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업에 바비인형 뺏긴 손오공…각종 악재에 ‘흔들’
by김경은 기자
2024.06.23 17:44:13
“불공정 계약 해지”…손오공, 마텔에 법적 대응 검토
마텔, 손오공 지분 털고 거래 종료…영실업과 계약
손오공 “계약 기간 안 끝나…매입 재고 어쩌라고”
마텔이 매출 25% 책임졌는데…실적 악화 불가피
자체 IP 없이 애니메이션사에 의존 한계…생존 갈림길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완구업체 손오공(066910)의 사업이 악화일로다. 학령인구 감소로 성장 정체를 빚는 가운데 주요 매출처마저 경쟁사에 빼앗기면서다. 자체 지적재산권(IP)을 보유하지 않고 해외 주요 IP를 국내에서 판매만 하는 단순한 사업구조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손오공이 국내에 유통해온 마텔 제품군. (사진=마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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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업계에 따르면 손오공은 최근 미국 완구회사 마텔에 대한 법적 대응 절차 검토에 착수했다. 마텔이 계약 기간을 남겨둔 채 일방적으로 거래 종료를 통보하면서 재고 부담을 안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손오공은 마텔과 재고 처리 방안을 협상하는 동시에 불공정 계약 해지 여부에 대한 법무 검토를 진행 중이다.
손오공은 지난 2016년 마텔과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하고 △핫휠 △쥬라기월드 △바비 △피셔프라이스 △메가블록 △토마스와 친구들 등 마텔의 주요 완구를 판매했다. 마텔은 지난 4월 손오공에 거래 종료를 통보한 뒤 이달 초 국내 또 다른 완구 기업 영실업과 계약을 맺었다.
손오공과 거래 종료일인 오는 10월 1일부터는 영실업이 마텔의 국내 유통과 마케팅을 맡게 된다. 손오공은 계약서에 명시한 거래 종료일인 12월 31일까지 계약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손오공은 계약 통보 직전인 올해 3월까지 계속 마텔 측에 발주를 요청하면서 이미 올 연말까지 팔 재고를 매입한 상황이다.
반면 마텔은 거래 관계 종료 통지 사유로 ‘경영진 및 소유권 변경’을 들며 맞서고 있다. 마텔은 2016년 계약 당시 손오공의 지분까지 인수하며 사업 시너지에 힘을 실었다. 당시 마텔은 손오공 창업주인 최신규 전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11.99%)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몇 년간 손오공의 수익성이 지속 악화하자 마텔은 2022년 10월 전문경영인인 김종완 전 대표에게 보유 주식을 매각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경영 컨설팅 회사인 에이치투파트너스에 지분을 넘겼다. 마텔은 손오공과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계약 종료 후 새로운 파트너로 영실업을 택했다.
손오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대주주 변경 공시 이후인 지난해 8월 변경 사실을 마텔에 설명했고 같은 해 12월 이메일로도 통지했다. 하지만 마텔은 사유 발생일로부터 8개월이 지나 일방적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며 “재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올 12월까지 마텔 제품을 정상 유통·판매하겠다”고 말했다.
손오공이 마텔과 원만한 합의를 이루더라도 사업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마텔이 손오공 전체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한 주요 거래처라서다. 지난해 손오공 매출은 504억원으로 이중 마텔 비중이 25.1%(127억원)를 차지했다. 마텔과 거래 종료에 따른 매출 감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손오공 실적은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3년간 매출은 2021년 755억원, 2022년 667억원, 지난해 504억원으로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021년 12억원에서 2022년 영업손실 60억원으로 적자전환 후 지난해에는 95억원의 영업손실로 적자 폭이 커졌다.
이 같은 부진은 학령인구 감소 등 시장 침체는 물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자체 IP를 개발하는 대신 인지도가 높은 국내외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IP로 완구를 제작·유통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워오다 보니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다.
앞서 손오공은 2021년 초이락컨텐츠컴퍼니와 결별하면서도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손오공은 초이락의 애니메이션 △탑블레이드 △헬로카봇 △터닝메카드 등을 활용해 완구를 제작·유통했으나 초이락이 독자 행보에 나서면서 먹거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손오공은 마텔 외 다른 글로벌 완구 기업들과 손잡고 실적 부진을 만회한다는 계획이다. IP 개발에 막대한 투자비가 들고 시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해외 IP를 활용하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자체 IP를 개발하려면 수억원의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완구업체가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며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직접 완구를 제작·유통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 상황에서 완구업체가 자체 IP 없이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