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좌동욱 기자
2008.08.21 11:27:33
수도권 부동산 규제 완화 '첫선'
시장 안정에서 경기활성화로 한클릭 이동
금융·세제 정책, 복합적 변수까지 고려해야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정부가 21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는 공급을 늘리고 거래를 활성화해 부동산 및 건설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드러났다. 참여정부 시절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과 차이가 뚜렷하다.
하지만 그런 이명박 정부도 집을 사겠다는 부동산 수요를 불러올 수 있는 금융 규제와 세제 규제는 결국 풀지 못했다. 정부 내에서도 건설 경기 활성화냐, 시장 안정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앞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 동향 뿐 아니라 내수 경기나 국제 금융시장 등 경제적 변수, `강부자`(강남 땅 부자) 비판을 의식하는 정치적 변수 등이 맞물려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당초 지방의 미분양 주택을 해소하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건설 업체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 정책목표였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권 첫 부동산 대책인 지난 6월 11일 '미분양 해소 대책'에서는 수도권 지역의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대책도 지방 미분양 해소 대책의 실효성이 적다며 추가 대책을 요구해온 건설업계 요구를 수용하면서 검토를 시작한 것이다. 대책 검토에 착수했던 한달 전만 해도 수도권 규제 완화는 어렵다는 것이 대세였다.
하지만 한달 남짓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대책의 성격이 공급 확대, 거래활성화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대책 중 재건축 규제 완화나 분양가 상한제 개선, 민간 아파트 후분양제도 폐지, 수도권 전매제한 기간 완화 등의 굵직굵직한 대책은 수도권의 주택 규제를 푸는 내용들이다. 심지어 이 대통령이 서울 시장 때부터 반대해왔던 수도권 신도시 추가 계획까지 포함됐다.
대책이 이렇게 커진 이유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건설 경기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건설 기업 부도업체 수는 217곳으로 2007년 153곳보다 41% 증가했으며, 부도율은 0.43%에서 0.55%로 0.12%포인트 늘어났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는 이런 부동산 정책의 기조 변화가 하락안정화되고 있는 집값을 또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중순까지만 해도 미분양 해소 추가 대책에 대해 "기존 대책(6.11 대책)을 시행해 본 후 문제점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며 부정적 입장이었다.
그런 재정부 입장이 부동산 시장 안정보다 경기 활성화쪽으로 한클릭 이동했다. 하반기 이후 내수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경기 부양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탓이다. 내수 기여도가 높은 건설업 분야 취업자 증가율은 지난해 8월 마이너스로 전환된 이후 지난 7월까지 1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정부가 물가 관리 차원에서 금융기관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유동성 죄기에 나서면서 중소규모 건설업체 유동성 위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실정.
재정부 관계자 역시 "건설업 관련 일자리가 약 42~3만개 정도 되는데, 매년 늘어왔던 건설분야 일자리가 월 2만~3만개 씩 줄고 있다"며 "특히 건설산업은 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건설경기 침체시 거세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책에서는 부동산 규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 세제 규제는 사실상 제외됐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나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가수요를 억제하는 데 가장 효과가 높았던 금융 규제 완화는 대책에서 아예 빠졌다. 세제 분야는 기업들이 사업용으로 보유하는 토지나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부담을 일부 완화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내달 1일 발표될 정부 세제개편안에도 장기 보유 1주택자의 양도세 부담을 추가 완화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업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양도소득세 등 보유세 완화나 취·등록세 등 거래세 인하 등의 대책은 아직 "시기 상조"라는 것이 정부 입장.
여기엔 '건설 경기 활성화냐 시장 안정이냐'는 이분법적 분석 외 또 다른 변수가 자리잡고 있다.
금융규제의 경우 지금처럼 대출금리가 높은데다 경기까지 둔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당장 대출 규제를 풀더라도 실수요가 아닌 가수요가 생길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보다 금융 시스템 안정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LTV, DTI와 같은 금융 규제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도입되긴 했지만 근본 목적은 집값 안정이 아닌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것"이라며 "미국이 주택가격 하락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위기를 겪은 데 반해 한국이 그렇지 않은 이유도 이런 규제가 금융시스템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외부 변수가 없었다면 금융 규제 대책이 달라질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보유세 인하의 경우 부동산 시장 불안 요인 외 정치적 변수가 자리잡고 있다. 종합부동산세나 다주택자 양도세 부담 완화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없이 정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경우 MB 정권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있다는 것.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이런 의미에서 "부동산 세제에서 수요를 늘리는 정책은 일단 신중하자는 입장"이라며 "공급 대책을 먼저 세운 뒤 수요 부분을 손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정청의 이런 입장도 앞으로 내수 경기나 수도권 집값 향배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종부세나 양도세 중과는 어떤식으로든 손을 보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핵심 공약. 정치적 휘발성이 큰 종부세 제도조차 일단 올해까지 부동산 시장 추이를 지켜본 후 내년부터 손질하자는 공감대가 당정청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