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소리]상상을 처벌하는 대중

by김영환 기자
2022.09.18 14:43:23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인류가 언제부터 예술적 행위를 했는지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학자에 따라서는 200만년 전부터 인류가 창작물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을 하지만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이를 뒷받침할 정황이 명확하게 남지 않았다.

비교적 현재에도 형태가 남아있는 것은 벽화다. 인간은 같은 인간을 조각하고 동물의 형상도 모사했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은 고대 수렵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림에는 상상력의 산물이 자리했을 것이다.

넷플리스시리즈 ‘수리남’ (사진=넷플릭스)
‘상상’(想像). 이 단어에는 다소 뜬금없게도 ‘코끼리 상(象)’에서 따온 ‘형상 상(像)’이 들어있다. 일리 있는 가설은 이렇다.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국인이 코끼리뼈만으로 코끼리의 형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는 유래다.

결국 코끼리뼈라는 상상의 재료가 있을 때 코끼리의 형태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게 ‘상상’이다.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은 망상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인류가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둬야 상상으로 남을 수 있다.

예술가들에게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은 여기다. 과학자들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논하며 시간여행의 가부를 따질 때 영화감독은 ‘백투더퓨처’를 만들어 미래와 과거를 오간다. 여전히 과학자들은 시간 여행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 중이다.

예술의 상상력이 과학에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사례도 있다. 허버트 조지 웰즈의 소설 ‘투명인간’은 1897년에 쓰였지만, 100년도 더 지난 현재 과학자들이 투명 망토를 만드려는 시도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때론 예술가의 미래 예측이 더 정확하기도 하다.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은 “언젠가는 모두가 각자의 TV 채널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현재를 정확하게 봤다. DEC 설립자이자 공학자인 켄 올센은 “개인이 집에 컴퓨터를 갖출 이유가 없다”는 말을 1977년에 남겼다.

조선 정조 때 강이천이란 선비가 있었다. 정조의 ‘문체반정’과 대척점에 서 있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체반정은 정조가 새롭게 등장하던 문장들을 ‘패관소품’으로 규정하고 기존의 문장들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의 문풍 개혁 정책이다. 요즘에 비유하자면 인터넷 밈용어를 막겠다는 것이다.

백승종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저서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에 자세한 소개가 있다. 강이천은 당시 유행하던 ‘천주교’와 ‘정감록’을 근본 삼아 새로운 가치관을 추종했던 사람이다. 반면 정조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 지배 가치를 갖고 있던 임금이다. 불교도 기를 못 펴던 시기에 신흥종교인 천주교나, 조선 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정감록은 보수적 성리학의 가치와 양립할 수 없던 것들이다.



결론적으로 강이천의 바람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와 함께한 신지식인들은 정조의 탄압을 받아 유배를 떠났고 일부는 처형까지 당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아닐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에 끝내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고(故) 마광수 교수(사진=연합뉴스)
현재 대한민국은 사회적 상상력에 대한 포용이 더욱 커졌을까. 1992년 10월 29일 연세대 국어국문과 수업 중이던 마광수 교수가 강의 도중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형법 제243조 및 244조의 음란물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즐거운 사라는 국가 체제 전복을 논한 정감록이 아니었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치부시되던 ‘성(性)’ 담론을 가공한 소설이었을 뿐이다.

외설스러운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저자가 구속된 세계 최초의 사례가 20세기 대한민국에서 자행됐던 것이다. 마 교수가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처럼 대한민국은, 훨씬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가 됐다. 소설 속 사라가 보여준 성적 자기결정권은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에게는 당연히 속해있는 관념이다.

마 교수 사건을 비단 20세기의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다. 2007년 마 교수는 다시 즐거운 사라로 벌금 처벌을 받는다. 인터넷으로 음란물이 넘쳐나던 21세기에 즐거운 사라 등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고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된 것이다. 그나마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된 덕에 정식 기소가 아닌 약식기소에 그쳤다. 퍽이나 감사한 일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외교갈등이 불거졌다. 이름조차도 생소했던 남미 국가 수리남에 한국인 마약왕이 활개를 치다 붙잡혔다는 것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수리남 정부는 자국을 ‘마약 국가’로 묘사한 스토리로 인해 국격이 손상됐다면서 제작사인 넷플릭스에 법적 조치를 검토중이며,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외교부가 현지 교민들에게 안전을 당부했을 정도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지만 타국의 정부까지 나서 창작물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당혹스럽다. 배경이 되는 수리남 인물들이 전형적이고 평면적으로 묘사되는 지점은 실망스럽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품을 평가하는 척도로만 남아야 한다.

드라마의 내용은 ‘조봉행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실제 수리남에서 마약 유통 등에 나섰던 인물로 조봉행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데시 바우테르서 전 수리남 대통령은 1999년 코카인 밀매 혐의로 네덜란드 현지 궐석재판에서 징역 1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실제가 혼재돼 있다고 한들, 이 작품은 말그대로 상상력으로 새롭게 빚어낸 드라마다. 드라마를 다큐로 바라보는 건, 근시안적 시각을 자인하는 꼴이다.

비단 수리남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놓고 무려 청와대 국민청원에 방영을 금지시켜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한 적이 있다. 해당 작품이 역사의식이 결여돼 있다고 판단한다면, 외면하면 될 일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타인의 상상력에 위해를 가하려는 시도는 여전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창작자들은 자기검열을 강화할 수밖다. 결과적으로는 획일적 작품만을 보게될 대중의 손해다.
영화 ‘곡성’ 스틸컷
“영화 ‘곡성(哭聲)’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꼭 우리 ‘곡성(谷城)’에 오셔서 따뜻함이 주는 즐거움 한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 개봉 이후 유근기 곡성군수의 유려했던 대처가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