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는 美와 통상 마찰 자초...시행령 정비해 소득이전 막아야"

by하상렬 기자
2026.05.07 05:05:03

디지털세로 영국·프랑스 조단위 세수 획득
美 관세 엄포에 캐나다는 철회…독일도 백지화
진퇴양난 韓, 오라클·넷플릭스 소송 잇단 패소
"독자 과세는 리스크, 시행령 정비해 소득이전 막아야"

[세종=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물리적 고정사업장 없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이른바 ‘조세회피’ 논란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빚어지고 있다. 유럽 주요국들은 매출 기반의 ‘디지털 서비스세(DST)’를 도입해 실질적인 세수 확보에 나섰지만,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통상 보복과 맞물리며 글로벌 과세 공조는 거대한 교착 상태다.

(사진=AFP)


디지털세 도입 역사는 유럽 내 통합 규제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애초 유럽연합(EU)은 2018년 전 회원국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DST 도입을 추진했으나, 회원국 간 이해관계에 따른 만장일치 합의 실패로 단일안 도출이 무산됐다.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프랑스는 2019년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의 앞 글자를 딴 소위 ‘GAFA세’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며 독자 행보의 첫발을 뗐다. 프랑스는 연 매출의 3%를 디지털세로 징수하며, 매년 5억~7억유로(약 1조원 안팎) 규모의 세수를 확보하고 있다.

영국은 자국 사용자로부터 발생하는 검색 엔진, 소셜 미디어, 온라인 시장 매출의 2%를 DST로 과세하고 있다. 영국 조세·관세청(HMRC)이 최근 발표한 2025~2026 회계연도 세입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디지털세 수취액은 전년 대비 17% 증가한 9억 4400만파운드(약 1조 8850억원)로 집계돼 주요국 중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이외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튀르키예 등이 국가별로 연간 대략 3000억~6000억원 수준의 세수를 걷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디지털세를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통상 행위로 규정하고 실력 행사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당시 프랑스산 화장품과 핸드백 등에 25% 보복 관세를 예고해 과세 유예를 끌어냈다.



트럼프 2기 들어선 미국의 태도가 더 강경해졌다. 캐나다는 애초 연간 20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에 3% 세금을 부과해 약 27억달러를 확보하려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협상 중단을 선언하자 시행 철회를 발표하며 물러났다. 독일 역시 자국 자동차 산업 등에 대한 미국의 보복 조치를 우려해 디지털세 도입 논의를 사실상 유보하거나 포기한 상태다.

우리나라 상황은 더 복잡하다. 국세청이 오라클, 넷플릭스 등 미국 빅테크 기업과 법인세 소송을 이어가고 있지만, 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하며 과세권 행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서다. 오라클과의 3100억원대 소송은 최근 대법원에서 과세 취소 결정이 내려졌고, 700억원대 규모의 넷플릭스 소송 역시 1심에서 국세청이 패했다.

현행 법 체계만으로는 국내에 고정사업장을 두지 않는 미국 기업에 제대로 된 세금을 물리기 어렵다 보니 디지털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자적인 디지털세 도입은 한미 통상 분쟁으로 번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통상 마찰을 피하면서도 조세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법인이 해외 본사로 소득을 옮길 경우 이를 배당으로 보는 등 과세 기준과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6일 이데일리에 “영국이나 프랑스식의 독자적인 디지털세 도입은 통상 마찰의 실효성 면에서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면서도 “미국 빅테크 기업이 국내 자회사를 통해 거둔 이익을 수수료 명목으로 본사에 넘기며 세금을 내지 않은 행위는 명백한 조세회피”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질과세 원칙에 입각해 ‘소득 이전 행위’를 엄격히 규제할 수 있도록 재정경제부 세제실이 시행령과 세법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