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대란 오나)②외국인 매도 본격화.."왜?"

by정원석 기자
2008.07.24 11:25:03

이달들어서만 보유채권 3조원 이상 매도..9월만기분 1.4조 매도
재정거래 유인 감소, 차익실현 욕구↑..국내시장 이탈 가능성
"당국 환율정책이 외국인 매도 부추긴다" 비판도

[이데일리 정원석기자] 이달 들어 외국인들의 국내채권 매도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7월 이후 외국인들은 국내 채권을 3조원 이상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국내 채권을 순매도한 것은 2006년 2월 이후 29개월만의 일이다.
 
외국인이 최근 내다팔고 있는 채권의 상당수는 오는 9월 만기도래하는 종목들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조기 차익실현을 위해 9월 만기도래 채권을 미리 팔고 있는 것이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7월 들어 모두 3조69억원의 국내 채권을 순매도했다. 종목별로는 국채를 1조9300억원 순매도했고, 통안채를 1조70억원, 금융채를 700억원 가량 순매도 했다.
 
외국인은 지난해 32조3000억원의 국내 채권을 순매수했다. 이전 해인 2006년말 4조6000억원에 불과했던 실보유액은 36조9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도 외국인의 공격적인 채권 매수는 계속됐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로 외국인의 전체 채권 보유 규모는 49조9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7월에 들어서면서 외국인은 보유채권을 대규모로 내다팔기 시작했다. 7월 순매도량의 절반 가까이가 오는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국고채 5-3호와 3-6호(총합 1조4000억원)에 집중됐다.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채권들을 대거 청산하고 있는 것.  

▲ `08년 외국인 채권 투자 동향(자료 : 마켓포인트)

올해 하반기들어 스왑베이시스와 스왑포인트가 축소되면서 재정거래 이익이 감소한 탓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중장기 외화차입 여건을 나타내는 크레디트 디폴트 스왑(CDS) 프리미엄은 크게 확대됐다. 비용이 증가했는데 차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오히려 더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연말 -200 ~ -300bp에 이르던 스왑 베이시스는 올 7월 현재 -160bp 수준으로 줄었다. FX스왑 포인트는 같은 시기 -1.5원에서 +1.5원 가량으로 돌아섰다. CDS프리미엄은 110bp대로 지난해 11월말(30bp)보다 네 배 이상 확대됐다.
 
때문에 외국인들이 기존 포지션을 정리하고 차익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채권을 내다팔고 있다는게 시장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이재형 동양선물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과 비교할 때 재정거래를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수준은 줄어들었고, CDS프리미엄 확대 등으로 비용은 더 늘어났다”며 “외국인 입장에서는 기존 포지션을 정리하고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 더 유리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신용경색이 고조되고 있지만, 지난해와 달리 유동성 공급이 이뤄질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외국인이 차익실현에 나서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지난해와 달리 주요국 중앙은행을 통한 유동성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자금이 부족한 해외 IB들이 이머징 마켓에서 자금을 회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차익실현 움직임이 외국인의 국내채권 시장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원화 채권의 매력도가 그만큼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동준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경상수지, 단기외채, 에너지 의존도, 은행의 예금대비 대출 비중, 외환보유고 등을 고려할 때 외환보유고를 제외한 나머지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경제 펀더멘탈의 질적인 차원에서 괜찮지만, 일부 국가들의 외환위기설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특정 이머징 마켓 국가의 질적인 측면까지 고려할 여력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당국의 정책 스탠스 때문에 외국인들의 채권매도가 재촉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환율안정을 위해 당국이 달러를 외환시장에 내다 팔면서 외국인들에게 달러를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줬다는 것.
 
실제로 외국인들의 채권매도 움직임은 당국이 달러 매도개입을 본격화한 지난 6월 중순이후 본격화됐다.
 
정부가 이달 들어 국내 달러 부족 사태를 개선하기 위해 외국계은행 지점의 본점 차입한도 규제를 풀어준 것도 외국인 채권 매도를 유인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달러 유동성 유입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스왑 베이시스가 축소돼 재정거래 이익 폭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 국고5년 및 만기2년 이하 금리 추세(자료 : 증권업협회)

 
외국인들의 채권 매도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단기금리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재정거래 대상 종목인 1년 만기 통안채는 이달들어서만 40bp 가까이 금리가 올랐다.
 
국고채 1년과 통안채 2년 금리도 지표채 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 
 
한 시중은행 채권운용 담당자는 “당국의 외환시장 정책이 외국인들에게 채권을 팔고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며 “외국인들의 재정거래 포지션이 정리되면서 단기물 쪽에서 매물이 쏟아지고 있는데, 시장이 이를 견뎌낼 수 있을 지 의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