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앞날은)④"명품도시가 유령도시로"..3가지 반대론
by윤진섭 기자
2009.09.25 13:40:24
①유령도시론 ②행정 비효율론 ③대수도권론
MB는 지속적으로 원안 추진 약속
[이데일리 윤진섭기자] 세종시 앞날이 오리무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말해 온 `원안 추진`이 `원안 수정`으로 궤도 이탈 조짐을 보이며 삐걱대고 있다.
그동안 MB정부 고위관계자들이 간헐적으로 `원안 수정`을 말해왔지만 힘을 받지 못하던 것이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총대를 메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정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세종시의 행정 비효율성을 들어 "서울의 위성도시가 아니라 자족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원안 추진 불가론을 폈다.
총리 후보자의 이 같은 소신에 대해 야당과 충청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당도 세종시 계획에는 수정이 없다며 서둘러 불 끄기에 나서는 형국이다.
야당과 충청권이 반발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세종시 원안 추진이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006년 ·12월13일 충북대 특강에서 세종시에 대한 소견을 처음으로 밝힌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행정도시는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말해 원안추진 의사를 피력했다.
2007년 3월7일 한나라당 대전시당 방문에서 이 대통령은 "행정도시 건설은 예정대로 될 것이다. (축소 등)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서도 이 대통령의 세종시 원안추진 발언은 계속된다. 2007년 11월27일 대전 유세 당시 이 대통령은 "이명박이 당선되면 행복도시 약속 반드시 지킨다"고 공언했으며 이튿날 행정도시 건설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이명박표 세종시 명품 첨단도시가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에도 이 대통령의 세종시 추진 의지는 이어진다. 2008년 3월20일 충남도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내가 행정도시건설청장과 본부장을 바꾸지 않은 것은 행정도시의 지속적인 추진을 말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은 "세종시 건설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철썩 같이 약속한 공약"이라며 "원안대로 추진되지 않을 경우 충청민들의 상실감과 배신감, 무엇보다 정치적 파장은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의 틀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크게 3가지다. 법안이 규정하고 있는대로 세종시를 추진할 경우 `사람 없는 도시`로 전락한다는 게 첫번째 이유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세종시에 행정부처 이전으로 기대되는 인구유입 효과는 6만명 안팎이다. 공무원 1만명과 산하기관 연구기관 인력까지 포함해 1만2000명, 여기에 1인당 평균 가족 수를 2.5명으로 보고 상업시설 학교 병원까지 감안해 계산하면 6만명이 된다.
그러나 공무원 중 가족과 함께 이사하겠다는 인원이 30%에 불과해 6만명이 입주하기는 어렵다는 게 계획 수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행정기관 일부를 이전하는 것만으로는 자족 기능을 갖춘 도시가 될 수 없다는 점도 계획 수정을 뒷받침하는 논리다. 자족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선 행정기관 이전보다는 기업이나 대학을 유치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자족기능 문제는 보완할 사항이지 세종시 밑그림을 다시 짤만한 변수는 아니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은 "세종시 로드맵도 2012년 완공시점에 인구 50만명을 전제로 짜여진 게 아니다. 우선 공무원 1만2000명이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지역 공무원과 교사가 합류하도록 돼 있다"며 "순차적으로 인구가 늘면서 2020년에 30만명이 되고 50만명이 되는 시점은 2030년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신도시도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로서 모습을 갖추게 되고 자족 기능도 갖추게 된다"며 "유독 세종시만 완공시점에 50만명의 인구와 자족 기능을 갖춰야 한다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족기능 논란 역시 앞뒤가 바뀌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정부기관 이전이 예정대로 진행돼야 기업과 대학이 세종시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갖고 옮겨올 테고 자연스럽게 자족기능도 갖춰진다는 것이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행정도시 특별법에는 당초 12부4처2청(현재 9부2처2청)의 행정부처가 중심이 되고 그 밑에 기업, 대학, 첨단산업단지 등 자족적 기능을 보완하도록 만들어졌다"며 "행정부처가 오지 않거나 축소된다면 기업, 대학이 올리 만무하고 사실상 그 자체가 유령도시로 전락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도시 건설의 반대 논리 가운데 하나가 행정 비효율론이다. 청와대와 입법부 사법부는 서울에 남아 있으면서 행정부 일부만 이전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광화문, 과천, 대전으로 쪼개져 있는데 세종시까지 생기면 행정기관이 4군데로 분산돼 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행정기능이 두 곳을 분할돼서는 정부의 효율적 활동이 불가능하다"며 "행정기능이 양분된 독일의 베를린과 본이 비효율의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독일은 동·서독 통일 이후 연방의회와 10개 행정부처를 동독 수도였던 베를린으로 옮기고 서독 수도였던 본에는 상원의원과 6개 행정부처를 남김으로써 정부의 기능을 두 곳에 배분하고 있다. 그러나 장관들이 당정회의, 대정부질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연방의회가 있는 베를린에 상주하다보니 본에 소재한 부처 직원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행정기관이 베를린과 본으로 나눠져 있어 부처간 정책 조정이 어려운 상태다. 이런 이유로 최근 독일에서는 극심한 행정 비효율 탓에 행정부 분할을 규정했던 베를린-본 법 수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권용우 성신여대 교수는 "수도가 분할된 독일의 경우는 베를린과 본 사이가 600㎞나 떨어져 있지만, 서울과 세종시는 거리가 120㎞밖에 안 된다"며 "KTX나 제2경부고속도로 등 서울과 세종시를 연결하는 교통 시설이 마련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효율적 활동이 어렵다는 지적은 비약이다"라고 말했다.
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 관계자도 "초기에는 기존 관행에 따른 행정 처리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화상회의, 온라인 의정 관리 등 새로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행정 비효율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도시 경쟁력을 키우는 세계적 추세에 세종시 건설 자체가 역행한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꼽힌다. 최근 남덕우 현승종 노재봉씨 등 전직 국무총리가 포함된 수도 분할 저지 국민캠페인은 "초대형 도시간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수도 분할로 수도권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면 도쿄 베이징 상하이 등 주변 국가의 거대도시만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민캠페인은 "20세기에 지방 분권을 추진하던 유럽 국가들도 21세기 들어 대도시 경쟁력 강화를 새로운 국가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며 “세종시 건설은 이 같은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김문수 경기지사 역시 `대수도론`을 제기하며 반론의 선두에 서 있다. 김지사는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은 말뚝 중 제일 잘못된 말뚝이다"이라며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중심이 되려면 수도권을 더 이상 쪼개지 말고 경기도, 서울, 인천을 하나의 대(大)수도 개념으로 통합하는 게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수도론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기하는 주장도 적지 않다.
우선 외국의 경우 어느 정도 자생력이 있는 위성도시가 모여 대도시를 형성한 반면 우리나라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주변에 성장 동력이 약한 위성도시가 만들어져, 대수도론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도시계획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전혀 계획성 없이 수도권이 팽창해왔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집중화를 초래했고, 과밀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대수도론에 따라 각종 수도권 규제가 풀릴 경우 수도권의 초일극화 현상을 초래하고, 지방은 더욱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그는 "참여정부는 행정기관 이전을 전제로 수도권 경쟁력 방안을 별도로 내놨고, 그 내용 역시 충실하다는 점을 대수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