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공포연극, 누군가의 손이 덮칠 듯옆사람 비명에 “으악~”

by경향닷컴 기자
2009.07.21 11:46:00


[경향닷컴 제공] 한밤중에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몇해 전부터 여름철이면 심야공포연극이 등장해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자정 가까이 돼서야 끝나는 이들 심야공포연극은 대학로의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고 있다.

‘공포영화와는 어떻게 다를까’ ‘내 돈 주고 기분 나쁜 공포물을 왜 보냐’ ‘혼자 가면 데이트족 사이에서 뻘쭘하지 않을까’ 등등 궁금증을 낳고 있다. 특히 겁 많은 사람일수록 보지는 않으면서 관심만 높다. 이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기자는 지난 16일 대학로 두레홀 4관에서 공연 중인 심야공포연극 <버려진 인형>을 봤다.

연극은 밤 10시20분에 시작됐다. 보통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에 환히 조명이 켜져 있지만 심야공포연극의 객석은 입장할 때부터 어두컴컴하다. 흰 셔츠를 입고 온 사람들의 야광빛으로 잠시 나이트클럽 분위기가 났다. 연인이 대부분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삼삼오오 짝지은 여성관객이 많았다. 공연 관계자는 “공포물을 즐기려는 젊은 여성들 반, 데이트 코스로 오는 연인들이 반을 차지한다”고 귀띔했다. 뻘쭘함을 무릅쓴 ‘나홀로족’들도 눈에 띄었다.

몇초간 암전보다 더 짙은 암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귓전을 찢는 듯한 동물 울음소리와 금속성의 굉음이 관객을 압도한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어깨에 뻗칠 것 같은 분위기. 순간 무대에서는 시뻘건 조명 아래 살인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객석에서는 일제히 “으악” 비명이 터져나왔다.

<버려진 인형>은 강원도 오지에서 살고 있는 인형사 노인에 얽힌 얘기다. 여기자 희윤과 카메라맨 김준은 특집기획으로 인형사 방송을 준비한다. 한편 이곳에서 인형을 사간 사람들은 하나 둘 이상증세를 보이고 원인을 찾기 위해 형사 오인우가 현장을 찾는다. 기괴하게 생긴 인형사의 조수는 아예 이들의 접근을 막고, 몰래 숨어들어간 카메라맨 역시 사라진다. 푸른 눈을 가진 희윤의 앞에는 눈을 가린 소녀가 자꾸 나타나는데….



장면전환 때는 여지없이 짙은 암전으로 공포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두운 객석 복도를 괴음을 내는 여자가 오고가는 탓에 혹시나 옆으로 오는 게 아닐까, 두려워 생면부지인 옆자리 관객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어야 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허여멀건 한 것이 천장에서 쑥 내려와 객석으로 날아왔다. 다같이 허리를 숙이며 놀이동산의 낙하각도 77도짜리 최신 롤러코스터의 급하강 때와 같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곤 다같이 웃음. 별것 아닌 것에 놀란 게 서로 웃겨서이다. 한 사람이 먼저 소리 지르면 그 비명에 놀라 또 다같이 소리지르는 식이다. 민감해진 탓에 조금만 바스락대는 소리가 나도 모두 도마뱀 눈동자처럼 좌우상하를 살폈다.

연극이 중반을 넘어서자 관객들은 순간의 오싹거리는 장면보다 이야기에 집중했다. 놀람의 충격은 학습된 덕분으로 강도가 점점 약해졌다. 벽이라고 생각한 부분에서 갑자기 얼굴이 나타나거나 잔인한 살인장면이 연출됐다. 이야기는 인형사에 얽힌 비극이 밝혀지면서 종결됐다. 무대인사가 끝난 뒤 객석에서는 “이야기가 엉성해” “암전이 많아 짜증났어” “기대했는데 시시해” “스트레스 풀렸다” 등 말이 쏟아졌다. 관객 유리씨(23·노원구 상계동)는 “영화와는 다르게 실제 눈앞에서 사건이 벌어져 더 실감나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공포연극은 뒤끝이 없다. 영화처럼 강렬한 잔상이 남지 않는다. 편집의 마술 대신 무대전환, 사람의 움직임에 기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딱 정해진 시간만큼 순간적인 시청각의 충격으로 공포를 선사했다. 겁 많은 사람들에겐 최대의 미덕이다. 작·연출 오승수. 8월31일까지. (02)741-6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