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에 등장한 대기업, 역할론은 논란

by김현아 기자
2013.06.05 11:00:37

[창조경제는 이렇게] 대기업과 창조경제 비타민 프로젝트 추진
정책 수정비판부터 지식경제 답습 비판까지 제기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정부가 5일 발표한 ‘창조경제실현계획’에서 언급한 대기업 역할론이 논란이다. 정부는 국민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게 창조경제라면서, 중소·벤처기업은 ‘주역’이며, 대기업은 ‘선도자’라고 명시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당시 경제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하며 대기업 주도 전략을 문제 삼았던 것과 온도 차가 난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대기업 위주, 양적성장 전략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가치로 두고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창조경제의 핵심은 국민이 창의적 아이디어로 창업할 수 있게 돕는 것이나, 대기업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를 접목해 기존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신산업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돕겠다고 밝혔다. 미래부는 이를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와 양해각서를 맺고 ‘창조경제 민·관 협의회’를 구성해 협력과제를 발굴하고, 정부 정책 건의사항을 수렴하기로 했다.

특히 대기업들은 부처 간 협업으로 이뤄지는 ‘창조경제 비타민 프로젝트’에 기여할 전망이다. 농업, 문화, 환경, 식품, 정부, 인프라, 안전 등의 분야에서 과학기술과 ICT를 접목해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미래부 이창한 기획조정실장은 “창조경제는 벤처 창업 뿐 아니라 대기업의 (신산업 진출 같은) 털갈이도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민간이 앞에 서고 정부는 지원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창조경제 비타민 프로젝트
그러나 비판도 만만찮다. 강홍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사는 “창조경제의 핵심은 1960년, 70년대에 정부가 주도했던 대기업 위주의 개발연대식 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는데 이의 핵심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면서 “과학기술과 ICT를 접목해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등의 활동은 기술발전에 따른 결과로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주도해 오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프로젝트를 만들고 대기업이 앞에 선 뒤 중소기업이 따라오는 구조는 이명박 정부 등 지식경제 시대에서 이미 구현됐던 정책이라는 말이다.



창조경제 구현 시 대기업의 역할에 대한 논란은 미래부 등 관계부처가 세부 정책을 추진할 때 더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정부R&D 예산 중 중소·중견기업 투자를 ‘17년까지 단계별로 확대해 현재 13.6%인 것을 ’17년에 18.0%로 확대하고, 출연금 주요사업비 대비 중소기업협력사사업비 비중을 현재 7%에서 ‘17년 15%로 늘리기로 했다.

그런데 이는 자칫 중소기업의 효과적인 해외 진출 전략과 배치될 수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SW)나 콘텐츠가 세계시장에 나가려면 독자 진출보다는 삼성전자(005930)나 LG전자(066570)가 만든 플랫폼을 타고 가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인터넷플랫폼의 경우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도 애플이나 구글에 비해 기술 수준이나 영향력이 크게 밀리는데, 대기업 R&D를 지원해 벤처·중소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와야 할지, 아니면 벤처·중소 중심의 전략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현대원 서강대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전략은 아름답지만, 창조경제의 본질과는 거리감이 있다”면서 “창조경제는 정부나 대기업이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정부가 엄청난 R&D 예산을 쏟아 붓는 게 아니라 똑똑한 스마트 유저들의 가능성을 믿고 불필요한 규제를 모두 걷어내 그곳에서 역동적인 창업의 열기가 용솟음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미래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는 5월 24일 민관의 실질적 소통·협력 체계로서 창조경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