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외환거래 급감..당국·시장 공동노력 긴요

by최현석 기자
2002.08.27 11:38:18

[edaily 최현석기자] 외환시장에서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유동성 부족으로 소규모 수급상황으로도 환율이 급변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7월초 시행한 외환시장 발전방안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이달부터 시행된 외환거래 관행 변경도 너무 이른 조치였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기업 등 참여감소..하루 거래량 20억불 불과
일반적으로 8월은 여름 휴가시즌이라 외환거래량이 줄어드는 것이 상례이나, 올해는 이외에도 다양한 변수들이 기업들의 적극적인 외환거래를 제한해 은행권 거래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들의 포지션 변화에 따라 환율은 박스권 안에서 수시로 등락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양상이 연출되고 있다.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에 따르면 7월중 일일 16억달러와 10억달러를 기록했던 현물환 거래량은 8월들어 23일까지 12억달러와 8억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양대 중개회사를 통해 일일 거래량이 20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9.11 미 테러사건으로 거래가 위축됐던 지난해 3분기중 일평균 28억달러에도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16일과 26일에는 양대중개회사를 통해 16억달러 수준에 그치며 한-미 월드컵 축구가 열렸던 지난 6월10일 13억달러를 제외하면 사실상 올해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기업의 외환거래 주문이 급감한 것이 주요인중 하나다. 7월 중순까지 3개월간 환율급락 시기동안 달러팔기에 전념했던 기업들은 최근 환율이 박스권 모양새를 갖추자 거래를 다소 늦추는 모습이다.

환율 급락기동안 기업들이 너무 많은 달러를 매도, 수출직후 입금되는 물량외에는 시장에서 처분 가능한 달러가 많지 않은 점 역시 기업들의 소극적 외환거래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부분 기업들이 달러를 예치해놓고 있는 거주자 외화예금 규모는 지난 5월말 120억달러에 육박했으나 6월부터 감소세로 전환돼 7월말에는 지난해 3월말 이후 16개월만에 최저 수준인 101억5000만달러로 줄었다. 이달 14일까지 외화예금도 101억8000만달러로 28개월만에 100억달러를 하향하기 직전이며, SK의 SKT 지분매각 대금을 제외하면 사실상 감소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달들어 최소 거래규모가 100만달러로 2배 늘어나고 거래단위가 50만달러로 5배 늘어난 점도 기업들이 섣불리 주문을 내는 것을 꺼리게 하고 있다. 한번 주문으로 환율이 크게 변할수 있어 수익과 손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한 종합상사 딜러는 "최근들어 환율 움직임이 방향없이 불규칙해 거래를 많이 줄인 상황"이라며 "1000만달러 규모 주문에도 환율이 1원 정도나 변동,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라 환율이 안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 구체안 미흡·시기 부적절
정부는 외환시장 중장기 발전방향을 마련하고 지난달부터 증권과 보험사의 은행간 외환시장 참여를 허용했으나,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외환거래에 나서고 있는 증권사나 보험사는 전무한 상태다.

실제로 증권사 중 은행간 외환시장 참여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거래되던 삼성증권 등 대형사들도 아직까지 외환거래나 파생상품관련 담당부서조차 설정하지 않은 상황다.

삼성생명 신금덕 박사는 "기업들은 대출이 가능한 은행을 중심으로 외환수요를 일으키고 있고, 포지션이 없는 증권사나 보험사는 해외투자 등에서 환리스크 헤지에만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시장발전 방안이 참여자 다변화와 거래량 증가 등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나, 아직은 시장이 당초 정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거래관행 변경이 시기상조였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참여자 확대 등 기반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최소거래규모와 거래단위 증가는 외환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기업의 참여 부족을 수반해 시장 유동성을 더욱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외국계은행 한 딜러는 "거래단위 증가가 예상보다 크게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기업들의 소규모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딜러는 "환율이 박스권내에 있기는 하나 유동성이 부족해 1억달러만으로도 환율을 크게 움직일 수 있어 은행들도 거래를 조심하는 상황"이라며 "기존에 제법 많았던 기업들의 투기성 주문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외환시장 발전방안이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은 시장 포지션 등 현실 수준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시장 수준이 반영되지 않은 외환거래관행 변경 역시 시장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장은 은행간 거래에 참여하는 기관들이 많지 않으나 문의는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외환거래에 제한을 두는 국가가 별로 없는 상황이라 선진적으로 시장을 바꿔보자는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제도적인 길을 터준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활성화 시간이 문제..적극적 노력도 요구
외환시장 발전방안의 구체적인 실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외환거래관행 변경의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며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물론 당국의 구체적인 지원과 시장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시장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생명 신 박사는 "외환시장 발전방안이 현실에 접목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며 "증권사 등은 외환파생금융 상품 개발에 좀 더 노력하고 정부도 국내시장에서 엔, 유로화 직접 거래와 기업과 증권사간 거래 등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등 기반 확보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딜러는 "거래관행 변경은 은행 딜러들이 먼저 원했던 부분으로 유동성 부족은 참가자들이 적응이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딜러들이 찬성해 도입된 만큼 조속히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 역시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으나 지속적인 거래량 감소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비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 이창형 외환시장팀 차장은 "기본적으로 최근 달러/엔 방향이 불투명한 점이 은행권 거래를 위축시킨 것으로 파악된다"며 "환율 방향이 잡히면 거래관행 변경 효과가 발휘돼 오히려 거래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차장은 "거래관행 변경이후 시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관행변경후 한달이 지난만큼 시장분석을 해 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