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명철 기자
2023.08.10 09:38:22
FT “바이두·알리바바 등 엔비디아 칩 50억달러 규모 주문”
AI 개발에 필수 제품, 미국 추가 규제 앞서 서둘러 선구매
中 저사양 반도체 칩 생산도 늘려…“시장 점유율 높일 것”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미국과 동맹국들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규제 대응해 중국이 반도체칩 대량 사재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까지 제한하고 나서면서 기술 개발을 위한 중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복수의 관계자 말을 인용해 중국 대형 인터넷 기업들이 50억달러(약 6조6000억원) 상당의 고사양 엔비디아 칩 주문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들은 중국 기업인 바이두·바이트댄스·텐센트·알리바바는 반도체 칩인 A800 프로세서 약 10만개를 구매하기 위해 10억달러 상당의 주문을 했다고 전했다. 또 내년 납품 예정인 40억달러 상당의 그래픽 처리 장치도 추가 구매했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 제한으로 인해 엔비디아의 최첨단 반도체 칩인 A100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입할 수 없다. A800은 A100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느리지만 중국 기업이 구매가 가능한 제품이다.
최근에 미국이 추가 수출 규제를 실시할 것이라는 우려에 A800 칩을 구매하는 물량이 늘었다는 게 FT의 설명이다.
해당 반도체 칩은 차세대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부품이다. 챗GPT의 등장으로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규모 AI 모델 개발을 위한 관련 반도체 칩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 기업들도 다양한 AI 모델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두 직원은 FT에 “엔비디아 칩이 없으면 대규모 언어 모델에 대한 학습을 진행할 수 없다”라고 전했다.
바이트댄스의 경우 AI 챗봇인 그레이스(Grace)의 내부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다양한 생성형 AI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바이트댄스의 직원은 FR에 “바이트댄스가 이미 최소 1만개의 엔비디아 GPU를 비축하고 있으며 내년에 약 7억달러(약 9200억원)에 달하는 A800칩 7만개를 주문했다”고 알렸다.
알리바바는 챗GPT와 비슷한 언어 모델인 어니 봇(Ernie Bot)을 제작하고 있는데 온라인 쇼핑플랫폼인 타오바오 등 모든 제품과 연계할 계획이다.
다만 엔비디아·바이두·바이트댄스·텐센트·알리바바는 FT 보도와 관련해 논평을 거부했다.
중국은 해외 반도체 구매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저사양(legacy) 칩의 대량 생산에 몰두하고 있다. 해외 수입이 여의치 않자 자국 기업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줘서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점유율을 높이자는 계산이다.
중국의 저사양 칩 대량 생산에 미국 등은 공급 과잉을 촉발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의 수출 규제에 대응한 조치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중국 관영지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GT)는 이날 사설을 통해 “중국이 중·저사양의 칩을 더 많이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중국에 고사양 칩을 팔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패권주의(hegemony)”라고 비판했다.
GT는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개발 능력을 무력화해 미국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높이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시난이 지나면서 중국 칩 생산이 늘어나자 미국과 서방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연말 최초 2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가정용 노광(리소그래피) 제품을 생산하는 등 중국의 칩 생산량은 자급자족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GT는 “중국의 저사양 칩 생산량 증가는 전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의 점유율을 높일 것”이라며 “미국과 동맹국의 추가 조치에도 글로벌 제조 산업과 중국의 관계는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중국의 기술 개발 가속화에 맞서 미국은 추가 제재 조치를 꺼내들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중국 첨단기술 기업에 대해 투자할 경우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는 사실상의 투자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