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北 청년들 “처형돼도 한국 드라마 못 끊어…충성심 없다”

by강소영 기자
2024.11.29 09:50:49

北 젊은층 사이서 한국 드라마 유행
北 당국 단속에도 포기 못하는 이유는
“내 행복” 중요한 젊은 층,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최근 북한 젊은 층 사이에서 한국 드라마를 몰래 접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실제 20대 탈북민이 “한국 드라마는 죽어도 끊을 수 없었다”는 인터뷰를 해 눈길을 끈다.

한국 드라마를 본 10대 소년들에 수갑을 채우는 북한 당국. 이는 사상 교육 영상으로 알려졌다. (사진=BBC 캡처)
지난해 10월 함경남도에서 목선을 타고 동해를 통해 탈북한 뒤 서울에 거주 중인 24세 여성 A씨는 27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처형하는 김정은에게 충성심은 없다”며 “당국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우리 세대 특징이다. 북한 사회 변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A씨는 지난 26~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과 강연 행사에 참석해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전했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며 평양체육대에서 탁구선수로도 활동했다. 그럼에도 그는 북한 사회가 살만한 사회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A씨에 따르면 최근 북한 내부에서는 경제난 때문에 당국의 배급이 끊겼다. 이에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종합시장에서 생활필수품을 구입한다고 했다. 그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회”라며 “대학에서도 교수에게 뇌물을 주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또 남한 문화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과도한 규제는 북한 청년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A씨가 한국 드라마를 접한 건 14세 때로, ‘겨울연가’, ‘상속자들’, ‘이태원 클라쓰’ 등 다양한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됐다. 그가 탈북 전날 밤까지 보던 드라마는 ‘김비서가 왜 그럴까’였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암암리에 퍼진 한국 드라마를 단속하기 위해 길거리에서도 불시 검문을 했다고. A씨는 “길을 걸을 때마다 경찰이 불러 세워 휴대전화로 ‘오빠’ 같은 남한식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는지 조사했다”며 “한국 드라마를 본 청년들에 대한 공개 재판도 있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실제 지난 7월 탈북단체가 날려 보낸 대북 전단 속 USB에 담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중학생 30여 명이 공개 총살되는 일이 발생했다.

또 올해 초에는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이유로 16세 소년 2명에게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하는 공개 재판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이는 사상 교육 영상으로 알려졌다.

A씨는 북한 당국의 이러한 삼엄한 태세에도 한국 드라마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된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젊은 세대의 꿈은 “자신의 행복”이기에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 처형을 시키는 김정은에게 충성심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국에 맹종하지 않는 것이 우리 세대의 특징이다. 북한 사회의 변화는 시작됐다”고 말했다.

A씨는 탈북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탈출하면서) 두려움보다 기쁨이 더 컸다”며 “배 타고 떠난 지 44시간 만에 동해안 속초 앞바다에서 만난 한국 어민이 ‘탈북했냐’고 묻더니 ‘잘 왔다’고 해줘서 감동했다”고 밝혔다.

이어 “캄캄한 세상에서 빛이 가득한 세상으로 온 것 같아 눈부셨다”고 전하며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고 도우려 한다는 것과 남한에 가면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