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 없다'..복지공약 수정론 급부상

by피용익 기자
2013.08.15 17:11:19

[이데일리 피용익 윤종성 안혜신 기자]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과표구간 조정 등 기술적인 방법으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했지만 결국은 ‘사실상의 증세’라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에 따른 수정안에서도 4400억원에 달하는 세수 부족분을 메울 묘수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복지는 늘리면서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된 만큼 결국 복지공약의 우선순위 재조정 등 전반적인 재검토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복지에는 반드시 재정이 소요된다. 과세,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 복지를 한다는 것은 ‘말(言) 유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14일 국가미래연구원(미래연) 홈페이지에 게재된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라는 발표 동영상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신 교수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영국 복지정책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국민적 복지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증세는 불가피하다. 증세 없는 복지 증진은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 교수는 박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5인 공부 모임’의 멤버라는 점이다. 미래연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도 동일한 견해를 보였다. 장 교수는 하루전날인 지난 13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주최 ‘제도와 경제발전’ 강연에서 ‘증세 없는 복지’와 관련, “산수로는 안 된다. 정부가 세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헛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따른 세수 부족분을 고소득 자영업자와 대기업 등에 대한 과세 강화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국세청은 이미 학원,예식장,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이들에 대한 거래 투명성을 높여 세원을 확대하고 소득 탈루에 대한 정밀 세무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유리지갑‘인 직장인들과 달리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현금 거래 과정에서 소득을 누락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전체 소득을 탈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국세청 분석에 따르면 자영업자 전체의 탈루율이 50%대에서 30%대로 줄어든 상태에서 추가 세수 확보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결국 한정된 재원으로 정부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복지공약을 이행하는 건 국채를 찍어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의 근원인 복지공약의 재조정 없이는 이 같은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복지 공약을 실현 가능한 순서에 따라 재조정하고, 그에 따라 현실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지금 국가재정 상태로는 새로운 복지 확대는 고사하고 기존 사업을 진행하기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대통령과 여당이 복지 확대의 범위와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