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도움받죠"…길 잃은 도박 정책, 방황하는 청소년들
by김형환 기자
2025.03.06 07:39:50
■경찰청·이데일리 공동 연중기획 ‘청소년 도박 뿌리뽑자’
TF, 출범 후 16개월 간 회의 단 5차례
치유·교육 연결 중요…유기적 정책 불가능
정책·수사도 산발적…보이스피싱 사례 ‘주목’
전문가 "부처 칸막이로 유기적 정책 불가"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컨트롤타워 부재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소년 도박 예방 및 교육, 사후 대처에 대해 여러 정부 기관이 각각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우선 순위가 제각각인데다 중첩되는 정책이 많아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이스피싱 범죄 관련 범정부 대응처럼 하나의 기관이 중심을 잡고 유기적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청소년 온라인 불법도박 근절 범부처 TF(이하 범부처TF)’ 관련 진행 상황에 따르면 범부처TF는 2023년 11월 출범 이후 16개월동안 단 5차례 회의만 진행했다. 이마저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는 사실상 멈춰버린 상태여서 ‘유명무실’한 TF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청소년 도박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각 부처별 정책은 제각각 따로 놀고 있다.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은 도박 문제와 관련해 처벌 뿐만 아니라 사후 치유·교육 등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개별 부처별로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도박중독 치료 프로그램의 경우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등이 따로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사감위에서는 각자의 도박중독 치료 전문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가부의 경우 청소년에 특화됐다는 특징이 있지만 큰 차이가 없이 산발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도박 예방 교육 역시 경찰청 등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교육부와의 연계 등에 아쉬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 도박 치료와 예방 정책이 더 효과를 보려면 일관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청소년 도박 관련 신고 창구도 통일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경찰 신고 번호인 112뿐만 아니라 사감위 대표 번호(1855 0112), 사감위 산하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1336까지 다양하다. 사이버 도박의 경우 금융감독원(1332)에 가능하다. 이외에도 방송통신위원회, 강원랜드, 국민체육진흥공단. 동행복권 역시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각 번호마다 다소 목적이 다르지만 신고자들이 이를 따로 인식하기 어렵고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소년 도박 수사 역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경찰, 검찰,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동행로또, 강원랜드, 방통위, 게임물관리위원회, 사감위 등이 불법 도박 관련 신고를 받고 있다. 문제는 불법도박 규제하는 법률이 산재해 있어 관할의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행행위규제법’의 관할은 경찰청이지만 ‘한국마사회법’ 위반의 경우 농림축산부가 맡는다. 이로 인해 계좌 지급정지 등을 단시간 내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
컨트롤타워 부재 속 암암리에 커가는 청소년 도박 근절을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나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9년 설립된 ‘도박없는학교’는 불법 도박 사이트의 돈줄을 막기 위해 계좌동결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그간 사이트에서 이용되는 가상계좌 약 40만개와 대포통장 1700개를 차단했다. 조 교장은 청소년들이 주로 불법 도박 사이트에 유입되게 하는 불법 OTT·웹툰 사이트 차단을 준비하고 있다. 조 교장은 “결국 아이들이 들어가는 길과 계좌를 막으면 청소년 도박 상당수는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범정부 대응 체계는 청소년 도박이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다. 정부는 2022년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금융당국·법무부·검찰·경찰이 참여하는 ‘보이스피싱 등 사이버범죄 대응 범정부 TF’를 출범하고 검·경·방통위·국세·관세청·금감원 등으로 구성된 정부합동수사단을 같은해 7월 서울동부지검에 설치했다. 국무조정실이 컨트롤타워로 유기적인 정책을 이끌고 수사 기관이 한 곳에 모여 협력을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줄이기에 나섰다. 그 결과 2021년 7744억원에 달하던 피해액은 2022년 5438억, 2023년 4472억으로 대폭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복합적 정책이 필요한 청소년 도박에서 하나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은 “문제는 중앙집권적으로 칸막이가 돼 있다 보니 유기적 정책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며 “교육부에서 교육은 하겠지만 중증일 경우 치료를 받아야 하는 데 이건 보건복지부의 관할이고 장기적으로 도박 대신 긍정적인 여가 생활을 제공하기 위한 부분은 문체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의 컨트롤 타워가 우선순위를 정하고 유기적인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게 우 이사장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