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가을 정원을 품다
by조선일보 기자
2008.09.25 12:05:00
확 트인 전경보단 소박한 정원 많고 작은 갤러리 운영도
[조선일보 제공] '자연을 추구한다. 단, 가능한 한 간편하게….' 최근 강남·강북 일대에 새로 생겨나는 카페들의 특징을 정의한다면, 이런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 출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빈티지' 열풍, 혹은 지난 20세기 중반 이후의 문화에 대한 향수에 뿌리를 내린 '미드 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의 유행은 중후장대한 카페보다는 작고 단순한, 오래된 듯한 느낌의 '낡은 소박함'이 가장 세련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도심 속 카페들은 굳이 건물을 증축하거나 땅을 사들여 뜰을 새로 만드는 대신 '정원 느낌'만 줄 수 있게 입구에만 '미니 잔디'를 깔거나, 벽에 식물을 키우는 '수직정원(vertical garden)'을 선택하는 추세다. '뉴욕타임스'도 "땅 없는 도시 속 푸른 공간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 '수직정원'이 인기"라는 분석기사를 내놨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레스토랑 겸 와인 바 '자르뎅 페르뒤'는 햇볕을 적게 받아도 잘 자라는 음지식물을 채워 넣은 '벽'을 만들어, '수직 정원'을 세웠다. 손님들도 부담 없이 자연을 즐길 수 있고,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정원을 직접 가꾸는 것보단 간편하다. 오는 26일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어반 하이브(Urban Hive) 건물 1층에 오픈하는 커피전문점 '테이크 어반' 강남점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연상시키는 플라스틱 인공조형물을 설치했다. '부담 없는 자연의 느낌'을 강조한 셈이다.
기존의 '낡음'과 '자연'을 최대한 반영한 인테리어도 인기다. 최근 부암동과 효자동 일대엔 북악산·인왕산·경복궁·효자동 골목길 같은 기존의 오래된 풍광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테라스를 설치하는 대신 다른 장식은 최대한 배제한 카페가 인기다. 건축가 마영범씨는 "유행의 흐름이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보다 친숙하고 오래된 것을 찾는 귀소본능을 느끼기 마련"이라며 "천편일률적으로 유행을 따르는 카페들이 대거 밀집한 '카페거리'가 한때 인기를 얻었다면, 비좁은 골목길이나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한 소박한 카페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연'과 '낡음'을 추구하는 트렌드의 최전선을 달리는 카페를 소개한다. 훌쩍 다가선 가을 정취를 만끽할 만한 카페들이기도 하다.
| ▲ 자르뎅 페르뒤의 수직 정원. 자연을 실내로 끌 어들여 수직으로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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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 F&F 빌딩. 로비를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천장부터 드리워진 초록색 커튼이 시선을 끈다. 커튼 틈새로 들어서면 빽빽하게 자란 풀들로 뒤덮인 거대한 벽이 사람을 압도한다.
지난 6월 오픈한 '자르뎅 페르뒤'. 프랑스어로 '잃어버린 정원'. 카페이자 가벼운 식사가 가능한 레스토랑이고, 저녁에는 와인바로 변신한다. 이곳을 기획한 레스토랑 컨설턴트 김아린씨는 "도시 한가운데, 차갑고 딱딱해 보이는 건물에서 초록빛 자연을 발견하는 반전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수직 정원'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수직 정원은 최근 외국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선보이는 트렌드 중 하나. 자르뎅 페르뒤에서는 높이 5m, 폭 3m 벽에 아이비, 안시리움, 스파티필룸, 보스턴 고사리(Boston fern) 등 햇볕이 많이 필요 없는 음지식물로 조경했다.
벽 중앙은 와인 400여 병이 저장된 거대한 와인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와인을 꺼낸다. 실내 32석과 바 15석 외에 야외 테라스 40석이 있다. 테라스 중앙에 심은 단풍나무가 붉은 빛으로 조금씩 물드는 중이다.
에스프레소·아메리카노 4500원, 라테 5000원, 홍차 5000원. 테이크아웃은 거의 절반 가격이다. 와인 안주로는 '지중해풍 해산물 모둠 타파스(2만5000원)' '볶음김치를 곁들여 그릴에 구운 수제 소시지와 그뤼에르 치즈를 곁들인 감자 매쉬(2만2000원)' '바닷가재와 새우 딤섬 그라탱(2만3000원)'이 괜찮다. (02)520-0900
북유럽의 겨울, 해가 잠깐 비추다 져버린다. 춥고 어두운 계절엔 커피가 당기는지 북유럽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애착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덴마크 커피 체인 '아모카'가 서울 태평로 1가 성공회 교회 옆 복합문화공간 '씨 스퀘어'에 지난 3월 1호점을 냈다. 홍익대 앞 'aA 디자인 뮤지엄', 그전엔 '아지오'를 통해 빈티지 가구의 '지존'으로 이름을 떨쳤던 김명한 사장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전세계적 트렌드인 '공동테이블'과 널찍널찍한 좌석 배치가 인상적이다. 광화문 일대에선 '조용히 책 읽거나 편안하게 회의하기에 이만한 데가 없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테라스에서 푸른 잔디밭과 파도를 연상케 하는 구불구불한 목조 벤치, 투명한 직육면체 속 영국 작가 트루먼 브루어리(Brewary)의 작품 '텐트 런던'이 내다보인다는 게 이 카페의 최고 매력. 똑같은 의자와 테이블을 탈피하고 세계 각지에서 모은 빈티지 의자를 배치해 찾아갈 때마다 다른 의자를 체험하는 재미가 있다. 유럽서 쓰이던 것을 가져다 설치한 테라스의 초록빛 의자와 흰 테이블은 이국적 노천 카페 분위기를 낸다.
김 사장은 "열기 힘들 정도로 묵직한 나무 문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빌라에서 쓰던 것을 떼어다 윗부분 50㎝ 정도를 잘라 달았다"며 "적어도 150년 정도는 된 문"이라고 했다. '아모카'는 덴마크어로 '멈출 수 없는'이라는 뜻. 카페 아메리카노 45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 5000원, 치즈와플 1만원. (02)723-8882
| ▲ ① 청담동 미엘 ② 효자동 아포스트로피 S ③ 평창동 키미아트 / 조선영상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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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넓은 유리 문에 달린 손잡이는 벌집 모양이다. '미엘'은 프랑스어로 '꿀'을 뜻한다. 사진 스튜디오가 모여 있어 잡지 촬영 장소로 애용되는 청담동 '엠넷' 뒤 놀이터 바로 옆에 있다. 놀이터 쪽 넓은 창가에 앉으면 어린 시절 추억을 곱씹어볼 수 있는 가을 놀이터의 풍경이 눈을 꽉 채운다.
입구 반대편의 작은 정원은 꿈 속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낸다. 흰 가지의 자작나무가 쭉 뻗어 있고 나무 사이에 '나와 놀아줄래요'라고 말하는 듯한, 쓸쓸한 로봇 모형이 부끄러운 듯 서있다.
로봇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나란히 놓인 소파 두 개와 낮은 나무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로봇 모형은 강석현씨 작품. 이 외에도 카페 곳곳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모두 구입 가능하다. 카페 아메리카노 8000원, 베리 와플 1만5000원. (02)512-2395
세계 각국에서 온 음식과 식당으로 북적대는 이태원에서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제일기획 옆 건물 옥상의 '로프트'가 괜찮겠다.
건물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사철 푸른 '양 잔디'가 깔린 정원을 지나 식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들쑥날쑥 한 맞은편 건물들 탓에 확 트인 전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키 작은 나무와 허브로 꾸민 소박한 정원으로 자연스럽게 가렸다. "정원 쪽 좌석은 비 와도 차양을 치고 운영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더 운치 있다"는 게 매니저 김정우씨의 설명이다.
정원 반대편, 실내 쪽 위층엔 '다락'을 뜻하는 레스토랑 이름 '로프트'에 걸맞은 폐쇄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유리로 막은 공간을 커튼으로 다시 가려 프러포즈같이 남의 시선으로 방해 받기 싫은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새우 샐러드 1만5000원, 카페 아메리카노 5000원. (02)749-5159
다소 투박한 돌 계단을 밟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콘크리트 벽과 파이프가 드러난 내부가 손님을 맞는다. 카운터를 마주보고 서면 오른쪽 벽면을 검고 둥근 차(茶)통이 꽉 메우고 있는 게 보인다. 칠판에 적은 메뉴와 쾌활한 종업원들, 북유럽풍 빈티지 가구들이 '전통차'라는 카페의 주 메뉴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바&다이닝' 이영근 편집장이 "최고급 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며 추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차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카페란다. 중국에서 재배한 차를 양평의 저장소에 보관했다가 낸다는 '15년산' 보이차(9800원)는 향과 맛, 모두 깊다. 2층 테라스엔 삼청동길의 은행나무 잎들을 코앞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의자를 일렬로 놓았다. (02) 723-8250
분당 율동공원 부근 초입은 '먹자골목'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식당이 모여 있지만 정작 율동공원 안에서 카페를 찾기는 쉽지 않다. 몇 안 되는 식당·카페 중 하나가 '더율'이다. 칼로 자르듯 세련된 인테리어라기보다, 원목 바닥과 2층의 인조 소나무 등 추억 속의 '경양식집'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율동공원 깊숙이 자리잡아 테라스나 1, 2층 통유리 창가 좌석에 앉으면 공원의 빼곡한 숲이 내려다보인다. 걸어서 3분 거리인 호수가 나무에 가려 안 보이는 건 아쉽다.
번지점프나 산책 등을 위해 율동공원으로 가을 소풍을 나왔다면 굳이 밥을 먹지 않더라도 잠깐 들러 다리를 쉬고 가기 좋겠다. 커피 6500원, 레모네이드 7000원, 숯에 구운 떡갈비 스테이크 세트(빵·수프·커피 포함) 1만5900원. (031)709-8844
인왕산과 북악산을 끼고 있는 평창동의 풍광을 그대로 활용한 갤러리 카페. 1층은 큐레이터의 안내를 들을 수 있는 갤러리로 운영되고, 2층은 넓은 테라스를 놓은 예쁜 카페로 활용된다. 아메리카노 6000원, 토스트 4500원. (02)394-6411, www. kimiart.net
남산 체육관 옆에 자리잡은 전망 좋기로 소문난 카페 겸 레스토랑. 아담한 정원까지 끼고 있어 휴일 한 낮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가격은 비싼 편. 점심·저녁 메뉴 가격이 다르다. 아메리카노 90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 1만원. 크림 파스타 점심엔 1만3000원, 저녁엔 1만 6000원. (02)792-5571, www. de vill.co.kr
※ 카페 추천 = 김뉘연(‘누메로’ 피처에디터) 류재형(파티 플래너) 이영근('바 & 다이닝’ 편집장) 이정민(인테리어 칼럼니스트) 이재현(‘S 신세계 스타일’팀장) 최혜정(‘임프레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