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뒷담화에 수업 거부까지…성폭력·갑질이 키운 '교수 불신 사회'

by김보겸 기자
2019.06.06 15:00:10

"스승=하늘은 옛말"…교수 뒷담화하는 웹사이트 1년 새 100만명 방문
학생들, 성추행·갑질한 교수 수업 거부…"교수 사회에 경종"
전문가 "학생·교수 신뢰회복 위한 교내 시스템 마련 필요"

지난해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교내 게시판에 ‘미투’ 폭로가 나온 교수의 퇴출을 요구하는 포스트잇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겸 황현규 기자] 뒷담화는 기본에 수업 거부 사태까지….

갑질과 성폭력 등 물의를 빚는 교수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면서 교수 사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각종 전횡을 고발하는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등장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원에 재학 중인 A(25)씨는 “스승은 하늘이라는 말은 옛말”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교수 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도는 매년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교수들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응답이 50.1%로 절반을 넘어섰다. 2017년 49.5%, 2016년 46.4%와 비교했을 때 교수를 신뢰하지 않는 학생들이 해마다 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익명으로 전국의 모든 교수를 평가하는 사이트 ‘김박사넷’도 만들어졌다. 서울대 공학 대학원 졸업생 두 명이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로 지도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솔직한 평가가 이어진다. 1년 만에 방문자 수 10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김모(26)씨는 “그동안 경각심 없이 행동했던 교수들이 자신의 평가 후기를 보면서 ‘이렇게 하면 문제가 되는구나’ 하고 체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수 불신 현상은 오프라인에서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비위 의혹이 제기된 교수들에 대한 수업 거부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달 30일 서울대 학생들은 일제히 동맹휴업에 돌입했다. 성폭력과 갑질 의혹을 받고 있는 서어서문학과 A교수의 성추행이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정직 3개월 징계 권고에 그쳤다며 파면을 요구한 것이다.

수업 거부를 주도한 이수빈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은 “지금까지는 성추행을 저질러도 교단에 남아 있을 수 있었찌만 더이상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미로 공동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외에도 △동강대(남편의 선거 출마에 학생 동원, 2019) △동덕여대(하일지 교수 성추행, 2018) △제주대(갑질·성희롱, 2018) △성신여대(성추행, 2018) 등에서도 해당 교수들의 수업과 시험 평가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학생들의 교수 불신 움직임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위원장은 “수업 거부 등 학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서 진상 조사를 이끌어내고 교수의 비위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도 교내에서 받는 징계 수준은 낮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교수 비위에 대한 문제 제기를 교수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한 그릇된 동업자 의식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교수 징계권을 강화하고 대안으로 교내 소통 기구 설치를 제안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학생들이 교수 징계 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학생들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학생들의 고충을 전담하는 교내 소통 창구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대 A교수 사건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서문과 교수진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