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최고형 너무 낮아" 판사의 한탄[기자수첩]

by백주아 기자
2024.02.12 17:02:31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판사조차 형량이 너무 낮아 답답함을 호소한 이 사건.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 ‘건축왕’ 남모씨(62)에 법정 최고형이 선고됐다. 건물 2708채를 지어 남씨 일당이 가로챈 전세 보증금은 453억원, 피해자는 총 563명이다. 이들 범행으로 피해자 중 4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삶의 터전을 볼모로 인격 살해를 가한 이들 일당에게 종신형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일까.

사기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사기죄는 법정형이 터무니없이 낮다. 최대 10년형에 가중처벌 규정을 적용해 봤자 15년이 최고다.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고통에 시달린다. 하지만 범죄자들은 대형 로펌 변호인을 선임해 형량을 최대한 낮추고 교도소에서 고작 몇 년 살다 나와 은닉 자산으로 평생을 흥청망청 살아간다. 사기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재범 사기꾼을 양산하는 꼴이다.



만약 우리나라 법원이 미국 법원처럼 개별 범죄 형량을 합산, 사기범에게 수백 년형의 선고를 내릴 수 있다면 어땠을까. 국민통합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사기범 중 전과가 있는 사기범은 8만6323명으로 전체 77.3%에 이른다. 특히 사기 전과자의 동종 재범률을 38.8%에 달한다. 다수 국민에게 심각한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사기범들에게 사기 피해 규모에 비례한 형량을 부과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에는 현행 법률은 현저한 한계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사기, 횡령 같은 경제 범죄는 강력 범죄보다 수사가 오래 걸린다. 하지만 형법상 구속 수사 기간이 30일로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다 보니 실제 구속이 어렵다. 때문에 범죄자가 불구속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기 범죄를 벌이며 피해자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사기범들에게 여생을 교도소에서 마감해야 한다는 공포를 주입하지 않는 한 사기 피해는 근절되기 어렵다. 집단적 사기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전면 개정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