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30년 넘은 전·현직 경찰 간 5년 법정싸움, 왜?
by한광범 기자
2023.06.26 09:55:00
2018년 발생…'경력 30년↑' 전현직, 말다툼서 시작
법적 다툼 수년간 지속…양측 상대방 향해 민사소송
法 "사건처리 적법…일부 위협 인정" 청구액 10% 인정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8년 벌어진 일로 전·현직 경찰관이 5년 넘게 민·형사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전직 경찰관이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민사재판에서 일부 승소했다. 다만 전직 경찰관이 수년간 문제를 제기했던 ‘순사 발언’과 ‘사건 처리’에 대해선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2단독(박용근 판사)은 전직 경찰관 노승일(62)씨가 30년 경력의 현직 경찰관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A씨가 노씨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 전직 경찰 노승일씨가 2020년 9월 충북경찰청 앞에서 자신과 다툼이 있던 경찰관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두 사람 간의 갈등은 2018년 7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충주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이었던 A씨는 동료 경찰관과 함께 당일 오후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했다.
사고는 1톤 화물차가 옆차선 승용차를 추돌한 내용이었다. 화물차 운전자가 “앞바퀴 펑크로 차량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승용차를 충격했다”고 사고 책임을 인정함에 따라 A씨 등 경찰관들은 보험가입 여부를 확인하고 조사를 종결하려 했다.
승용차 운전자의 남편이었던 노씨는 아내의 연락을 받고 조사를 종결하려던 찰나에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경력 35년 차 전직 경찰관이었던 노씨는 다른 사고원인이 있을 수 있다며 노면 타이어흔적을 측정해 달라고 A씨 등에게 요청했다.
A씨는 “사고경위가 분명하고 가해차량 운전자가 책임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타이어 흔적을 조사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고 설명하며 요청을 거절했다. 노씨는 이에 자신의 과거 35년 경찰 경력을 언급하며 “사고경위는 그렇게 단정할 수 없는 사안이니 타이어 흔적을 측정해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하지만 A씨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조사는 우리가 한다. 타이어 흔적을 조사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며 “순사 생활 35년 하셨다는 분이 그런 것도 모르냐”고 반문했다. 노씨는 ‘순사’라는 말에 발끈했다. 그는 화를 내며 A씨 복부를 자신의 복부로 밀었다. 두 사람이 10분 넘게 말다툼을 이어가던 도중, A씨는 “왜 자꾸 옛날 생각이 나세요? 이상하게 배우셨구나. 알기는 아는데 어설프게 약간 알지” 등의 말을 했다.
노씨는 A씨를 배를 밀친 부분에 대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2018년 8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공무집행방해가 인정된다고 보고 벌금 300만원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자신에 대한 모욕적 언행에 대한 항의의 정도일 뿐 이를 넘어서서 공무집행방해의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20년 1월 무죄를 확정했다.
노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건 직후인 2018년 7월 중순, 9월 초 충북지방경찰청(현 충북경찰청)에 “A씨가 교통사고 관련 초동조치 직무를 방기하고 저를 모욕하는 등 위법행위를 했다”는 등의 이유로 진정을 제기한 것. 하지만 충북경찰청은 같은 해 10월 “법령 위반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문조치 했다.
그는 이번엔 A씨를 형사고소했다. 모욕, 명예훼손, 직무유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무고, 모해위증,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협박 등,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개인정보보호법위반 등 고소장에 적시한 혐의만 10개에 달했다.
고소 이후인 2020년 9월엔 충북경찰청 앞에서 A씨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2021년 2월 초, 모욕 혐의에 대해선 ‘공소권 없음’,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노씨는 한 달 뒤인 3월 이번엔 또다시 충북경찰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자신의 형사사건 관련해 “A씨가 상해를 입었다며 수사기관에 허위 진단서를 제출하는 등 무고하고,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허위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2018년 12월 중순, A씨가 자신이 근무지로 전화를 걸어 협박을 했다는 주장도 폈다. 노씨는 “A씨가 제 진정으로 감사를 받은 것에 앙심을 품고 전화를 걸어 ‘개XX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모가지 자를 거야. 시XXX 죽일 거야’라고 말해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했다”고 강조했다. 충북경찰청은 노씨의 두 번째 진정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자신의 진정에 대해 아무런 조치가 없자, 노씨는 2021년 5월 “A씨의 위법행위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와 A씨를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은 조정에 회부되기도 했으나 결국 성립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이번엔 A씨가 “부당고소에 따른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노씨를 상대로 1000만원을 청구하는 맞소송(반소)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노씨의 주장 중 A씨가 2018년 12월 노씨 근무지로 전화를 걸어 ‘목 자른다’, ‘죽여 버린다’, ‘가만히 안 두겠다’ 등의 협박을 가한 점을 인정하고 이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A씨는 “업무차 질의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관할도 아닌 곳에 전화를 건 동기나 경위에 대해 A씨가 설득력 있는 진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노씨의 나머지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순사’ 발언과 관련해선 “무례한 표현이기는 하나, 이는 시비가 있던 중 언급된 것으로 사건 당시 A씨도 약 30년 경력의 경찰관이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노씨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교통사고 당시 A씨의 업무처리에 대해서도 “해당 사고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교통사고였던 만큼, 타이어 흔적을 조사하지 않은 것은 적법한 교통사고 조사 범위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A씨가 법정에 제출한 진단서 등 청원서에 대해서도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진단서와 관련해 “당시 영상을 보면 노씨가 말다툼 중 배치기를 했던 사실이 확인되고 A씨가 몸이 뒤로 밀릴 정도의 충격이 있었다”며 “A씨가 평소 좋지 않던 허리 부위에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볼 여지도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노씨의 국가에 대한 배상청구, A씨의 노씨에 대한 반소는 모두 기각했다. 노씨와 A씨 모두 항소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