도 강력한 후원군이 될 전망이다. 연금 기금 등의 기업 경영진 견제를 통해 기업 건전성 개선을 꾀하고 주가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완전 적립(Fully-funded)식으로 운용되는 연금은 저축과 경제성장, 시장의 투명성 확보에 기여해 결과적으로 복지수준도 끌어올리는 것을 여러 국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인 기업지배구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퇴직연금이 조기 정착돼 금융시장 선진화와 전체 경제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이해도 제고 등 숙제가 풀려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퇴직연금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 자산운용업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각 기업별로 자산 수탁기관과 자산 운용기관을 선택하도록 돼 있어 금융기관간 자율적 경쟁속에서 `스타펀드` 탄생 등 진보와 도태를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금융기법이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보험과 예금, 신탁, 증권, 뮤추얼펀드 등 다양한 자산 운용 상품과 연계된 펀드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연금펀드가 퇴직연금 시장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스위스의 경우 현재 8000여개의 펀드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선 대표적 확정기여(DC)형 연금상품인 401(k)를 도입한 덕분에 1990년 이후 2003년까지 뮤추얼 펀드 수탁고가 1조1000억달러에서 7조4000억달러로 5배나 급증했다 . 이가운데 퇴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3%에서 18.3%로 3배 증가했다.

자산운용업 발전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허브 구축과도 일맥 상통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25개 기관으로 구성된 민관합동의 금융허브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자산운용과 구조조정 시장에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임승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심의관은 "상업은행이나 외환시장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기존 금융허브에 비해 일천한 만큼 자산운용시장 등 우리나라에 강점이 있는 부분을 집중 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 프루덴셜 자산운용부문이 아시아 지역본부를 한국에 두기로 한 결정 등에는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의 잠재력에 대한 해외의 높은 평가가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 보험, 증권 등 금융계에서는 퇴직연금 도입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퇴직연금은 금융시장 안정성과 선진화에도 일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장기 투자 자금인 만큼 `부화뇌동` 성향이 강한 우리 금융시장의 기초 체력을 강화시킬 `보약`이 될 것이란 기대다. 

실제로 8월말 기준으로 6개월 이하 단기자금 규모는 435조원으로 총 수신 규모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며 증시 호조를 뒷받침하고는 있으나, 조그마한 외부 충격에도 버티지 못하는 초단기 자금이라 언제든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이 적정한 수익률을 낼 경우 단기성 예금을 중장기 간접 투자 형태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3년 이내인 적립식 펀드 투자 기간이 외국처럼 10년 수준으로 장기화될 수 있다. 정부가 내년 선보일 만기 10년이상 장기채 시장의 성패도 퇴직연금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퇴직연금 관련 펀드들의 수요 증가로 회사채 시장 역시 활성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만연된 위험 회피 성향 때문에 `A`급 이상 회사채 시장에만 집중되던 투자가 `BBB`급 이하로도 확산되면 은행 대출에 편중돼 있는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통로도 확장시키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인 캘퍼스(Calpers)처럼 씨티그룹 등 대기업의 경영진 교체에까지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업들로서는 환영과 동시에 지배구조 개선 등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




금융시장 가운데 퇴직연금 도입의 최대 `수혜주`는 단연 주식시장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내년에 퇴직연금으로부터 유입될 자금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퇴직연금 시장이 내년 5조원대에서 2010년 50조원대 시장으로 커질 경우 국내 증시도 규모와 깊이 면에서 동반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해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1200선을 넘어섰으나, 본격적인 상승세는 퇴직연금 후광을 받는 내년부터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미국 증시의 10년 대호황을 이끈 퇴직연금이 국내 증시 판도를 확연하게 변화시킬 것이란 주장이다. 

미국의 경우 82년까지 근 17년간 1000포인트 밑에서 횡보하던 주가가 82년 퇴직연금의 본격적인 도입 이후 1년간 60% 이상 급증했다. 이후 10여년간 10배가량 치솟았다.

2010년 주가 2000선대 진입 전망의 근거로 퇴직연금을 꼽는 이유에 시장 규모가 2010년 67조원 수준으로 커지고 주식 투자 비중도 미국 등 선진국처럼 절반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있다.

정창호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팀 차장은 "현재 우리나라 시장은 80~90년대 미국 시장에 종종 비유되고는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0포인트 진입까지 30년 걸렸던 미국 주가가 401(k) 본격 도입 이후 10년만에 1만포인트를 넘어선 점을 근거로 하면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계속적인 팽창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너무 일찍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나 금융기관의 기대와 달리 기존 퇴직금 관행에 젖은 기업이나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으로의 전환에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퇴직금이라는 대안 상품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삼성증권은 내년 발생할 퇴직금 6조원 가운데 단 5%만이 퇴직연금를 택하고 기존 퇴직금 88조원에서도 2% 만이 연금제로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2조원 가량의 퇴직연금 신규분에서 20% 정도가 주식에 투자되더라도 증시 유입 규모는 많아야 5000억원에 그칠 수 있다는 것.
 
도입된지 11년이 지나 유명무실하다시피 된 개인연금신탁 등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규제 완화 등 퇴직연금으로의 유도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401(k)가 성공하는 데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금융기관들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손비 인정범위를 크게 확대해 줄 것을 건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수철 하나은행 신탁사업본부장 "퇴직금 관련 혜택을 줄이는 채찍보다는 퇴직연금 도입과 관련한 개인과 기업 지원을 강화하는 당근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세계적인 추세인 데다 더이상 다른 제도를 도입할 여지도 없는 만큼 일본 처럼 부분적 강제를 통한 퇴직연금 의 초기 정착을 유도할 필요도 있다"고 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 능력 개선을 통한 신뢰쌓기과 함께 개인들의 장기 투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요구되고 있다.

김 본부장은 "현재 퇴직신탁의 경우 운용자산이 10년짜리라고 해도 현재 수익률이 떨어지면 고객들은 99% 항의하거나 소송에 나선다"며 "장기 자산을 편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하고 가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협찬 : 대한투자증권, 마이애셋자산운용, 미래에셋증권, 삼성생명, 신한금융지주, 하나은행,                              한국투자증권, CJ투자증권
* 후원 : 금융감독원, 한국증권업협회, 생명보험협회, 자산운용협회, 현대경제연구원
* 도움주신 분들 : 고광수 부산대 경영학과 교수,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류건식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 재무연구팀장,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신기철 삼성화재 상무, 오영수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장, 이순재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가다나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