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도 거뜬” 현대차가 킹산직 위해 만든 ‘입는 로봇’ 뭐길래

by이다원 기자
2024.11.28 08:42:37

현대차·기아, '엑스블 숄더' 공개
충전 없이도 사용 가능…입는 방식
20초만에 입고 벗을 수 있어 편리
3㎏ 아령 들고 팔 올려도 힘 안들어
내년부터 현대차그룹 '킹산직' 착용

[이데일리 이다원 기자] 현대차그룹이 작업 능률은 올리고 근골격계 부담은 낮추는 ‘입는 로봇’을 개발했다. 팔을 높이 들어야 하는 차량 하부 의장 작업도 편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당장 내년부터 현장에 이 로봇을 보급하고, 사업화에도 나선다. 로보틱스 기술을 활용해 현장 근로자의 삶의 질을 제고하며 ‘인류를 위한 진보’라는 현대차그룹 모토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셈이다.

27일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웨어러블 로봇 테크데이’에서 상완 근력을 보조하는 ‘엑스블 숄더’ 로봇을 착용한 로보틱스랩 연구원들이 팔을 올려 모형 차량 하부의 부품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기아는 27일 경기 고양시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웨어러블 로봇 테크데이’를 열고 착용 로봇 ‘엑스블 숄더(X-ble Shoulder)’를 최초로 공개했다.

엑스블 숄더는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산업용 착용 로봇이다. 산업 현장에서 팔을 위로 올려야 하는 ‘윗보기 작업’에서 어깨, 팔꿈치 근력을 보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작업자의 근골격계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직접 체험해 본 엑스블 숄더는 가벼우면서도 튼튼하다. 제품은 약 1.9㎏으로 상의와 본체로 구성됐다. 몸에 딱 맞게 조일 수 있도록 벨트를 상의 하단에, 팔 부위는 벨크로를 각각 적용해 입고 벗기 편안하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현장에서 작업자가 20초 만에 혼자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7일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웨어러블 로봇 테크데이’에서 상완 근력을 보조하는 ‘엑스블 숄더’ 로봇을 착용한 로보틱스랩 연구원들이 팔을 올려 모형 차량 하부의 부품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은 무동력 토크(회전력) 생성 구조로 엑스블 숄더를 개발해 충전하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동 시스템 대신 크랭크축과 인장 스프링, 멀티링크로 구성된 근력 보상 모듈을 적용한 것이다. 모듈이 회전하며 작업자의 상완 근력을 보조하는 힘을 만들어내, 사용자의 어깨 관절 부하와 전·측방 삼각근 활성도를 최대 60%와 30%를 각각 줄여준다.

윤주영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 관절로보틱스팀 팀장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어깨 관절 부담과 근육 피로도를 경감하기 위해 작업별 인체 데이터를 실제 조립 공정에서 측정했다”며 “이를 기반으로 편안한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차량과 같은 품질 기준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엑스블 숄더를 입고 3킬로그램 아령을 들어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다원 기자)
엑스블 숄더를 착용하고 차량 하부 볼트 체결 작업을 시험해 봤다. 팔과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아도 전동 드릴을 한 손으로 편하게 들 수 있었다. 머리 위로 팔을 들거나 어깨 높이로 올리는 등 어떤 각도에서도 로봇이 어깨와 팔을 지탱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없었다. 3㎏ 무게의 아령을 양 손에 들고도 편하게 팔을 올릴 수 있었다.

현대차·기아는 산업현장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동작에도 견딜 수 있도록 엑스블 숄더의 내구성을 강화했다. 자동차처럼 3개월 단위로 60만회 이상의 가속 내구시험을 진행하며 시험 중 매 횟수마다 토크 변화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고급 소재를 도입해 사용자의 안전과 사용성도 확보했다. 고성능 차량에 쓰이는 ‘탄소 복합 소재’ 및 내마모성 소재를 적용해 가벼우면서도 튼튼하다. 사용자 몸에 직접 닿는 부분은 크래시 패드에 쓰이는 내충격성 소재를 활용해, 돌발 충격에도 인체 손상을 최소화한다. 또 본체와 착용부를 탈착할 수 있어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은 엑스블 숄더를 자세가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하는 작업에서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형’과 동일 자세를 반복하는 작업에 활용하기 적합한 ‘조절형’ 두 가지로 출시할 예정이다. 최대 보조력은 기본형이 2.9kgf, 조절형이 3.7kgf 등이다.

현대차·기아는 엑스블 숄더를 시작으로 착용 로봇 브랜드 엑스블(X-ble) 사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커스터머 마켓 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웨어러블 로봇 시장 규모는 2024년 24억 달러 수준에서 2033년 136억 달러로 4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27일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웨어러블 로봇 테크데이’에서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장 현동진 상무가 ‘엑스블 숄더’ 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웨어러블 로봇은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올해 제조업 분야 근로자 평균연령은 43세로 지난 10년간 약 3.8세 높아졌다. 근로자 고령화로 인해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자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은 ‘우리 기술로 더 나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지난 2018년 산업용 착용 로봇 연구에 착수했다. 당시 자동차 공장에서 작업자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착용 로봇이 보급되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이어 로보틱스랩은 2022년부터 시제품을 현대차·기아 국내외 생산 공장에 시범 적용해 성능을 지속적으로 향상했다. 이 과정에서 300여명에 달하는 현장 작업자들의 의견도 들었다. ‘가벼워야 한다’, ‘작업 동작을 방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배터리 없이 작동하면 좋겠다’, ‘위생 관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취합·반영해 지금의 엑스블 숄더를 만들었다.

현동진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장 상무는 “엑스블 숄더는 현대차·기아 전 직원이 함께 만든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착용 로봇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제품군 개발과 보급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로보틱스랩은 갖고 있는 모든 기술을 고객에게 전하고, 인류에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한 기술 진보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 고양하이테크센터에서 작업자가 ‘엑스블 숄더’를 착용하고 차량 하부를 정비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기아가 개발한 ‘엑스블 숄더’의 주요 특장점에 대해 설명하는 인포그래픽스. (사진=현대차그룹)
본격적인 착용 로봇 사업화에 나선 로보틱스랩은 현대차·기아 생산 부문에 엑스블 숄더를 우선 공급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현대차그룹 27개 계열사와 건설, 조선, 항공, 농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엑스블 숄더를 활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2026년에는 국내 판매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북미 등 해외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다.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이 설계하되 제조 및 생산은 외부 업체가 맡는다.

착용 로봇 종류도 확대한다.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은 ‘엑스블 숄더’에 이어 무거운 짐을 들 때 허리를 보조해주는 산업용 착용 로봇 ‘엑스블 웨이스트(X-ble Waist)’, 보행 약자의 재활을 위한 의료용 착용 로봇 ‘엑스블 멕스(X-ble MEX)’ 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구매 희망 기업은 28일부터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 및 상담이 가능하며, 현대차·기아는 내년 상반기 중 순차적으로 제품을 출고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는 구매 희망 기업에게 ‘엑스블 숄더 통합 컨설팅’을 제공해 해당 기업이 엑스블 숄더 도입 여부를 데이터 기반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각기 다른 산업 현장 상황에 최적화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