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균열의 한국사회 이대로 좋은가
by오상용 기자
2006.06.28 10:50:50
분출하는 사회갈등..국가 장래 걸림돌
비싼 수업료에도 악순환 되풀이
정부는 조정능력 상실..시민단체는 불신의 대상 전락
국가 차원의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 절실
[이데일리 오상용기자] "우리 내부의 `갈등`이 외부 환경에 대한 투쟁 보다 더 오래 가고 더 철저하며 심지어 더 고통스럽다."
인도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마하트마 간디의 회고다. 21세기로 접어든 한국 사회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해묵은 노사갈등에서부터 있는 자와 없는 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지역간, 세대간, 노(勞)-노(勞)간, 강북과 강남간 갈등에 이르기까지 내부 갈등은 쌓여만 간다.
`간디의 탄식`은 결코 남의 나라의 옛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의 미래는 없다. 더 나아가 기업은 성장을 담보할 수 없고 가족, 개인은 행복해질 수 없다. 이데일리는 국내 최고의 대학원대학인 KDI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와 공동으로 연중기획칼럼 `갈등을 경영하라`를 연재한다.
이 기획은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인 `갈등`을 공론화하고 해결의 단초를 모색하는 장( 場)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미숙한 갈등 관리로 매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고 이는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암적 요소가 되고 있다"
갈등조정 전문가들은 이데일리와 KDI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가 연중기획칼럼 `갈등을 경영하라`를 시작하기 앞서 28일 마련된 전문가 좌담회에서 지역과 분야, 세대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독버섯처럼 번져만 가는 갈등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분출하는 사회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관리하지 못할 경우 국가와 개인의 미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간담회는 선한승 한국노동교육원 원장, 박재묵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홍준형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가 참여한 가운데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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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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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 각 부문별로 끊이지 않는 갈등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숙함이 국가경쟁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KDI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에서는 관련 전문가 풀을 구성해 갈등문제 해결을 위한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자 하고 있다. 오늘 그 중 세 분을 모시고 한국이 갈등해소를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사회에서 이 같은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재묵 교수 = 우선 미흡한 관련 제도를 들 수 있다. 갈등 조정 및 해결을 위한 갈등관리 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부문도 있지만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문이 더 많다. 노사갈등의 경우에는 갈등 해결을 위한 제도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반면 공공부문에서 빚어지는 갈등, 즉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이를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한 제도화가 미흡하다.
사회 각 부문별 갈등해결에 필요한 제도가 불균등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흔히 ‘87년체제’라고 하는 과거의 대결 구도가 우리의 의식 속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대결보다는 참여해서 대화하고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룩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아직 미흡하다. 이러한 제도와 의식의 문제가 갈등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홍준형 교수 = 매년 사회적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는 데 비해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한 갈등은 물론 급격한 사회변동·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장통일 수 있다.
우리사회는 지난 수십년간을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개발을 추진하고 각 부문을 개혁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갈등의 총량이나 사안별 심각성에 비해 이를 해소할 사회적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많은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되풀이되고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선한승 원장 = 우리에게는 전통적인 가치관인 공동체주의가 있다. 이같은 가치관이 작동하는 것은 `내(內)집단`에 한정돼 있다. 내집단, 즉 `우리집단`에서는 이같은 가치관이 비교적 잘 작동하는 데 비해 집단과 집단간, 즉 외집단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과거 권위주위 정부에선 공권력이나 권력으로 여러 갈등에 대처했다면 민주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는 이를 대체할 마땅한 수단을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이의 욕구는 커져갔던데 비해 갈등관리의 제도화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참여`를 모토로 한 참여정부하에서도 모두가 참여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회 갈등과 현안 문제에 참여한 후 어떻게 이를 해소할 것인가 하는 부문에서는 답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홍 = 갈등의 총량과 질에 비해 해결 역량이 부족하다고 앞서 언급했다. 이는 갈등 당사자는 물론이고 해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인자인 정부와 언론, 시민단체들의 갈등 해결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갈등 해결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인프라 역시 미흡한 상태로 남아있다. 아울러 갈등 해결의 중요 기반이 되는 사회자본으로서의 `신뢰`가 부족한 실정이다. 갈등 해결의 문화도 제대로 전승되지 않아 단절됐다.
과거 농경사회에선 부락 마을집단 단위로 집단내 갈등을 해결하는 기구가 있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정보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이같은 문화가 제대로 계승되지 않았다.
▲선 = 신뢰 문제는 갈등 해결의 핵심인자들에서 두드러진다. 정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시민단체와 언론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
특히 과거 농경사회에선 촌장이라는 중재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해줄 원로가 없다. 사회 각부문의 원로를 배출하고 이들의 역할을 존중하는 문화가 사라졌다.
어느 순간 우리사회는 원로들을 용도 폐기해 버렸다. 원로 집단이 사라짐에 따라 문제해결에 필요한 사회적 경험과 연륜이 사장돼 위기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됐다.
▲박 =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부가 해결사 역할을 했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정부보다 시민사회에 그 역할을 기대하게 됐다.
그러나 최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장기화되고 있는 사회 갈등들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에 시민단체가 갈등의 당사자가 돼 있다. 물론 과도기적 현상일 수 있지만 불행한 현실이다.
시민단체의 초기 활동 가운데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 해결과정을 살펴보면 시민단체는 당시 국민 전체의 권익 보호 측면에서 갈등 조정에 나섰다.
공공선의 편에 선다는 시민단체의 이념이 잘 드러난 사례이다. 그래서 당시 국민들은 시민단체에 큰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요한 갈등에서 시민단체는 갈등 양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편에 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갈등 조정자의 역할을 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시민단체가 갈등의 당사자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갈등 해결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조정자를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선 = 또 한가지 지적할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법과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더 많이 얻는다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용한 다수, 질서를 존중하는 다수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메커니즘이 붕괴됐다. 노사관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갈등에서 이같은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먼저해야 할 것은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사회 = 우리 사회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배경에 대한 말씀을 정리하면 사회구성원의 갈등관리역량이 부족하다는 점과 갈등해소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점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이 두 가지에 대한 논의를 해나가도록 하겠다. 먼저 정부, 이해당사자, NGO, 언론, 학계 등 분야별로 갈등관리 역량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평가를 해주시다면.
▲박 = 정부와 언론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우선 정부는 그동안 사회 각 부문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법적 권한이나 행정력에 의지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주어져 있는 손쉬운 수단에만 의존하려 하다 보니 자연, 합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차원의 노력은 부족했다.
사회 각 분야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현재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이송돼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갈등해결을 위한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언론의 경우도 앞에서 지적한 시민단체들의 경우처럼 중립적인 견지에서 공정한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갈등 당사자들의 한쪽 편에 기울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언론과 시민단체의 태도는 갈등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홍 = 갈등관리 역량이 가장 취약한 곳은 정부다. 막강한 조직과 인력에도 불구하고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공공부문 갈등의 경우 대부분 정부가 가해자 및 일반당사자가 된다. 그래서 일각에선 정부 자신이 갈등을 가져온 갈등당사자인데 어떻게 중립적인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다음으로 갈등관리 역량이 부족한 곳이 국회다. 사실 국회는 사회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당사자다.
그러나 사회갈등을 해결하기 보다는 정쟁과 정치적 행보에 더 많은 노력을 집중한다. 국회에서 입법자들이 나섰다면 해결됐을 문제가 숱하게 많음에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선진국과의 차이가 여기서 극명히 드러난다.
▲박 = 앞서 준법의식 부족을 지적하셨는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법을 제정하고 운용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법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그래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래서 지금은 정치 체제나 통치방식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지키지 않으려는 타성이 남아있다.
국민이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동시에 국민들의 높아진 권리 의식을 반영하여 법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
▲홍 = 현재 `갈등관리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이 법이 왜 필요한지 국회의원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재판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왜 이 법이 필요한가 하는 식이다.
갈등관리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관점에서 이슈화를 잘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선 = 시민단체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현재 시민사회단체는 양극화돼 있다.
어떤 곳은 풍족한 자금으로 귀족화 돼 있고 어떤 곳은 매우 영세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특히 일부 귀족시민단체에서 불거진 불투명한 돈 관리로 시민단체 전반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사고 있다.
기부를 해봐야 특정인의 배만 불린다는 인식때문에 시민단체에 대한 기부문화도 잘 정착되지 않고 있다. 양심적인 시민단체는 몰락하고 있다.
감시자라고 자청하는 시민단체를 누가 감시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홍 = 시민단체가 갈등의 당사자가 되거나 혹은 당사자를 후원하는 주체가 돼 오히려 갈등을 악화시키고, 문제 해결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해결에 힘쓰려는 시민단체는 오히려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
▲선 = 외국의 시민단체에서 우리와의 차별점을 찾을 수 있다. 스페인 노사분쟁기구의 경우 시민단체가 협상 테이블의 중앙에 위치하고 그 양옆으로 정부와 노사대표가 자리한다.
이들 시민단체가 나서 지하철 등 공공부문 파업에서 시민을 볼모로 갈등을 증폭시키려는 갈등당사자들의 행위를 강력히 견제하는 한편, 조속한 합의 도출을 독려한다.
-사회 = 정부는 물론 이해당사자, NGO, 언론 등 모든 부문의 갈등관리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연구계 및 학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간 갈등관리를 지원할 전문가 집단이 매우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향후 그러한 전문가 집단의 역량강화에 노력해야 하겠다는 시사점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미약한 갈등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박 = 앞서 갈등조정 및 해결을 위한 제도화 노력을 언급했지만 제도화만으로는 갈등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추가적으로 세 가지 노력이 더 필요하다.
우선 갈등관리에 특화된 사회 각 부문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다음으로 갈등해결과 관련된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사회적 인프라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 일반에서 신뢰의 구축을 의미한다.
이것이 요즘 흔히 말하는 사회자본의 형성이다. 세 번째로 갈등과 대립보다는 화해와 타협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문화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함께 갖추어져야 갈등관리제도가 잘 움직일 수 있다.
▲홍 = 정부 기관장에 대해서는 수행 업무중 자기 부서와 관련된 분야에서 발생한 갈등을 가장 정의에 맞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책임을 지워야 한다. 또 그 같은 능력을 배양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정부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갈등관리에 필요한 학습을 강화하고 기관장에 대해서는 갈등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책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에 대해서도 입법·의정활동 평가뿐만 아니라 국회 각 조직이 사회 갈등관리 부문에서 얼마나 제기능을 했는가 하는 갈등관리 측면의 평가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들도 유연해져야 한다. 관행적인 반(反)정부, 반기업 노선에서 탈피, 사안에 따라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해야한다.
▲선 = 갈등관리가 안되고 있는 것은 협상문화와 포용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고 민주사회의 바람직한 덕목이라고 유년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정부의 경우 이제는 직접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지 않다. 정부는 법과 원칙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공정한 룰을 만드는 역할에서 끝나야 한다. 이와함께 처벌 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경쟁을 붙여 갈등을 잘 조정하고 해결하는 단체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해 시민사회의 자발적 갈등 해결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아울러 갈등에 대처하는 단계별 대책이 필요하다.
갈등 진행의 단계별로 매뉴얼을 개발하고 단계별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대응책을 확립하고 전파해야 한다. 이를 담당할 전문가 양성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홍 = 갈등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재정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좀더 긴 안목으로 남북이 통일된 공간을 상정해보자.
통일로 인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갈등이 사회 각 부문에 걸쳐 쏟아질 것이다. 이미 탈북자 문제와 대북협력 남북사업 교류과정에서의 갈등 등 그 일단이 나타나고 있다고.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갈등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예산은 필수적이다.
예산이 남으면 투여하고 없으면 마는 식으로는 당장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선 = 갈등 해소 과정에서 비용이 들더라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 대화다. 노사정위원회가 대표적 모델이다. 위원회는 다수결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쉼없는 대화를 하는 경우에는 설사 합의점을 찾지 못하더라도 무리하게 갈등을 봉합, 또 다른 갈등을 낳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자본과 노동의 갈등은 자본주의의 시작과 역사를 같이 해 왔다. 그래서 노사갈등을 해결하는 노하우가 비교적 잘 축적돼 있다.
노사갈등 해결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는 다른 분야로 전파돼야 한다. 환경·소비자 분야도 노사갈등 해결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갈등관리의 툴(Tool)이 있다면 이를 빌려와야 한다.
즉 사회 각 섹터가 서로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중심의 중립! 적이고 전문화된 갈등조정 연구기관이 자리를 잡아서 사회부문별 갈등해결의 노하우를 접목시키고 각분야별 갈등조정 전문가를 키우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홍 = 전적으로 동의한다. 갈등관리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기관과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각 분야의 갈등관리 역량을 배양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확립돼야 한다. 그렇게 양성된 전문인력이 제 역량을 발휘하면 사회 갈등 해결에 큰 진전이 이뤄질 것이다.
아울러 금년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고위공무원단제도를 운영하면서 고위 공무원들의 역량평가에 `갈등관리 역량`이라는 부문도 포함시켰으면 좋겠다.
특히 공무원 인사고과에 갈등관리 역량을 포함시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전문교육기관에서 갈등관리 교육을 이수했다면 가산점을 부여함으로써 갈등관리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실질적인 관리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선 = 갈등조정전문가 자격증제도도 생겼으면 좋겠다. 지자체는 갈등을 빚는 현안을 법으로만 해결하려 들지 말고 분쟁이 생기면 우선 (알선조정료를 주고) 민간전문가를 고용해 문제해결에 나서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행법상 변호사외에 수임료를 받고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법을 고쳐서라도 순수민간 갈등조정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의 경우 미국연방조정화해기관 (FMCS)가 전국 200명의 알선조정 전문가를 선임해 문제가 터지면 이들 민간전문가가 우선 문제를 조정토록 하고 있으며 그래도 안될 경우 법으로 해결한다. 우리도 이 같은 제도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사회 = 갈등관리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말씀해 주셨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갈등관리 시스템에 대한 평가를 해주신다면.
▲박 = 시스템은 결국 제도화와 연관돼 있다. 앞서 갈등관리를 위한 제도가 사회 각 부문별로 불균등하다고 지적했는데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사갈등이 기본적인 사회갈등이다 보니 이 부문의 시스템은 잘 갖춰져 어느 정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부문의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허술하다. 제도화가 되었다고 해도 운영이 제대로 안 되는 것도 문제다. 노사정위원회가 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이다.
▲홍 = 갈등관리 시스템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사법적 갈등해결 시스템은 잘 발달해 있고 정교한 제도적 틀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사법시스템 이용비용 등 접근의 제약이 문제되고는 있지만, 최근에는 급증하는 송사로 소송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법적 갈등 해결 외에 많은 개별 단행법에서 ADR(대안적 분쟁해결)형태로 분쟁 조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는 주로 어렵고 오래 걸리는, 비싼 재판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법보완적 기능에 역점을 두어 발전된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나 공공갈등을 해결하는데 역부족이다.
법적 절차를 밟기 전에 그냥한번 거쳐 보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는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시스템이 극히 미흡하다. 갈등은 초동대응이 중요하다. 초기단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갈등 예방 시스템이 부재하다 보니 갈등이 터진 후 부랴부랴 응급처방이나 미봉책으로 대처하기 일쑤다. 갈등 해결의 접근방식이 잘못될 경우, 즉 어설프게 해결하려 들 경우 갈등은 더 증폭되기 쉽다.
방폐장 부지선정, 천성산 개발 문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숱한 갈등을 겪고도 그 해결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을 체계화하지 못하는, 피드백의 부재도 문제다.
-사회 = 옳은 지적이다. 현재 갈등관리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높은 수업료를 치렀지만 나아지지 않고 유사한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관리시스템 강화를 위한 대책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박 = 총론적인 수준에서 갈등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자 한 것이다. 이 법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갈등관리시스템 강화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그것은 이제 각론에 들어가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즉 사회 각 영역 또는 부문별로 구체화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갈등 유형별로 특화된 갈등해결 시스템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선 = 정부내 갈등을 통합조정하는 힘있는 기구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갈등을 빚고 있는 현안은 여러 부처가 관련돼 있다. 복잡 다기한 갈등을 통합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홍 = 통합조정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갈등관리법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데 이 법안이 국회에 계류된채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갈등을 조정하는 통합기구의 설치 ▲사회갈등 조정위원회 설치 ▲갈등의 예측 및 영향 평가를 통한 예방적 대처 ▲갈등관리 전문가 양성등이 법안에 포함돼 있지만 국회에서는 불필요한 법을 왜 만드냐는 생각인 것 같다.
특히 갈등을 미리 관리한다는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갈등을 사회적 효율성이 유지되는 선에서 해결해보자는 갈등 예방과 해결을 포함한 갈등관리 문제는 바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혁신의 문제인데도, 국회가 그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다.
-사회 = 정부 부처의 입장도 설명해 주시지요.
▲홍 = 정부 부처들이 반대하지는 않는다. 공무원은 제도가 뒷받침 되지 않고 예산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의무화시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관행이 있으니 갈등관리에 필요한 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갈등관리법안에 녹아 있는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은 그 성과가 단기간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 회임(懷姙) 기간이 길지만 파급효과가 큰 것이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이다. 훗날 치러야 할 고비용을 막자는 것인 만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 = 지금까지 갈등관리역량과 시스템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향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끝으로 정부에 제언할 말씀이 있다면.
▲박 = 참여정부 출범후 2년간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작업이 진행돼 왔지만 그 이후 노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입장에서는 정부주도로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을 계속 추진하기 보다는 이제는 민간부문으로 넘겨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년이라는 기간은 어떤 틀을 만들기에는 너무 짧다.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선 = 과거처럼 정부가 갈등 해결에 직접 개입하려 해서는 안된다. 앞서 언급했던 갈등조정 인센티브제도 처럼 다양한 대체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또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재임기간중에만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회 = 맞는 말씀이다. 이해당사자들은 정부를 공무원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 생각한다. 때문에 정부가 특정 현안에 대처함에 있어 한번 원칙을 잃게 되면 다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원칙적 대응이 힘들어져 갈등을 반복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홍 = 정부는 중립성을 요구 받지만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공공갈등에서 정부자체가 갈등의 당사자가 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중립적인 위치에 서야 하는 한편 갈등의 당사자도 되는 딜레마를 겪는다.
중요한 것은 정부는 공익적 입장에서 접근해야지, 보신주의적인 관점에서 상사에게 잘보이기 위해 혹은 정치적 입장에 치우쳐 접근하다보면 갈등이 더 증폭되고 문제가 확대재생산된다.
따라서 정부는 `이런 갈등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하는 사안별 사전대비책과 입장을 정리, 갈등에 대처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대규모 국책개발 프로젝트가 있을 때 인허가 등 중요 의사결정 전(前)단계에서 공공참여를 통한 의견수렴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합의에 의해 도출된 방안이 실제 사업 과정에 제대로 반영 실행됐는지를 점검하는 검증절차를 밟도록 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당사자들을 승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업시행자 입장에서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도출된 플랜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사회 = 정부의 갈등관리를 평가하는 외부기관도 필요하지 않을까?
▲홍 = 그렇다. 갈등관리적 측면에서의 정책평가가 필요하다. 항상 정부를 주시하는 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 = 여기서 나눈 전문가들의 논의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갈등관리 역량과 시스템 강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정부는 대부분의 공공갈등에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므로 스스로 갈등해결에 나서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전문가 집단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가 민간 전문가들의 역할강화가 필요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정리=오상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